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6 생명의 수맥에 닿아 흐르는 기쁨

by 평화의길벗 posted Jun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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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 생명의 수맥에 닿아 흐르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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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경쟁하는 세속의 어리석은 길을 떠나, 거짓된 현실을 꿰뚫어 보고 세상이 흔들 수 없는 정체성으로 나를 빚어내는 거룩한 뿌리 내림을 통해, 한없이 연약하고 메마른 우리 일상조차 철을 따라 열매 맺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푸르게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다사로운 은혜에 온전히 잇대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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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다." 단테의 신곡 첫머리에 등장하는 이 절절한 고백은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의 폐부를 깊숙이 찌릅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 캄캄한 숲 속을 헤매는 듯한 막막함은 비단 옛 시인만의 몫이 아닐 것입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나의 쓸모와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내느라 남몰래 지쳐 계신 분들, 그리고 짙은 회의감 속에서 참된 진리의 길을 애타게 묻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에, 우리의 마른 영혼을 생수로 다사롭게 적시는 주님의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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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밟고 올라서서라도 번듯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지혜라고 부추깁니다. 구약성경 시편 1편은 거대한 시편 150편 전체의 문을 여는 장엄한 서시로서,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세속의 헛된 길과 하나님께 온전히 기대어 사는 생명의 길이 어떻게 다른지를 우리 앞에 선명하게 펼쳐 보여줍니다. 이 시편은 "행복하여라"라는 히브리어 '아쉬레'의 찬연한 선언으로 시작해 "망할 것이다"라는 '토벳'의 엄중한 선고로 끝을 맺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악인, 죄인, 오만한 자는 단지 도덕적인 결함이나 법률적인 죄를 저지른 사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철저히 자기를 세계의 중심에 둔 채 타인의 생기를 빼앗아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자기 속으로 구부러진 인간입니다. 세상은 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남을 내려다보며 자기 힘을 과시하는 것을 성공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길의 끝이 결국 생명력을 잃고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와 겨처럼 속절없이 스러지는 허무일 뿐이라고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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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끝없는 허무를 향해 달려가는 세속의 질서를 거스르고, 참된 생명의 길을 걷기 위해 시편 기자가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행하는 묵상입니다. 참된 묵상이란 율법 조문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지적 유희나 종교적 의무가 아닙니다. 묵상은 물질적 번영과 성취만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속삭이는 거짓된 현실을 꿰뚫어 보는 통찰의 안목을 얻는 일이며, 동시에 광야같이 척박한 세상 속에서도 세상이 흔들 수 없는 굳건한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위대한 생명의 사건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자신의 처세술이나 인위적인 노력으로 억지 열매를 맺어내는 자가 아닙니다. 그저 생명의 근원이신 시냇가 곁에 자신의 연약한 뿌리를 가만히 뻗어두어, 수맥으로부터 흘러드는 물을 고요히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시인 구상 선생은 말씀의 실상에서 "내 눈에 끼었던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는 순간 만유 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진정한 묵상을 통해 영혼의 백태가 벗겨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하나님의 그 은밀하고도 위대한 은총의 숨결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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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화려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못한 내 처지를 한탄하며, 남들보다 더 완벽한 신앙의 실적과 잎사귀를 피워내야만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는 율법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계시지는 않습니까. 때로는 거듭되는 실패와 유혹 앞에서 나는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아니라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쓸모없는 존재인가 봐, 라며 짙은 자괴감과 절망의 그늘에 홀로 웅크려 계신 분이 있습니까. 이제 내 힘으로 생수의 강을 파내어 삶의 갈증을 해결하려던 그 피곤하고 서늘한 삽질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툭하면 죄인의 길을 기웃거리는 우리의 그 비루하고 가벼운 바닥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가차 없이 내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메말라가는 우리의 남루한 영혼 곁으로 친히 다가오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라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은총의 시냇물을 조건 없이 흘려보내 주십니다. 우리의 구원과 참된 평안은 우리가 가뭄 속에서 얼마나 훌륭하게 스스로 물을 찾아내어 푸른 잎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저 자격 없고 상처 입은 나의 메마른 존재를 무한한 자비로 덮어 안으시어, 기어코 철을 따라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맹렬하고도 압도적인 은총의 강물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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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메마른 광야에 덩그러니 놓인 작고 마른 우물이 거대한 지하 수맥과 맞닿는 과정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꾀는 우리에게 너 스스로의 힘으로 땅을 깊이 파내어, 너만의 물을 찰랑찰랑하게 채운 화려한 우물이 되라고 다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내 영혼의 고갈을 숨긴 채, 억지로 빈 바가지를 길어 올리려다 깊은 피로와 허무에 속절없이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위대한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물을 만들어내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라는 거대하고 영원한 지하 수맥을 우리 영혼의 밑바닥 가장 깊은 곳에 이미 넉넉히 흐르게 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우물을 채우려던 헛된 고집을 멈추고 말씀의 깊은 수맥으로 내 영혼의 관을 고요히 연결할 때, 비로소 한 방울의 물조차 낼 수 없었던 우리의 텅 빈 우물은 세상을 풍요롭게 적시고 상처 입은 이웃의 목마름을 다사롭게 해갈하는 가장 경이롭고 찬연한 하나님 나라의 샘터로 눈부시게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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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이 시대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여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세상의 어리석은 길을 미련 없이 거부하십시오. 그저 나의 남루함을 긍휼로 채우시는 은혜의 시냇가에 영혼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거룩한 묵상의 자리에 엎드리며, 주님이 거저 부어주시는 그 넉넉한 생명력 안에서 곁에 있는 지친 이들에게 다정하게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는 눈부신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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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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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l-S6TKQIE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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