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9:1-14 꿈에 먹은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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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은 이사야 29장 1절에서 14절까지 말씀으로 '꿈에 먹은 빵'이라는 제목으로 묵상에세이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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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무엇을 더 많이 아는 일이 아니라, 오래 잠들어 있던 자리에서 깨어나 마음의 위치를 하나님 앞으로 옮겨 놓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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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도 중순을 넘겼습니다. 낮의 열기는 여전한데 새벽 서너 시쯤이면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조금 서늘해집니다. 열대야에 뒤척이다 겨우 잠든 밤, 그 잠깐의 서늘함 때문에 문득 눈이 떠지는 경험을 여름마다 합니다. 깨어 보면 방 안은 캄캄하고, 조금 전까지 꾸고 있던 꿈은 벌써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무슨 꿈이었는지 붙들어 보려 하지만 남는 것은 어렴풋한 기분 하나뿐입니다. 여러분의 여름밤은 어떠셨습니까. 낮 동안 애써 눌러 두었던 근심이 밤이면 기어이 올라와 잠을 빼앗아 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자고 일어나도 잔 것 같지 않은 아침을 여러 날 맞으신 분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는지 문득 아득해진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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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한복판에도 꿈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사 29:8). 저는 이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꿈에서 먹은 빵은 배를 채우지 못합니다. 꿈속에서는 분명히 손에 쥐었고 분명히 씹었고 분명히 삼켰는데, 눈을 뜨면 위장은 그대로 비어 있습니다. 더 서글픈 것은 그런 밤일수록 유난히 생생하다는 사실입니다. 허기가 깊을수록 꿈속의 상은 푸짐하게 차려집니다. 오늘 예언자는 이 꿈 이야기를 두 번 씁니다. 한 번은 예루살렘을 삼키려던 대적들에게, 또 한 번은 그 구원을 겪고도 끝내 깨어나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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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이 선포된 때는 주전 701년 무렵으로 보입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의 성읍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그 시기입니다. 히스기야는 애굽에 손을 뻗고 있었고, 성전에서는 절기가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는 그 성읍을 낯선 이름으로 부릅니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사 29:1). 아리엘이라는 말의 뜻은 지금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에스겔서에서 이 말이 제물을 태우는 제단의 맨 윗부분, 곧 화덕을 가리킨다는 점이 실마리가 됩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던 성읍이 이제 그 자신이 불타는 화덕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름 하나에 이미 판결이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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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무거운 것은 그다음 문장입니다.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사 29:3). 성을 에워싸는 그 손이 앗수르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입니다. 다윗을 지키시던 분이 다윗의 성읍 앞에 진을 치십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우리 진영 안에 모셔 두고 살아갑니다. 우리 편이시니까, 우리 교회이니까, 우리 가정이니까 하는 안심이 신앙의 다른 이름처럼 굳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진영의 소속도 아니십니다. 그분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가까운 자리부터 흔드십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소리가 바뀝니다. 절기의 함성으로 소란하던 도성이 이제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사 29:4)라는 말씀처럼 땅바닥에 붙은 웅얼거림이 됩니다. 사람은 무너질 때 목소리부터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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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함락을 눈앞에 둔 순간, 아무 예고도 없이 문장이 뒤집힙니다. 성을 짓밟던 무리가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들이 "날려 가는 겨" 같아지며, 예언자는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사 29:5). 하룻밤 사이에 포위가 풀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아침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제까지 지평선을 가득 채우고 있던 천막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자기가 아직 꿈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눈을 비볐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구원은 예루살렘이 확보해 둔 권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전이 있어서도 아니고 다윗 왕조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유 안에서 일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계산에 넣을 수는 있어도 계산 안에 가둘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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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습니다. 그렇게 큰일을 겪고 나서 예루살렘은 달라졌을까요. 본문은 서늘하게 대답합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사 29:10). 그리고 그 잠의 증상이 이어집니다. 봉해진 두루마리를 글 아는 사람에게 건네며 읽어 달라 하면 봉해져서 못 읽겠다 하고, 글 모르는 사람에게 건네면 나는 글을 모른다고 합니다. 이유는 서로 다른데 결과는 같습니다. 아무도 읽지 못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아픈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말씀은 그들 손안에 있었습니다. 다만 봉인된 채였습니다. 기적을 겪고도 깨어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구원조차 한 편의 꿈으로 지나갑니다. 꿈에 먹은 빵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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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잠의 정체를 하나님은 마지막에 정확히 지목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가까이 있는 것은 입이고 멀리 있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 사이의 거리가 곧 그들의 병이었습니다. 유대 신학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사람을 찾는 하나님』에서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종교가 쇠퇴한 것은 그것이 논박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무의미하고 지루하고 억압적이며 밋밋한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너뜨린 것은 바깥의 공격이 아니라 안쪽의 밋밋함이었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의 절기는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절기가 어느 순간부터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 습관이 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습관이 된 예배는 우리를 안심시키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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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은 이 진단으로 말씀을 닫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사 29:14) 하십니다. 그 기이한 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압니다. 훗날 바울은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가 무너지는 자리에 십자가가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을 하룻밤 사이에 구하신 그 갑작스러움이 결국 골고다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 지혜자들이 끝내 읽어 내지 못한 방식으로 하나님은 세상을 구하셨습니다. 봉인된 책을 여는 열쇠는 더 깊은 지식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을 직접 인용하시며 당대의 경건한 사람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지금 네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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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옵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이 멀리 있었던 것 때문에 흔들립니다. 찬양은 뜨거운데 삶은 차갑고, 헌금은 정확한데 이웃과의 셈은 흐리고, 출석은 성실한데 집에서의 말은 거칠다면, 우리는 이미 꿈에 먹은 빵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지난 세월 규정과 성과를 다루는 일에 능숙해진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마음은 측정되지 않지만 숫자는 측정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재기 쉬운 쪽을 택해 왔습니다. 그 능숙함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고, 동시에 우리 마음을 조금씩 하나님에게서 밀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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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한 번의 깨어남입니다. 봉인을 뜯는 칼은 뜻밖에도 단순합니다. 읽은 말씀 때문에 오늘 하나를 바꾸는 것, 그것이 순종이고 그것이 깨어남입니다. 아침에 읽은 한 구절 때문에 미뤄 두었던 전화를 걸고, 참았던 사과를 하고, 모른 척하던 이웃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입니다. 그 한 가지가 일어나면 봉인은 이미 뜯긴 것입니다. 꿈에 먹은 빵은 배를 채우지 못하지만, 깨어나 손으로 뗀 빵 한 조각은 사람을 살립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것도 결국 그 한 조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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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입니다. 며칠 뒤면 처서가 지나고, 뜨겁던 공기도 조금씩 물러설 것입니다. 계절은 이렇게 아무 소리 없이 잠에서 깨어나는 법을 압니다. 우리도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입술과 마음 사이에 벌어진 거리를 오늘 조금 좁히시고, 손에 들린 말씀의 봉인을 순종으로 뜯으시고, 꿈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배부른 아침을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늦여름을 지나 서늘한 계절로 걸어가는 길 위에서, 깨어 있는 눈으로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알아보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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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도가 매일성경으로 매일 묵상하는 광양사랑의교회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였습니다. 묵상의 여정에 있는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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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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