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5:1-10 사막이 감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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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다니는 일이 아니라, 마른 자리에 서서 아직 열리지 않은 샘을 믿고 한 걸음을 내딛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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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나갔습니다. 낮의 볕은 여전히 따가운데 해 질 무렵의 바람결이 어느 사이엔가 달라졌습니다. 매미 소리가 성글어진 자리를 풀벌레 소리가 조용히 메우고, 아침에 마당에 나서면 풀잎 끝에 이슬이 맺혀 있습니다. 여름 내내 뙤약볕을 견디느라 잎이 누렇게 뜬 화단의 화초들도 이제야 겨우 한숨을 돌리는 듯합니다. 올여름을 지나오며 몸도 마음도 함께 말라 버린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견디느라 애쓴 것밖에 없는데 남은 것은 피로뿐인 것 같아 시뜻해진 마음, 무엇을 더 해 볼 기운조차 나지 않아 찌무룩한 저녁을 보내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처서 지난 바람처럼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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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이사야 35장은 놀랍게도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땅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사 35:1). 회개하라는 요구도, 분발하라는 독촉도 없이, 그저 버려졌던 땅이 먼저 웃습니다. 이 순서가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는 늘 내가 먼저 변해야 무엇이 달라진다고 배워 왔는데, 이 예언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가 가장 먼저 꽃으로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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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 놓인 자리를 알면 그 무게가 달라집니다. 바로 앞의 34장은 하나님을 대적하던 세력을 향한 준엄한 심판의 선언이었습니다. 거기서 비옥하던 땅은 가시덤불이 뒤덮인 폐허가 됩니다. 그런데 장 하나를 건너오자마자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심판으로 사막이 된 곳이 있는가 하면, 사막이던 곳이 꽃밭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장은 같은 동전의 앞뒷면입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그날은 누구에게는 셈이 치러지는 날이고, 오래 눌려 살던 이들에게는 마침내 숨이 트이는 날입니다. 더구나 이 노래는 앗수르의 말발굽 소리가 아직 귀에 생생하던 시절에 주어졌고, 훗날 바벨론에 끌려간 백성이 돌아오는 길목에서 다시 불렸습니다. 오래된 노래일수록 여러 번 부를 수 있는 노래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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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과 2절이 그려 내는 광경은 이렇습니다. 마른 땅이 백합화 같이 피어나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말할 때 늘 떠올리던 세 이름입니다. 그런데 바로 두 장 앞에서는 그 셋이 모두 시들어 있었습니다. 레바논은 부끄러워하고, 사론은 사막처럼 되고, 갈멜은 나뭇잎을 떨어뜨렸습니다. 아무리 기름진 땅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사막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 반대도 참일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들이 서 있는 그 자리가 곧 갈멜이고 사론입니다. 아름다움의 근거는 땅의 조건이 아니라 임재입니다. 성 프란체스코가 한겨울 편도나무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해 달라고 청하자 그 나무가 그 자리에서 하얀 꽃을 피워 대답했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꽃은 계절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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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3절과 4절에서 시선이 땅에서 사람에게로 옮겨 옵니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사 35:3). 저는 이 문장의 수신자가 늘 마음에 걸립니다. 명령은 떨고 있는 사람 본인이 아니라 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격려의 내용이 참 담백합니다. 네 안에 숨은 힘을 꺼내라고 하지 않습니다.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라고 합니다. 강해질 이유가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오시는 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무릎이 꺾여 얼굴을 땅에 묻은 그 자리가 실은 은혜가 시작되는 자리라는 오래된 통찰도 여기서 나왔을 것입니다. 내 힘이 다 끝난 곳에서야 비로소 다른 이의 발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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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에서 7절까지는 그 발소리가 도착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맹인의 눈이 밝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며, 저는 자가 사슴 같이 뛰고 말 못하는 자의 혀가 노래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곧바로 붙습니다.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6). 몸에서 일어나는 일과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한 문장으로 묶여 있습니다. 구원은 영혼만의 사건이 아니라 몸과 흙을 함께 적시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훗날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사람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의 족보를 설명하지 않으시고 바로 이 대목을 그대로 들려주셨습니다.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걷는다고, 그렇게 답하셨습니다. 메시아는 논증이 아니라 열린 눈과 펴진 무릎으로 자신을 증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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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8절에서 마침내 길이 놓입니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사 35:8). 사자도 사나운 짐승도 올라오지 못하고, 우매한 행인조차 헤매지 않는 길입니다. 이 길이 거룩하다는 말은 흠 없는 사람만 통과시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거룩'은 자격이 아니라 소속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 값 주고 되찾아진 사람이 걷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길의 통행증은 나의 결백이 아니라 그분의 속량입니다. 마지막 절은 그 길 끝을 보여 줍니다.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고, 슬픔과 탄식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여기 '사라진다'는 말은 조용히 옅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패하여 달아난다는 뜻의 낱말입니다. 슬픔이 스스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기쁨에 밀려 도망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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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걸어 본 사람들이 남긴 말 가운데 오래 곱씹게 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어린 왕자가 사막을 함께 걷던 친구에게 건넨 말입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눈에 보이는 것은 모래뿐인데, 그 아래 어딘가 물이 있다는 사실 하나가 그 막막한 땅을 견딜 만한 곳으로, 나아가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한 라틴어 연구자는 사막에서는 모래 위에 영원한 길을 낼 수 없기에 사막의 이정표는 결국 인간의 목마름이라고 했습니다. 목마르지 않은 사람은 우물을 찾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막이 마침내 감추어 두었던 물을 꺼내 놓는 장면 앞에서, 저는 우리의 목마름이 저주가 아니라 이정표였음을 배웁니다. 우리가 지나는 이 마른 자리도 어쩌면, 아직 열리지 않은 샘 위를 걷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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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먼저 자리를 옮기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일부터일 것입니다. 우리는 더 좋은 부서로, 더 큰 도시로, 형편이 나은 곳으로 옮겨 가면 삶이 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자리를 옮겨 주는 대신 그 자리에 하나님이 오신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줄고 젊은이가 떠나는 지역에서 목회하고 신앙생활 하는 우리에게 이보다 실질적인 소식은 없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면 여기가 갈멜입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떠날 곳을 알아보는 일이 아니라, 이 마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을 얻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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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붙드는 일입니다. 우리의 격려가 종종 힘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당신은 할 수 있다"는 말에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이미 손이 약하고 무릎이 떨리는 사람에게 더 힘을 내라는 말은 또 하나의 짐입니다. 본문이 알려 주는 방식은 다릅니다. 곁에 앉아 함께 한 곳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오십니다"라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성도에게, 병상에서 밤을 지새우는 가족에게, 자녀 문제로 무너져 내린 부모에게 우리가 건넬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본문의 마지막 장면은 혼자 도착하는 그림이 아니라 무리가 함께 돌아오는 그림이며, 침묵의 행렬이 아니라 노래하는 행렬입니다. 우리의 예배와 소그룹과 함께 나누는 밥상이 바로 그 행렬의 연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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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다 건너오신 여러분, 이제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지나온 계절에 잎이 좀 상했어도 괜찮습니다. 마른 가지에서도 꽃은 핍니다. 아직 광야를 지나고 계셔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이미 길 위에 있고, 그 길의 끝은 슬픔이 아니라 시온입니다. 오늘 하루, 목마름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그것을 이정표 삼아 한 걸음 내디디시기 바랍니다. 그 걸음마다 감추어 두셨던 샘을 열어 주시는 주님을 만나, 노래하며 돌아가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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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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