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1-17 풍경이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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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내 칼날을 녹이고 하나님의 방패 뒤에 고요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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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습한 기운이 대지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후텁지근한 여름날 아침입니다.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세상의 부조리한 오해와 서늘한 비방의 바람 앞에서 영혼의 숨통마저 막힌 채 홀로 눈물짓고 계실 성도들과, 내 믿음의 진실함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깊은 회의와 쓰라린 한숨을 삼키며 참된 안식의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에, 우리의 마른 영혼을 생명수로 다사롭게 적시는 주님의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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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편은 특별한 표제를 달고 있습니다. '식가욘(Shiggaion)', 격렬하고도 열정적인 감정의 울림을 담은 노래라는 뜻입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광야의 밤, 시인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공포 속에서 부르짖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시 7:1-2).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다윗이 드린 이 기도는, 억울함의 극점에서 터져 나온 날것의 절규입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강함과 무결함을 입증하라고 다그칩니다. 누군가 나를 모함하거나 해하려 할 때, 제때 맞서 싸우지 않으면 어리석고 나약한 패배자로 규정해 버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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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의 세계가 놀랍고 위대한 까닭은, 내면의 억울함과 분노, 심지어 대적들을 향한 거친 보복의 마음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내도록 허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면 언제나 온유하고 거룩한 표정만을 지어야 하며, 원수의 핍박 앞에서도 즉각적인 용서의 언어만을 발설해야 한다는 종교적 강박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칫 우리의 실존을 깊은 위선과 자기 분열로 몰고 가기 쉽습니다. 시인이 이 시끄럽고 사나운 정서를 하나님께 토해놓는 순간, 묘하게도 우리 영혼 안에서 놀라운 전환이 일어납니다. 날것의 감정을 기도로 올릴 때,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복수심과 폭력성은 고요히 중화되고 스러지며, 마침내 내 감정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성찰적 거리가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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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시인은 다른 이들의 허물을 지적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엄위하신 공의의 저울 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단독자로 올려놓는 눈물겨운 자기 성찰을 시도합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내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소서"(시 7:3-5).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은 언제나 타인만을 정죄하지만,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내 손에 묻은 보이지 않는 먼지와 죄악의 흔적을 먼저 들여다봅니다. 김현승 시인은 그의 시 「연(鉛)」에서 "나는 내가 항상 무겁다 / 나를 등에 지고 다닌다 / 맑고 고요한 내 눈물을 / 밤이슬처럼 맺혀보아도 / 눈물은 나를 떼어낸 조그만 납덩이가 되고 만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모함에 맞서 나 자신의 무죄함을 억척스럽게 입증하려 할 때, 우리의 자아는 천근만근 무거운 납덩이가 되어 우리 영혼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립니다. 그러나 내가 내 인생의 재판장이 되어 스스로를 변호하려던 그 피곤한 몸부림을 멈추고,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단독자로 엎드릴 때, 우리를 짓누르던 그 무거운 납덩이는 비로소 은혜의 용광로 속에서 녹아내려 고요한 안식의 찬송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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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상처 입은 내 억울함의 집착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서사 속으로 우리 삶의 방향을 돌려세우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참된 묵상이란 성경 구절을 내 입맛대로 취사선택하여 내 욕망을 정당화할 무기로 삼는 얄팍한 주문 모음집이 결코 아닙니다. 동양의 옛 선인들이 시(詩) 전체를 꿰뚫는 핵심을 가리켜 삿된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뜻의 사무사(思無邪)로 요약하며 마음의 때를 닦아 본래의 청정함을 되찾는 일이라 했던 것처럼, 말씀 묵상은 세속의 이기적인 탐욕과 분노로 흐려진 우리 영혼의 창을 맑고 투명하게 닦아내는 치열한 자기 정화의 여정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거울 앞에 잠잠히 머무를 때,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던 거짓 현실의 백태가 비로소 벗겨지게 됩니다.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시 7:15)라는 우주적 공의의 법칙을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안목을 선물 받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꾀는 결국 바람에 나는 가벼운 겨처럼 흔적도 없이 스러질 허망한 환상에 불과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 분노의 칼을 거두고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우리 영혼의 닻을 깊이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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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힘으로 인생의 방패를 깎아내어 나를 방어하려던 그 서늘하고 피곤한 도구들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원수들의 조롱 앞에 비참하게 고개 숙인 다윗의 그 초라하고 남루한 바닥을 다 아시면서도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그 억울함의 신음 한복판에 찾아오시어,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시 7:10)라고 선언하시며 기어코 그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거룩함은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무결하게 내 가치를 증명해 내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툭하면 흔들리고 길을 잃어버리는 우리의 가녀린 일상조차 너른 품으로 덮어 안으시어, 기어코 십자가의 붉은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 내시고 의인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압도적이고도 다함 없는 자비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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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한여름 고요한 산사(山寺)의 처마 끝에 걸린 작은 풍경(風磬)이 바람을 맞이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칠 때 스스로 단단하고 날카로운 강철 무기가 되어 바람의 방향을 거슬러 찌르고 싸워야만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다그칩니다. 그러나 바람과 맞서 싸우려 뻣뻣하게 힘을 주는 단단한 물체는 결국 거센 태풍 앞에 허무하게 꺾이고 깨어질 뿐입니다. 처마 끝에 조용히 매달린 풍경은 자신을 채우고 있던 날 선 소리들을 비워내어 온전히 텅 빈 존재가 되는 길을 택합니다. 풍경은 바람이 부는 대로 제 몸을 맡기어 흔들릴 뿐, 결코 바람에 맞서 싸우려 대항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세차게 때리는 그 매서운 비바람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품어 안아, 어두운 세상을 가장 평화롭고 맑게 깨우는 은은한 하늘의 찬송 소리로 번역해 냅니다. 우리가 내 잘남을 증명하려던 칼날 같은 긴장을 멈추고 십자가의 처마 끝에 우리 존재를 잠잠히 매어 달 때, 비로소 우리의 상처 입고 억울했던 일상은 세상을 휩쓰는 사나운 바람조차 다사로운 은총의 멜로디로 빚어 내는 가장 경이롭고 찬연한 평화의 울림통으로 눈부시게 되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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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푸른 기운이 한층 깊어가는 이 7월, 내 칼을 갈아 타인을 제압하려 드는 세상의 거칠고 매정한 수직적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내 안의 분노를 거두고 하나님의 마음에 영혼의 닻을 내리는 정화의 묵상 자리에 고요히 엎드리며, 나를 조건 없이 안아주신 그 의로운 십자가 방패 뒤에서 곁에 있는 지친 이웃의 상처를 다정하게 보듬어 안는 눈부신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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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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