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1-12 아침이 열리는 자리

by 평화의길벗 posted Jul 0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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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12 아침이 열리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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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탄식을 은총 앞에 내려놓는 거룩한 엎드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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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더위의 기운이 밤새 가시지 않은 7월 초순의 어느 이른 아침, 대지가 본격적인 하루의 소란을 시작하기 직전의 고요한 새벽녘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팽팽해지는 여름의 열기 속에서도, 홀로 깨어난 아침은 언제나 우리에게 낯선 설렘과 동시에 말할 수 없는 내면의 무게를 건네곤 합니다. 밤새 영혼을 짓누르던 염려와 세상의 거친 소음들을 뒤로한 채, 과연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묻는 막막한 회의를 안고 홀로 눈물짓는 이들에게, 마른 영혼을 생명으로 채우시는 주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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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편의 시인은 아침이 밝아오자마자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세상과 맞서는 대신, 보이지 않는 하늘을 향해 자신의 연약한 언어를 가만히 밀어 넣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라틴어 성경은 시인이 주님께 드린 이 기도를 '나의 신음, 나의 탄식(clamorem meum)'이라고 옮겼습니다. 인생의 모진 풍랑을 겪어본 이들은 압니다. 고통의 깊이가 너무 깊고 아픔이 뼈에 사무칠 때, 우리는 도무지 조리 있고 세련된 문장으로 기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저 가슴 깊은 곳에서 가녀리게 흘러나오는 신음과 헐떡이는 탄식만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내 기도는 깨어지고 어눌한 신음에 불과할지라도, 우리 마음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탄식의 행간 속에 담긴 아픔을 세심하게 통독하고 계심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내 유창한 언변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는 종교적 기술이 아닙니다. 오히려 언어가 끊어진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나의 가장 비참한 부서짐조차 업신여기지 않으시고, 다사로운 사랑의 언어로 받아 안으시는 하나님의 그 한결같은 은총 속으로 나를 던져 넣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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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이처럼 아침마다 주님을 향해 눈을 드는 까닭은, 그가 맞닥뜨린 세상의 언어가 너무나 폭력적이고 더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열린 무덤 같은 목구멍. 이 얼마나 소름 끼치고도 정직한 인간 실존의 고발입니까. 겉으로는 그럴듯한 아첨의 말과 교묘한 위선의 언어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온통 남을 밟고 일어서서 내 배를 채우려는 탐욕과 죽음의 악취가 가득 찬 상태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일상 역시 이 열린 무덤의 소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이겨야만 성공한다는 경쟁의 선전선동,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선 자들의 오만한 확신이 매일 아침 우리의 영혼을 마비시키려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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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인은 그 소란한 무덤의 세계에 동화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는 도리어 고요한 침묵의 안식 속으로 들어가, 십자가의 넉넉한 은총을 온몸으로 호흡하는 묵상의 자리를 택합니다. 기형도 시인이 "성경에만 밑줄을 긋지 말고 삶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고 외쳤던 것처럼, 참된 묵상은 내 욕망을 채워줄 종교적 지식을 수집하는 사변적 유희가 결코 아닙니다. 묵상은 온갖 거짓과 탐욕으로 날카로워진 나의 비루하고 모난 일상 위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밑줄을 긋고 가치관을 뜯어고치는 치열한 영적 자기 닦음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영혼 깊은 곳에 오래도록 되새김질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기둥을 선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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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더 높은 자리, 더 강한 힘을 가져야만 나를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 무덤 같은 세상의 언어를 흉내 내며 피로감에 지쳐 계시지는 않습니까. 나의 연약함과 거듭되는 실패 때문에 나는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누릴 자격조차 없는 버려진 자라며 짙은 절망의 어둠 속에 홀로 주저앉아 계신 분은 없습니까. 주님은 원수들의 비방 앞에 힘없이 고개 숙인 시인의 그 초라하고 남루한 바닥을 다 아시면서도 그를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방에서 조여 오는 위협 한복판에 찾아오시어,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구원과 참된 평화는 우리가 얼마나 세상보다 더 똑똑하고 강해지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틈만 나면 나의 유익을 구하려 도망치는 우리의 비루하고 가녀린 일상조차 너른 자비의 품으로 덮어 안으시어, 기어코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씻기시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품어 안으시는 주님의 그 맹렬하고도 압도적인 은총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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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 한복판에 조용히 서 있는 안개그물(Fog Catcher)의 눈물겨운 헌신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면 요란한 드릴로 땅을 깊이 파내어 거대한 우물을 독점하는 강자가 되어야 한다고 윽박지릅니다. 그러나 아무 도구도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사막은 절망의 땅일 뿐입니다. 영리한 안개그물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자랑하지도 않지만, 가장 깊고 어두운 밤마다 사막을 소리 없이 찾아오는 차가운 안개를 향해 자신의 온몸을 투명하게 열어둡니다. 그 가녀린 그물망이 차가운 밤이슬을 온몸으로 견디며 안개를 고요히 받아 안을 때, 마침내 그물망 끝에는 한 방울 한 방울 가장 맑고 깨끗한 은총의 단수가 맺혀 흘러내리며 메마른 사막의 깨지기 쉬운 생명들을 다사롭게 먹여 살립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인생을 채우려던 헛된 소란을 멈추고 십자가의 그물망 위에 나를 잠잠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우리의 텅 비고 연약했던 상처들은 주린 이웃의 갈증을 해갈하는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생명의 샘터로 찬연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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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초록 기운이 무성하게 깊어가는 이 찬연한 칠월, 내 힘을 과시하며 남을 소외시키려는 세상의 모질고 차가운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내 어눌한 신음마저 은총으로 통역하시는 주님의 말씀 앞에 고요히 엎드리는 묵상의 자리를 지켜내며, 나를 호위하시는 그 넉넉한 사랑의 힘에 기대어 내 곁에 있는 지친 이들에게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는 다정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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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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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듣기

https://youtu.be/2SDZb9nXo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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