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3:1-22 불 꺼진 궁전온전한 신앙이란 세상의 불빛이 하나씩 꺼지는 밤에도 끝내 꺼지지 않는 등불 하나를 알아보는 눈을 얻는 생명 사건입니다.
팔월의 문턱입니다. 낮 동안 뙤약볕은 아스팔트를 데우다 못해 공기까지 일렁이게 만들고, 매미들은 목숨을 걸고 우는 것처럼 한나절 내내 울어댑니다. 그러다 저녁 무렵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면 도시는 잠시 숨을 돌립니다. 배롱나무는 그 뜨거움 속에서도 백일 동안 붉게 피어 있겠다는 듯 꽃을 밀어 올립니다. 한여름은 이렇게 모든 것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절정이란 언제나 내리막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가장 무성할 때 이미 시듦이 시작되고, 가장 환할 때 이미 저녁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 계절에 지쳐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에어컨 없는 작업장에서 하루를 견디는 분들, 밤에도 식지 않는 열기 속에 잠을 설치는 어르신들, 여름휴가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분들. 무엇보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오래 붙들어 온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이 여름을 통과하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문장은 오래 마음에 남는 그림 하나를 남깁니다. "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사 13:22). 한때 열국의 보화가 쌓이고 밤마다 음악이 흐르던 궁전입니다. 창마다 불빛이 새어 나오고, 그 불빛을 우러러보며 사람들은 저것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그 불이 다 꺼진 밤을 봅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방들, 무너진 기둥 사이로 부는 바람, 그리고 어둠 속에서 우는 들개 한 마리. 사람이 하나님 없이 쌓아 올린 모든 높은 것의 끝을 이보다 정확하게 그린 문장이 있을까요.
이사야 13장은 이사야서의 시선이 예루살렘 성벽 너머로 넘어가는 자리입니다. 1장부터 12장까지 예언자는 줄곧 자기 백성의 죄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13장에서 갑자기 문패가 바뀝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사 13:1). 이때부터 23장까지 이사야는 주변 민족들의 운명을 차례로 부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열방 이야기가 놓인 자리입니다. 예레미야서나 에스겔서에서는 이런 신탁들이 책의 뒤쪽에 모여 있는데, 이사야서에서는 자기 백성을 향한 심판 선언 한가운데에 끼워져 있습니다. 앞쪽은 앗수르에 기대려 했던 아하스 왕의 시대이고, 뒤쪽은 애굽에 기대려 했던 히스기야 왕의 시대입니다. 그 사이에 열방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이 누구신지가 놓입니다. 기댄 대상만 달랐을 뿐 두 왕은 똑같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힘을 붙들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놓았습니다.
본문의 첫 장면은 소집입니다. "너희는 민둥산 위에 기치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사 13:2). 나무 한 그루 없는 벌거숭이산 꼭대기에 깃발이 오릅니다. 먼 나라에서, 하늘 끝에서 군대가 몰려옵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그 소란한 행렬을 보면서 전혀 다른 것을 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사 13:4). 검열이란 병력을 점고하는 일입니다. 명부를 들고 한 사람씩 확인하는 일입니다. 진군하는 군대는 자기들이 제 야심을 따라 걷는다고 믿었겠지만, 실은 사열대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소음 속에서 하나님의 사열대를 알아보는 눈, 예언자의 눈이란 그런 것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뜻밖에도 울음입니다.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사 13:6). 승리의 함성이 아니라 곡소리가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애곡은 이미 끝난 일 앞에서 터지는 체념의 울음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일 앞에서 하나님을 붙들려는 마지막 몸부림입니다. 그 날에 사람들은 "해산이 임박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사 13:8) 떨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비유 앞에서 늘 걸음을 멈춥니다. 해산의 고통은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고통이면서, 동시에 생명이 나오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한다고. 심판의 진통 너머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 성경은 이 비유 하나로 슬쩍 알려 줍니다.
세 번째 장면에서 불이 꺼집니다.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사 13:10). 창세기 첫 장에서 빛이 있으라 하셨던 그 입술이 이제 빛을 거두십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어둠은 하나님이 안 계신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감추어진 채 오시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어둠이 실제로 온 땅을 덮은 날이 역사 속에 하루 있었습니다. 낮 열두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했던 날, 골고다입니다. 이사야가 예고한 여호와의 날의 어둠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대신 통과하셨습니다. 그러니 별빛이 꺼지는 밤을 우리는 두려움만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그 밤을 이미 걸어 들어가신 분이 계십니다.
이 어둠 한복판에 뜻밖의 한 줄이 놓여 있습니다.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사 13:12). 본래 이 말은 인구가 격감하는 참상을 그리는 비유입니다. 그러나 하필 저울에 오른 것이 금이라는 사실은 그냥 지나쳐지지 않습니다. 바벨론은 금을 쌓아 영광을 삼던 제국이었습니다. 그 제국의 저울 위에서 마지막에 값이 매겨지는 것은 금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벌하시겠다고 하신 것도 결국 "교만한 자의 오만"과 "강포한 자의 거만"(사 13:11)이었습니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짓밟는 그 구조 말입니다. 무너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값싸게 만드는 질서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야만족의 손에 함락되어 온 세계가 충격에 빠졌을 때 『신국론』을 썼습니다. 그는 거기서 인류의 역사를 두 도성의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데까지 이른 자기 사랑이 지상의 도성을 세웠고, 자기를 멸시하는 데까지 이른 하나님 사랑이 천상의 도성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던 로마가 무너진 자리에서, 그는 절망 대신 다른 도성을 보는 눈을 얻었습니다. 이사야가 본 것도 같습니다. 바벨론의 궁전에 들개가 우는 그 밤에, 예언자는 곧바로 이렇게 이어 갑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사 14:1). 긍휼히 여긴다는 말의 뿌리에는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단어가 놓여 있습니다. 한 도성의 불이 꺼질 때, 다른 도성에서는 어머니의 품 같은 사랑이 흩어진 자식들을 다시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궁전은 여전히 지어지고 있습니다. 성공과 서열과 축적이 사람의 값을 매기는 질서,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갖는 구조, 뒤처지면 존재 자체가 부끄러워지는 공기. 우리는 그 궁전의 불빛을 우러러보며 자랐고, 자녀들도 그 불빛을 향해 달리도록 떠밀고 있습니다. 더 아픈 것은 교회마저 그 문법을 빌려 쓸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크기와 숫자로 스스로를 증명하려 할 때, 우리는 이미 바벨론의 저울을 교회 안에 들여놓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저울을 조용히 뒤엎습니다. 금은보화로도 그 날을 되돌릴 수 없다고, 은을 돌아보지 않는 자들이 온다고 말합니다(사 13:17). 값을 치러 막을 수 없는 정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들 것은 무엇입니까. 무너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건물이 아니라 말씀에 붙들린 한 사람, 프로그램이 아니라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작은 모임, 실적이 아니라 조용히 이웃의 밥상을 챙기는 손길입니다. 저는 이것을 등불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국의 휘황한 불빛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불이지만, 정전이 되어 봐야 어느 불이 진짜였는지 압니다. 오늘 우리 곁의 가장 약한 자리에 있는 이름을 기억하는 일, 발언권 없는 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일, 병상에 누운 이의 손을 한 번 더 잡아 드리는 일. 그런 작은 심지들이 모여 어둠 속에서 서로를 알아봅니다. 흔들리는 것들이 진동하여 없어지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남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름은 절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매미 소리도 언젠가 그칠 것이고, 붉게 타던 배롱나무 꽃도 결국 질 것입니다. 세상의 불빛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불이 꺼진 뒤에도 남는 불이 있습니다. 자기를 내어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켜 놓은 불입니다.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화려한 궁전의 불빛을 부러워하기보다 내 손에 들린 작은 등불을 지키는 일에 마음을 쏟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둠이 짙어질수록 더 또렷해지는 빛을 품고, 오늘도 이 땅을 걷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모든 성도가 매일성경으로 매일 묵상하는 광양사랑의교회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였습니다. 묵상의 여정에 있는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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