사사기 3:1-11 손이 바뀌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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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의 승패는 우리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의 손안에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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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첫 주가 지나갑니다. 아침 공기에서 먼저 계절이 바뀝니다. 광양의 들녘은 이제 초록에서 조금씩 빛깔이 옮겨 가는 중이고, 백운산 자락으로 넘어가는 저녁 해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집니다. 추석이 멀지 않았으니 마음도 슬며시 분주해집니다. 한 해의 절반을 훌쩍 넘겨 놓고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헤아리는 계절, 무엇 하나 끝내지 못한 채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것 같아 조바심이 이는 계절입니다. 그렇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일들을 안고 이 아침을 맞으신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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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손이 여러 번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 파셨고, 다시 그 대적을 한 사람의 손에 넘겨 주셨으며, 마침내 그 손이 대적을 이겼습니다. 짧은 다섯 절 안에서 손이 세 번 바뀝니다. 그런데 그 손들이 바뀌는 문장의 주어는 한 번도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나 여호와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손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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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뜻밖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민족들의 명단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삿 3:1). 여호수아 세대가 세상을 떠난 뒤 자라난 새 세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물려받았지만, 그 땅이 어떻게 주어졌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보지 못했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유산은 상속되지만 경험은 상속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 곁에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남겨 두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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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 두신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시험하시려는 것과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르치신다는 전쟁은 칼 쓰는 법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그 전쟁에서 필요한 것은 병력이 아니라 순종이었고, 무기가 아니라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나안은 군사 훈련장이기 전에 신앙 훈련장이었습니다. 남겨진 가나안은 장애물이 아니라 질문이었습니다. 너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 네 힘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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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5절과 6절은 무너짐의 순서를 아주 정확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먼저 그들 가운데 거주했고, 다음으로 딸을 주고 며느리를 맞았고, 마지막에 그들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함께 살고, 익숙해지고, 부러워하다가, 마침내 닮아 간 것입니다. 배교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물러선 결과였습니다. 처음에 가나안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는데 나중에는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었고 결국 섬기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동화의 무서움입니다. 시작은 공존처럼 보이지만 끝은 정체성의 상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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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한 문장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사사기 전체에서 이 표현은 여기에만 나옵니다. 잊었다는 것은 기억이 흐려졌다는 뜻이 아니라 관계에서 지워 버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잊히지 않으시려고 얼마나 많은 장치를 마련해 두셨는지 모릅니다. 절기가 있었고 제사가 있었고 문설주에 새기라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한 세대가 잊었습니다. 기억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말하고 반복해서 들려주고 삶으로 보여 주지 않으면, 믿음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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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서운 낱말이 나옵니다.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삿 3:8). 파신다는 말은 노예 시장의 언어입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신 그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다시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다른 주인 아래로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을 친 나라는 하나님이 남겨 두신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저 멀리 두 강 사이에서 온 아람의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가나안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싸워야 할 상대와 사돈이 되어 버렸으니 그쪽에서는 아무 긴장도 생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훨씬 먼 곳에서 채찍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열방의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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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리가 터집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삿 3:9). 여기 쓰인 히브리어는 정돈된 기도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크게 소리 지르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 안에는 회개라는 종교적 의미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본문 어디에도 그들이 무엇을 뉘우쳤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적혀 있는 것은 그들이 아팠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소리에 반응하셨습니다. 구원의 근거는 사람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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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세우십니다.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낯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를 만났습니다. 사사기 1장에서 기럇 세벨을 점령하고 갈렙의 딸 악사와 결혼한 그 사람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이방과 통혼하며 무너지던 그 시대에, 언약 백성 안에서 정직하게 가정을 이룬 사람이 첫 사사로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위기의 순간에 급히 사람을 만드시지 않습니다. 오래 준비된 사람을 그때 꺼내어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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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손이 바뀝니다.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삿 3:10). 옷니엘은 이 이야기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화자는 그가 승리를 자기 것으로 삼을 여지를 아예 남겨 두지 않습니다. 그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고, 여호와께서 대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이긴 것입니다. 넘기신 손도 하나님의 손이고 되찾아 주신 손도 하나님의 손입니다. 우리 인생의 승패는 우리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의 손안에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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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야기는 조용한 한 문장으로 닫힙니다.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삿 3:11). 사십 년의 평온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만의 평온이었습니다.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그에게 어떤 자녀가 있었는지도 성경은 적지 않았습니다. 자기 이름을 남길 만한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은 사람, 그것이 사사기가 내미는 모범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모범적인 구원자라도 죽습니다. 그래서 사사기는 읽는 이의 마음에 갈증 하나를 남깁니다. 죽지 않는 구원자는 없는가. 그 갈증의 끝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영원히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항상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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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오늘 우리 삶에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몇 년째 그대로인 몸의 통증, 여전히 어려운 그 사람, 매달 되풀이되는 재정의 압박,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두고 하나님이 손을 놓으셨다고 결론 내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다른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남겨진 것이 곧 버려진 것은 아닙니다. 남겨 두신 그 자리가 하나님을 배우는 학교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시를 뽑아 달라는 기도 곁에, 가시 옆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나란히 놓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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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기도할 힘조차 없다고 느끼시는 분들께 이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옷니엘을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이 회개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아파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자격을 갖춘 다음에 기도하려 합니다. 죄를 다 정리하고 마음을 다 다잡고 문장을 다 고르고 나서야 나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듬어진 문장보다 먼저 신음을 들으십니다. 그 앓는 소리를 그대로 하나님 앞에 두십시오. 그리고 오늘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드리는 작은 순종을 이어 가십시오. 하나님은 오래된 순종을 기억하셨다가 한 시대를 살릴 사람으로 꺼내어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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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는 이 아침에,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 앞에 서 계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남겨진 것이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시고, 넘기시는 손과 되찾아 주시는 손이 같은 손인 줄 아는 믿음을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의 승리가 우리 손에서 나지 않았음을 알기에 더욱 자유롭게, 오늘도 주님의 손안에서 한 걸음을 내딛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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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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