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13-4:6 무대 뒤의 안식

by 평화의길벗 posted Jul 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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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13-4:6 무대 뒤의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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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헛된 치장을 벗어던지고 주님의 은총의 덮개 안에 온전히 거하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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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의 한복판, 온 대지를 뜨겁게 달구는 매서운 뙤약볕과 대기 속에 들어찬 눅눅한 열기가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는 아침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이 더위 속에서, 우리는 문득 삶의 또 다른 갈증을 느끼며 서성입니다. 남보다 더 화려한 쓸모와 능력을 입증해 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세속의 매정한 경쟁 속에서, 내 가난한 영혼의 빈터를 감추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하고 무거운 옷을 걸쳐 입은 채 피로감에 지쳐 있는 우리에게, 우리의 부끄러움조차 너른 품으로 가려주시는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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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이사야의 시선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지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엄위하신 변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사 3:14-15). 지도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삶의 터전인 포도원을 빼앗아 제 배를 채웠고, 그 빼앗은 전리품으로 자신들의 성채를 번듯하게 꾸몄습니다. 더 참담한 것은 시온의 딸들이 보여주는 사치와 교만입니다. 발찌, 머리망, 반달 장식, 귀고리, 팔찌, 화려한 의복에 이르기까지, 이 눈부신 장신구들의 목록은 오늘 우리가 입고 살아가는 세속의 옷들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들에게 얕잡히지 않으려, 나의 헐벗은 자존감을 가려보려 더 비싼 가방을 들고, 더 화려한 스펙을 목에 걸며, 그럴듯한 지위로 스스로를 치장하곤 합니다. 그 화려한 치장의 밑바닥에는 종종 이웃들의 눈물과 소외가 깔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밟고 서서 나를 증명하려 드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파리하고 납작해지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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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 거짓된 연극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가차 없이 그들이 자랑하던 온갖 화려한 장신구들을 남김없이 벗겨내십니다. "향기로운 냄새 대신에 썩은 냄새가 나고, 화려한 띠 대신에 새끼줄이 묶이며, 잘 꾸민 머리털 대신에 대머리가 되고, 고운 옷 대신에 굵은 베옷을 입게" 하십니다(사 3:24). 이것은 언뜻 보기에 가혹한 재앙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 영혼에 낀 거짓 현실의 백태를 맑게 벗겨내시려는 하나님의 복된 아픔이자 눈물겨운 자비입니다. 내가 내 주인이 되어 나를 포장하려던 피곤한 위선을 걷어내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숨길 것 없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는 순간에야 비로소 참된 해방의 아침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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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제 손으로 지어 올린 허영의 바벨탑이 무너지고 난 폐허 위에, 비로소 하나님의 눈부신 새로운 창조가 시작됩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사 4:2).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의 날개 그늘을 구하는 피난한 자들에게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더러운 오물들을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깨끗이 씻어내신 후에, 주님은 시온 산 위에 광야 시절의 은총을 복원하십니다.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피난처가 되리라"(사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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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개(Chuppah)'와 '초막(Sukkah)'. 이 두 단어가 우리의 영혼을 다사롭게 적십니다. 덮개는 결혼식 날 신랑이 신부를 온전히 감싸 안아 보호하는 사랑의 장막을 뜻하며, 초막은 거친 광야 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위해 임시로 지어주신 소박한 은혜의 쉼터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함을 보시고 상을 내리시는 가파른 재판장이 아닙니다. 주님은 오히려 껍데기가 다 벗겨져 대머리가 되고 베옷을 입은 채 부끄러워 울고 있는 우리의 가련한 일상 한복판에 조용히 다가오셔서, 당신의 십자가라는 거대한 덮개로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어주시는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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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실한 자아를 포장하려던 피곤한 날갯짓을 멈추고 주님이 씌워주시는 은총의 초막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 우리에게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참된 묵상이란 내 이기적인 만족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조각내어 사용하려던 얄팍한 도구화를 멈추는 일입니다. 내 영혼을 가리고 있던 거짓된 치장과 소란을 잠재우고,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내 영적 벌거벗음을 정직하게 마주하여, 기어이 하나님의 다사로운 덮개 안으로 나를 포개어 얹는 거룩한 멈춤이자 사귐입니다. 우리가 아침마다 말씀의 숲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 내면의 소음을 끌 때, 세상의 평판에 목말라 헐떡이던 우리의 가쁜 숨은 가라앉고, 나를 조건 없이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신선한 평화의 숨결이 우리 영혼 속에 가득 차오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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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불안한 신앙 여정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 무거운 갑옷과 가짜 보석이 박힌 연극 의상을 입고 숨 막히는 연기를 펼치던 무대 뒤 지친 광대가 집으로 돌아가 안식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끝없이 유지하려면 한순간도 화려한 옷과 무거운 가면을 벗지 말고 더 과장된 몸짓으로 너의 위대함을 스스로 증명하라고 다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짜 장신구의 무게에 짓눌려 숨을 헐떡이면서도, 무대 아래로 추락할까 봐 두려워 팽팽한 긴장 속에 자신을 혹사하곤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대 위의 완벽한 주연 배우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히려 연극이 끝나고 불이 꺼진 캄캄한 대기실에 홀로 앉아 지쳐 울고 있는 우리의 남루함을 가만히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에 묻은 분장을 따뜻한 물로 다정하게 닦아내 주시며, 거추장스럽던 무거운 갑옷과 가짜 발찌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십니다. 우리가 내 잘남을 증명하려던 모든 헛된 배역의 연기를 멈추고 십자가의 조용한 대기실 안에 우리 존재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상처 입고 헐벗었던 우리의 일상은, 아버지가 어깨 위에 따뜻하게 덮어주시는 가장 포근한 모포, 곧 은총의 초막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세상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존엄한 자녀의 빛으로 눈부시게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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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초록 기운이 무성하게 대지를 가득 채우는 이 찬연한 여름날,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삼으라는 세상의 매정한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내 마음을 하나님의 순결한 성품에 조율하는 깊은 묵상의 자리에 고요히 엎드리며, 나를 조건 없이 안아주신 그 은혜에 의지해 곁에 있는 지치고 슬픈 이웃들의 자리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찬란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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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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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VSvQ9_s2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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