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0:18-33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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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은 이사야 30장 18절에서 33절까지 말씀으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묵상에세이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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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앞이 훤히 보여서 걷는 일이 아니라,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를 믿고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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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보니 어느새 처서가 코앞에 와 있는 팔월 하순입니다. 한낮의 볕은 여전히 살갗을 따갑게 두드리지만, 해거름 녘 마당가에 서 보면 바람 끝에 서늘한 기운 하나가 슬며시 얹혀 있는 것을 느낍니다. 매미 소리도 어딘가 성글어졌습니다. 여름이 전부인 것 같은 한복판에서도 계절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등 뒤에서 이미 조용히 걸어오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늦더위 끝자락을 지나며 몸도 마음도 지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여름내 애쓰고도 손에 쥔 것이 없어 허전한 분, 무엇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몰라 며칠째 같은 자리를 맴도는 분, 오래된 상처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도지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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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길을 잃어 본 적이 있습니다. 산길에서든 인생길에서든, 한참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의 그 서늘함을 아실 것입니다. 단테는 『신곡』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 서 있었다. 그런데 시인이 그 어두운 숲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숲을 헤치고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한 자리에서, 자기를 부르는 한 목소리를 만났습니다. 오늘 본문도 꼭 그렇습니다. 유다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 위에서 이미 한참을 걸어 내려간 뒤였습니다. 그런데 그 잘못된 길 위에서, 하나님은 앞을 가로막지 않으시고 등 뒤에서 말을 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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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배경은 주전 칠백 년 무렵의 예루살렘입니다. 앗수르라는 거대한 제국이 조공을 요구하며 목을 조여 오자, 히스기야 왕은 남쪽의 애굽과 손을 잡아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옛 제국의 이름만 남았을 뿐 앗수르의 전차를 막아 낼 힘이 없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그 협상을 반대했습니다. 정세 판단이 뛰어나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세운 계획은 아무리 정교해도 이미 방향을 잃은 계획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책망이 다 끝난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원문의 첫 낱말은 본래 '그러므로'라는 뜻으로, 죄를 열거한 뒤에 판결을 이끄는 말입니다. 그 자리에 판결 대신 뜻밖의 말씀이 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사 30:18). 마땅히 와야 할 것과 실제로 온 것 사이의 그 간격, 거기가 복음이 서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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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신다는 말이 참 낯섭니다. 힘이 없어서 기다리는 것이라면 이해가 되는데, 27절 이하를 보면 그분의 호흡 한 번에 열방이 까부름을 당합니다. 그런 분이 기다리십니다.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성품이 그러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기다리시는 이유입니다.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사 30:18). 우리 감각으로는 어색합니다. 정의로우시다면 곧바로 갚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정의는 저울을 맞추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너진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까지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는 심판을 늦추는 이유가 되고, 동시에 심판을 반드시 이루시는 이유가 됩니다. 기다리심은 눈감아 주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회복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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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절에 이 본문의 가장 정직한 문장이 나옵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사 30:20).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떡이 치워진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물이 걷힌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 떡과 그 물이 상 위에 그대로 놓인 채로, 다만 그 상 앞에 마주 앉으실 분이 오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대개 상을 치워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약속하는 위로는 상황의 제거가 아니라 임재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시시하게 들린다면, 우리는 아직 그 자리에 앉아 보지 않은 것입니다. 함께 앉아 주시는 분이 계신 고난과 혼자 견디는 고난은 전혀 다른 고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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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구절이 오늘 제목이 된 그 말씀입니다.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 30:21). 앞이 아니라 뒤입니다. 앞에서 오는 소리는 우리를 재촉하지만, 뒤에서 오는 소리는 우리가 이미 잘못 들어선 뒤에도 우리를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확성기 소리가 아니라 '말소리'입니다. 아주 나직합니다. 그래서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등 뒤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중국의 작가 루쉰은 갈림길을 만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며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본 뒤에 비로소 한쪽 길을 골라 뚜벅뚜벅 걷겠다고 했습니다. 멈춤은 낙심이 아니라 성찰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멈추지 못하는 것은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멈춰 서 있는 동안 남에게 뒤처질까 두려워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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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22절이 보여 줍니다.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사 30:22). 눈여겨볼 것은 그 우상이 값비싼 물건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은을 입히고 금을 올린 것입니다. 그런데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값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아까워하며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더럽게 여겨 내던집니다. 시인 오든은 '우상 없이 기다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출애굽기의 금송아지는 사람들이 대단한 악신을 섬기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견딜 수 없었던 불안이 빚어낸 대용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우상도 신전에 있지 않습니다. 통장에 있고, 이력서에 있고, 자녀의 성적표에 있습니다. 그것들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내 불안을 달래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우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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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회복이 옵니다. 비가 오고 곡식이 자라고 짐승들까지 좋은 먹이를 먹습니다. 무너진 망대 자리, 물이라고는 없던 높은 산등성이마다 개울과 시냇물이 흐릅니다. 사람이 쌓아 올린 방어물이 무너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물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 '맞은 자리'라는 말이 참 정직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가 누구의 매로 생긴 것인지 숨기지 않으십니다. 징계하신 손과 싸매시는 손이 같은 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일곱 배의 빛이 옵니다. 상처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과한 자리에 더 밝은 빛이 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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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익 선생이 나무를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소나무는 상처를 관솔로 만들고, 감나무는 상처를 아름다운 무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부러진 감나무 가지의 아물지 않은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까맣게 뭉친 자리, 그것이 먹감나무의 그 귀한 무늬입니다. 상처가 없으면 무늬도 없습니다. 혹시 지나간 상처 때문에 오늘이 무거운 분이 계십니까. 그 상처를 서둘러 덮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딱지는 손톱으로 떼어 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새살이 차오를 때 저절로 떨어집니다. 우리가 할 일은 흉터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싸매시는 손 앞에 그 자리를 그대로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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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십 분만이라도 소리를 끄고 앉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화면을 덮고, 알림을 끄고, 아무 말 없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십 분입니다. 그 십 분이 아깝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이미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대개 거창한 계시가 아닙니다. 어제 읽은 말씀 한 구절이거나, 오래 미뤄 둔 전화 한 통이거나, 사과해야 할 이름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 전체의 지도를 주지 않으시고 다음 한 걸음만을 일러 주십니다. 안개 속을 걸을 때는 먼 데를 바라보면 안 되고 한 발 앞을 정성껏 디뎌야 한다는 옛말 그대로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걷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속도를 겨루지 않고, 결과를 서두르지 않고, 서로의 맞은 자리를 아는 교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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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등 뒤에서 옵니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바람 끝이 서늘해지고, 어느 아침 문득 가을이 와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오십니다. 앞을 가로막고 서서 호통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한참 잘못 걸어 내려간 그 길 위에서 나직하게 뒤에서 말을 거십니다.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리로 가라.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그리고 그 목소리를 따라 오늘 한 걸음을 내딛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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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도가 매일성경으로 매일 묵상하는 광양사랑의교회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였습니다. 묵상의 여정에 있는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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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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