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1-12 두레박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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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버팀목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가난한 두레박으로 하나님의 깊은 샘에 내려앉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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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한여름의 매서운 뙤약볕이 온 대지를 달구어, 가로수 나뭇잎들조차 한 방울의 생수를 목말라하며 시뜻하게 늘어지는 7월의 한가운데입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가쁘고 갈증이 목을 조여 오는 이 뜨거운 계절, 우리 영혼 역시 보이지 않는 삶의 결핍과 내적인 고갈 때문에 은결든 아픔을 안고 홀로 신음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치열한 일상의 무대 위에서 강한 척, 아무 문제 없는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정작 속은 쩍쩍 갈라진 가문 논바닥처럼 메말라 버려, "과연 무너져 내리는 이 세상 한복판에 나를 붙들어 줄 참된 기둥이 있기나 한 것인가"라며 회의어린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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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잠잠한 눈빛으로 마주하는 이사야 3장 1절에서 12절의 풍경은, 예루살렘과 유다가 든든하게 의지하던 세상의 모든 안전망과 버팀목들이 어떻게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는지를 시리도록 서늘하게 보여줍니다. 예언자는 역사 속에 가득 찬 인류의 오만한 질주를 멈추어 세우듯 아프게 선언합니다. 양식과 물이라는 일상의 가장 기초적인 생존 수단으로부터 시작하여,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용사들, 사회의 공의를 수호해야 할 재판관들, 종교적 권위의 대명사인 선지자와 장로들, 뛰어난 기술과 지식을 자랑하는 엘리트들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줄 튼튼한 버팀목이라 굳게 신뢰하던 모든 가시적인 안전장치들을 하나님께서 단숨에 제하여 버리시겠다는 선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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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삶의 호시절에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세상의 유용한 것들을 삶의 중심에 두고 안도하곤 합니다. 더 많은 돈을 모으고, 더 높은 지위를 확보하며, 나를 보호해 줄 든든한 사회적 인맥과 스펙을 쌓아 올리는 일에 영혼의 진액을 다 쏟아붓습니다. 시인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에서 독재자들의 거대한 폭거에는 한마디 분노도 터뜨리지 못하면서 기껏해야 50원짜리 갈비에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정육점 주인에게 분개하는 자신의 용렬함을 아프게 자탄했습니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이 시인의 탄식처럼, 우리의 시선은 늘 사사롭고 얄팍한 욕망의 이익에 갇혀, 정작 삶의 근원적인 토대가 무너져 내리는 역사적 파국 앞에서는 비겁하게 침묵하곤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가 목도했던 예루살렘의 전도된 풍경이자 오늘 우리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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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목을 잃어버린 사회가 직면하는 참상은 너무나 잔인합니다. 소년들이 고관이 되고 아이들이 다스리게 되는 풍경은 단순히 나이의 적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분별력과 도덕적 품격을 잃어버린 미성숙한 존재들이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여 공동체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정서적 파국입니다. 이 척박한 무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학대하고, 어떻게든 남을 밟고 일어서 내 배를 채우는 이기적인 무한경쟁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됩니다. 세상은 나를 온 우주의 중심에 두고 다른 이들을 내 욕망을 채울 도구로 사용하라고 속삭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문법에 동화되어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무정한 존재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할지라도 실상은 바람에 나는 겨처럼 가벼운 허무의 수렁으로 빠져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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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절망의 쓰레기더미 속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의지하던 가짜 방패들과 오만한 버팀목들을 사정없이 허무심으로써, 기어코 우리 존재의 무력함과 부끄러운 민낯을 정직하게 대면하게 만드십니다. 뜨거운 여름날의 가뭄이 땅 밑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듯, 삶에 찾아온 뜻하지 않은 시련과 상실의 고통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부실한 모래성 위에 인생의 집을 짓고 살아왔는지를 폭로하는 하나님의 아프고도 다사로운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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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알량한 힘으로 무너져 내리는 세상을 버텨내려던 고단한 손길을 멈추고, 다시금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께 우리 존재의 방향을 돌려놓기 위해 무엇보다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묵상이란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깊은 샘에 내 가난한 영혼의 두레박을 깊이 드리워, 마른 목을 축이고 목마른 이웃들에게 생수의 잔을 건네는 성찰의 여정입니다. 내 욕망을 종교적으로 추인받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가볍게 빌려 쓰려던 얄팍한 처세술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의 안목 앞에 잠잠히 엎드려 마음의 온갖 요란한 소음을 끌 때, 비로소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던 무명의 백태가 맑게 벗겨지게 됩니다. 내 자아를 중심에 놓으려던 고집스러운 움켜쥠을 내려놓고, 말씀을 영혼 깊은 곳에 지며리 새겨 넣는 이 가난한 엎드림 속에서,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결코 요동하지 않는 거룩한 안식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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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불안한 신앙 여정은, 한여름 뜨거운 가뭄 속에서 물줄기가 말라 버린 계곡 한구석에 가만히 서 있는 작고 소박한 질그릇 두레박의 안식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계곡의 물이 말라 버리기 전에, 너 스스로 튼튼한 쇠사슬과 화려한 황금 양동이를 만들어 세상에서 가장 깊고 큰 물웅덩이를 독점하라"고 다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황금 양동이가 되기 위해 핏대를 세우며 버둥거리지만, 정작 계곡의 물이 완전히 말라붙는 파국이 들이닥칠 때 우리의 요란한 양동이는 텅 빈 채 뜨겁게 달구어져 스스로를 태우는 흉기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는 스스로 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천이 아닙니다. 위대한 농부이신 하나님은 아무런 자체 물줄기도 없고 깨어지기 쉬운 우리라는 작고 소박한 질그릇 두레박을 가만히 들어 올리십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인위적인 웅덩이도 가닿지 못하는 땅속 가장 깊은 곳에 예비해 두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라는 마르지 않는 지하 수맥 속으로 우리를 고요히 내려보내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튼튼해지려던 모든 헛된 긴장과 소란을 멈추고 말씀의 아딧줄에 우리 존재를 온전히 내어 맡긴 채 깊은 은혜의 수맥 속으로 가만히 가라앉을 때, 흙먼지 묻어 부서지기 쉬웠던 우리의 남루한 일상은, 온 대지의 가뭄을 다사롭게 적셔주며 목마른 이웃들의 시린 영혼을 투명하게 치유해 내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경이로운 은혜의 샘터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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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힘으로 인생의 무너진 탑을 다시 세워보려던 그 피로하고 날 선 다그침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이웃을 약탈하며 스스로 신이 된 듯 거드름을 피우던 예루살렘의 그 비루하고 남루한 바닥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가차 없이 짓밟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낮고 비참한 십자가의 제단 위에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존엄함은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강한 기둥을 세우고 무결한 인생을 입증해 내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툭하면 넘어지고 의심하며 어긋난 길로 도망치는 우리의 가녀린 실존조차 "너는 내 피로 값 주고 산 귀한 내 자녀란다"라고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그 다함 없는 자비에 온전히 잇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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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초록 기운이 무성하게 대지를 가득 채우는 이 찬연한 여름날,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삼으라는 세상의 매정한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내 마음을 하나님의 순결한 성품에 조율하는 깊은 묵상의 자리에 고요히 엎드리며, 나를 조건 없이 안아주신 그 은혜에 의지해 곁에 있는 지치고 슬픈 이웃의 자리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찬란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버팀목이 무너지는 자리는 절망의 종착역이 아니라, 가난한 두레박으로서 비로소 하나님의 가장 깊은 샘에 닿을 수 있는 은혜의 출발점입니다. 그 자리에서 오늘도 말씀의 아딧줄을 붙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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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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