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1-9 옹달샘의 잠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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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힘을 입증하려는 소란을 멈추고, 나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눈빛 앞에 고요히 머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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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한바탕 기운차게 지나간 뒤, 구름의 장막 뒤에 숨어 있던 맑고 시린 여름 밤하늘이 아련하게 얼굴을 내밉니다. 씻겨 내려간 하늘 저편에서 총총히 빛을 발하는 별들을 가만히 우러러보고 있으면, 세상의 시끄러운 다그침 속에 지쳐 있던 마음에 알 수 없는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매일 남들보다 더 뛰어난 쓸모와 능력을 증명해 내야만 대접받을 수 있다는 차가운 세상의 강박 속에서 남몰래 숨죽여 울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현실과 숱한 회의 때문에 신앙의 문턱에서 서성이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무한한 우주의 깊이만큼이나 넉넉한 품으로 우리의 작음을 안아주시는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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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편은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라는 감탄의 수미상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인은 밤하늘에 드넓게 펼쳐진 달과 별들을 바라보며 존재의 아뜩함을 경험합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광막한 우주 공간 속에서 촬영된 지구를 가리켜 '창백한 푸른 점'이라 명명하며, 먼지 한 톨에 불과한 이곳에서 인간들이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인 양 여기며 싸우는 비루함을 꼬집었습니다. 시인 역시 그 거대한 심연 앞에 서서 자신의 지극한 유한성을 직시하며 탄식을 터뜨립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주십니까." 우리는 한갓 티끌에 불과하여 시간의 거센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 갈 가녀린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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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의 위대한 반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그 보잘것없는 사람을 '생각(Zakar, 기억)'하시고 '돌보(Paqad, 방문)'십니다. 하나님은 힘을 과시하는 강한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약하고 무력한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술을 통해 당신의 거룩한 요새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세상은 힘의 크기로 군림하는 근육질의 세계가 아닙니다. 스스로의 작음을 고백하며 온전히 주님을 경외함으로 의지하는 연약한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피조세계를 다사롭게 돌보는 영화와 존귀의 왕관을 쓴 참된 주인공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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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나의 쓸모를 입증하려 질주하던 세상의 관성을 멈추고 나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눈빛과 마주하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유대인 신학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인간이 인간답게 되기 위해서는 우러러보는 법, 놀라고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말씀 묵상이란 내 욕망을 채워줄 종교적 점괘나 지식을 수집하는 관념적 행위가 아닙니다. 묵상은 만물을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실용성의 굳은 껍질을 깨뜨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향해 우리 영혼의 안테나를 예민하게 세우는 거룩한 안식입니다. 구상 시인은 그의 시 「말씀의 실상」에서 "내 눈에 끼었던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는 순간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묵상을 통해 우리 내면의 백태가 벗겨질 때, 비로소 무심코 스쳐 지나가던 길가의 풀꽃도, 흘러가는 바람 한 줌도 창조주의 은밀한 숨결이 담긴 눈부신 기적임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사물들을 수단으로 사용하려던 탐욕을 멈추고, 주님이 선물로 주신 세상을 비로소 온전히 향유하는 참된 일상의 신비가로 우리는 빚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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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의 매정한 효율성의 잣대로 내 삶을 평가하며, 내세울 만한 헌신의 실적도 없으니 하나님께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가 아닐까 자책하며 짙은 회의에 빠져 계시지는 않습니까. 더 뜨겁고 무결점의 도덕성을 스스로 증명해 내야만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실 것이라는 율법의 무거운 멍에에 짓눌려 지쳐 계신가요. 이제 인생의 모든 무게를 나 혼자 짊어지려던 그 날 선 긴장과 피로를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연약함과 한계 속에서 비틀거리는 우리의 적나라한 일상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히려 흙먼지 같고 깨어지기 쉬운 우리 존재를 가엾게 여기사, 친히 십자가의 낮고 비참한 자리까지 내려오시어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덮어 안아주셨습니다. 우리의 존엄함은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강한 유용성을 입증해 내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툭하면 넘어지고 흔들리는 우리의 초라한 실존조차 "너는 내 마음에 새겨진 존귀한 걸작품이란다"라고 불러주시며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워주시는 하나님의 그 한결같고 압도적인 사랑에 온전히 잇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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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어두운 깊은 숲속에 조용히 고여 있는 작은 옹달샘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우리에게 스스로 거대한 탐욕의 댐을 짓고 세차게 물을 뿜어내어 얼마나 힘이 세고 요란한 존재인지를 온 세상에 입증해 보이라고 다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물길을 통제하려 핏대를 세우다 금세 바닥이 드러나 쩍쩍 갈라지는 목마름과 소진을 경험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시끄러운 폭포수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자랑하지도 않지만, 그저 숲속 한구석에서 흙먼지를 고요히 가라앉히며 맑게 깨어 있는 그 작은 옹달샘의 잠잠함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옹달샘이 스스로 출렁거림을 멈추고 거울처럼 맑은 맨살을 드러낼 때, 놀랍게도 그 조그만 수면 위에는 아득히 먼 하늘 위에 총총히 박혀 있는 저 장엄하고 찬연한 우주의 별밭이 고스란히 내려앉아 아름답게 비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내 잘남을 뽐내려던 헛된 소란을 멈추고 십자가의 반석 곁에 우리 존재를 고요히 안돈시킬 때, 비로소 보잘것없던 우리의 남루한 일상은 온 하늘의 영광을 가장 깊고 투명하게 담아내며 목마른 이웃들의 영혼을 다사롭게 적셔주는 가장 눈부시고 경이로운 은혜의 샘터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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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잎새들이 밤이슬을 머금고 맑게 빛나는 이 한여름의 밤, 내 힘으로 세상의 꼭대기에 올라서려던 모든 시끄러운 질주를 미련 없이 멈추어 서십시오.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환대하시는 주님의 말씀 앞에 고요히 머무는 일상의 묵상 자리에 엎드리며, 나를 존귀하게 입혀주신 그 십자가의 넉넉한 은혜를 힘입어 내 곁에 있는 약하고 지친 이들을 다정하게 보듬어 안는 찬란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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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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