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8:1-22 천천히 흐르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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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세상의 거센 강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천천히 흐르는 은혜의 물길 곁에서 얼굴 가리신 하나님을 기다리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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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의 마지막 주말, 한낮의 뙤약볕이 대지를 달구고 저녁이면 소나기 머금은 구름이 산마루에 걸리는 계절입니다. 장마 끝의 개울은 흙탕물로 불어 요란하게 소리치며 흘러가는데, 정작 마을의 오래된 샘은 늘 그렇듯 조용히, 그러나 하루도 마르지 않고 물을 내어놓습니다. 세상의 요란한 소리들에 지쳐, 더 빠르고 더 확실해 보이는 것을 따라가느라 마음이 분주한 분들이 있습니다. 남들은 다 앞서가는 것 같은데 내 삶만 더디 흐르는 것 같아 조바심으로 잠 못 이루는 모든 분의 심령 위에, 느리지만 결코 마르지 않는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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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예루살렘에는 성 밖 기혼 샘에서 성안으로 물을 실어 나르는 가느다란 물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실로아라 불렀습니다. 폭포처럼 쏟아지지도, 강물처럼 넘실대지도 않는, 천천히 흐르는 작은 물길. 그러나 예루살렘이 목마르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느린 물 덕분이었습니다. 오늘 이사야 8장은 이 작은 물길 하나를 우리 앞에 놓고 묻습니다. 너희는 어느 물을 마시며 살겠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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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공포가 예루살렘을 휩쓸던 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큰 서판을 가져다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게 하셨습니다. 노략이 속히 임한다는 뜻입니다. 제사장과 유력자를 증인으로 세워 공증까지 하게 하셨습니다(사 8:1-2). 유다를 위협하던 두 나라가 곧 무너지리라는 이 약속은, 갓난아이가 "엄마, 아빠"를 부를 줄 알기도 전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벽에 걸린 표어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반드시 집행되는 판결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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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백성은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성경은 그 배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사 8:6). 그들의 눈에 실로아는 너무 느리고 너무 가늘었습니다. 저 멀리 흉용하고 창일하게 흐르는 제국의 큰 강물이 훨씬 믿음직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서늘합니다. 너희가 기뻐한 그 강물이 너희 골짜기마다 차올라 "목에까지 미치리라"(사 8:8). 내가 끌어들인 물이 나를 삼키는 물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 대신 붙잡은 것은 언젠가 반드시 그 사람의 목까지 차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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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성안에 번졌습니다. 반역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사야의 손을 강하게 붙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사 8:12-14). 두려움을 없애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두려움의 대상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홀로 고요히 머물 줄 모르는 데서 온다"고 썼습니다. 세상이 두려워하는 것을 따라 두려워하며 분주히 내닫는 동안, 우리 마음의 성소 자리는 그 두려움들이 차지해 버립니다. 여호와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끝내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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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끝내 거절당했을 때, 이사야는 소리치기를 멈추고 뜻밖의 일을 합니다.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사 8:16). 거절당한 말씀을 버리지 않고, 보자기에 싸듯 소중히 봉인하여 제자들 품에 맡긴 것입니다. 언젠가 이 말씀이 다시 선포될 날이 오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서늘한 고백을 남깁니다.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사 8:17).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부재로 읽지 않는 것, 얼굴을 가리신 그분을 여전히 바라보는 것 — 그것이 어둠의 시대를 사는 남은 자의 신앙이었습니다. 그 어둠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다음 장에서 이사야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사 9:2)라고 노래하고, 그 빛은 칠백 년 뒤 갈릴리에서 사람으로 오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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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저마다 하나의 물길을 고르는 일과 같습니다. 세상은 날마다 우리 앞에 흉용한 강물들을 펼쳐 보입니다. 더 빠른 길, 더 큰 힘, 더 확실한 보장. 그 물살은 화려하고 요란해서, 곁의 실로아는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거센 강물은 마시는 물이 아니라 삼키는 물입니다. 정작 사람을 살리는 것은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하루도 쉬지 않고 흘러오는 그 느린 물입니다. 말씀 한 구절, 새벽의 짧은 기도, 주일의 예배, 형제자매의 손을 잡는 교제 — 천천히 흐르는 이 은혜의 물길이, 오늘도 우리 영혼의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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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소나기가 지나가고 개울물 소리가 잦아드는 이 칠월의 끝, 삶이 더디 흐르는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지는 날에는 서둘러 큰 강물을 찾아 나서지 마십시오. 도리어 오래된 샘가로 돌아가 앉으십시오. 서판에 새겨진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얼굴을 가리신 하나님은 얼굴을 버리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곁에서 임마누엘의 날개 그늘을 신뢰하며, 흔들리는 시대 한가운데서 잠잠히 주님을 기다리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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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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