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01-12 부활 신앙의 일상적 성육신 : 거룩한 연보와 질서 있는 동역의 삶

by 평화의길벗 posted Jun 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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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01-12 부활 신앙의 일상적 성육신 : 거룩한 연보와 질서 있는 동역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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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 명했던 것과 동일하게,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구제 연보의 구체적인 원칙(매주 첫날, 수입에 따라, 미리 준비, 투명한 전달)을 제시합니다. 이어서 자신의 방문 계획을 알리며, 에베소에서 전도의 큰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들도 많으므로 오순절까지 머물겠다고 밝힙니다. 또한 디도가 고린도를 방문할 때 교인들이 그를 두려움 없이 영접하고 존중할 것을 당부하며, 아볼로의 자율적인 방문 의사를 존중하는 성숙한 상호 동역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서신의 실천적 권면들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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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및 경제적 배경 : 1세기 고린도는 상업이 발달한 부유한 도시였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기근(행 11:28)과 극심한 경제적 핍박으로 굶주림에 처해 있었습니다. 바울이 추진한 '성도를 위하는 연보'는 단순한 자선 사업이 아니라,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 교회를 하나로 묶어 우주적 교회의 일치와 연대를 증명하는 거대한 선교적 프로젝트였습니다.

# 신학 및 사상적 배경 : 고린도전서는 영적 교만과 무질서로 병든 '문제 교회에 주는 바울의 위대한 목회적 답안지'입니다. 특히 바울은 15장에서 장엄한 부활의 신학을 선포한 직후, 16장에서 매우 건조해 보이는 '돈(연보)'과 '여행 일정', '인간관계'의 문제로 곧장 하강합니다. 헬라 이원론자들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분리했지만, 바울은 참된 부활 신앙이란 허공에 떠 있는 영적 황홀경이 아니라, 내 지갑을 열어 굶주린 형제를 돕고(재정의 성화), 동역자들을 존중하며 배려하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질서로 증명되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영성은 일상의 질서와 투명한 행정을 통해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오이코도메)으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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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 성도를 위하는 연보 : 보편 교회를 향한 거룩한 책임

하나님은 우리가 속한 개교회의 이기적인 울타리를 넘어, 고난받는 열방과 타 지역의 형제자매들을 돌아봄으로써 온 우주적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깨닫게 하시는 연대(Solidarity)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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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이라는 말로 새로운 주제를 시작하며,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고린도 교회도 동일하게 행하라고 지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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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에 관하여는”이라는 표현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보낸 편지에서 질문했던 문제들에 대한 바울의 공식적인 답변임을 나타냅니다. 바울은 지금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연보)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마게도냐, 아가야 등 자신이 개척한 이방인 교회 전체가 이 거룩한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방인 교회가 유대인 교회의 물질적 결핍을 돕는 것은, 그들이 영적인 빚을 갚는 행위이자 민족과 혈통의 장벽을 허물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의 영광을 증명하는 위대한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연보는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형제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짊어지는 십자가적 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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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는 심각한 개교회주의(Localism)의 병폐를 앓고 있습니다. 내 교회 건물을 화려하게 짓고 우리끼리 친교하는 데는 수억 원을 쓰면서도, 당장 월세도 내지 못해 문을 닫는 농어촌 미자립 교회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선교사들의 눈물에는 철저히 무관심합니다. 우리의 재정 사용은 하나님의 보편 교회를 향해 열려 있습니까?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첫 번째 표지는 이웃의 고통에 반응하는 지갑의 열림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울타리 밖에 있는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 그리고 열방의 성도들을 향해 나의 기득권을 쪼개어 흘려보내는 헌신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부활 신앙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물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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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절 연보의 원칙 : 질서 있고 투명한 헌신

예수님은 우리의 헌신이 일시적인 감정이나 강요에 억눌린 짐이 아니라,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정기적이고 투명하게 준비된 거룩한 예물이 되기를 기뻐하시는 질서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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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매주 첫날에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자신이 갈 때에 급히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명합니다. 또한 자신이 도착하면 교회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그 은혜(연보)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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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헌금의 네 가지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첫째, 정기성입니다. "매주 첫날(안식 후 첫날,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모이는 날입니다. 헌금은 부활의 은혜에 대한 정기적인 예배의 행위입니다. 둘째, 개별성입니다. "각 사람이", 즉 신앙의 헌신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1대 1의 결단입니다. 셋째, 비례성입니다. "수입에 따라(잘되는 대로)", 즉 무리한 빚을 지거나 허영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만큼 정직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넷째, 자발성(미리 준비함)입니다.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부흥사가 와서 감정을 부추기거나 군중 심리에 휩쓸려 억지로 짜내는 헌금을 바울은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나아가 바울은 재정의 투명성을 극대화합니다. 거액의 헌금을 바울 혼자 독단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람들(도키마세테)'을 선출하여 운반하게 하는 완벽한 행정적 안전장치를 마련합니다. 영적인 사역일수록 그 재정 처리의 과정은 세상의 상식보다 훨씬 더 공정하고 흠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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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재정의 불투명성과 헌금 강요 때문입니다. 건축이나 특별 행사를 명목으로 성도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거나 체면을 앞세워 억지로 헌금을 거두어들이는 종교적 착취가 여전합니다. 우리의 헌금 생활을 돌아봅시다. 주일 아침에 습관적으로 지갑을 열어 남는 돈을 내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 때문에 무리해서 헌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헌금은 내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치열한 신앙고백입니다.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며 미리 정성껏 구별하여 준비하십시오. 또한 교회의 리더와 재정부는 성도들의 피땀 어린 헌금을 1원 한 푼이라도 세상의 불신자들이 보아도 흠잡을 데 없이 투명하고 정직하게 집행하여, 복음의 영광이 재정 문제로 가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감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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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절 바울의 목회적 일정 : 열린 문과 대적자들 사이에서

성령 하나님은 사역의 일정조차 주님의 허락하심에 온전히 맡기게 하시며, 대적의 위협과 고난 속에서도 영혼을 구원할 복음의 문이 열린 곳을 향해 목숨 걸고 달려가게 하시는 사명의 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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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에 가서 겨울을 지내고 그들의 파송을 받아 이동하려는 계획을 밝힙니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보기를 원치 않고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간 함께 머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 이유는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동시에 대적하는 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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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의 선교 일정을 고린도 교회와 공유합니다. 그는 그저 스쳐 지나가듯 그들을 보지 않고, 겨울이라는 가장 움직이기 힘든 계절을 그들과 함께 보내며 그들의 영적 문제를 깊이 치유하고 돌보고자 하는 목회자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의 전제는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철저한 주권적 복종에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곳은 9절입니다. 현재 바울이 있는 에베소에는 복음 전파를 위한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대적하는 자가 많다"는 절망적인 상황도 공존했습니다. 보통의 세속적 지혜라면 대적자가 많을 때 문이 닫혔다고 생각하고 피할 궁리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십자가 신학은 다릅니다. 악한 권세의 거센 반발과 핍박이야말로, 그곳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임하고 있다는 반증이었습니다. 바울은 안락함을 찾아 도망가는 대신, 영혼을 건져내기 위해 기꺼이 핍박의 최전선(에베소)에 더 머물며 영적 전투를 감당하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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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철저하게 실용주의와 편의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직장이든 신앙생활이든 나에게 이익이 되고 편안한 곳만 찾아다니며, 핍박이나 갈등이 생기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라고 쉽게 합리화하며 도망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의 현장은 어떠합니까? 복음을 전하려 할 때, 정직하게 기업을 경영하려 할 때, 무너진 가정을 기도로 세우려 할 때 맹렬한 대적자(비난, 손해, 영적 갈등)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두려워 포기하지 마십시오. 대적자가 많다는 것은 지금 여러분 앞에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과 승리의 문이 광대하게 열려 있다는 십자가의 표식입니다. 피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부르신 그 삶의 현장에서, 바울처럼 핍박과 수고를 기꺼이 짊어지며 거룩한 복음의 문을 여는 돌파의 신앙을 회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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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2절 동역자를 대하는 태도 : 권위주의를 넘은 상호 존중과 배려

하나님은 나이와 계급을 내세우는 세상의 권위주의를 허무시고, 서로를 주의 일꾼으로 존중하며 억압적인 통제가 아닌 자유와 신뢰 속에서 일하게 하시는 성숙한 동역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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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디도가 고린도에 이르면 그를 두려움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고 당부하며, 그도 바울 자신처럼 주의 일을 힘쓰는 자라고 칭찬합니다. 아무도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주기를 원합니다. 이어서 아볼로에 대해서는, 고린도로 가라고 많이 권면했으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고 기회가 있으면 갈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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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두 명의 동역자를 대하는 지극히 대조적인, 그러나 일관된 십자가적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첫째, 젊고 경험이 부족한 디도(디모데의 오기일 수 있으나 문맥상 본문의 지침)에 대한 배려입니다(디모데를 향한 당부). 영적 교만에 빠져 똑똑한 체하는 고린도 교인들 앞에서, 어리고 소심한 디모데는 위축되기 쉬웠습니다. 바울은 영적 아비의 권위로 그들을 막아섭니다. "디모데를 멸시(업신여기지) 마라!" 나이와 학벌이 아니라, 그가 "주의 일에 힘쓰는 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최고의 존경을 바쳐야 한다는 영적 질서의 선포입니다. 둘째, 라이벌로 오해받던 아볼로에 대한 존중입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는 바울파와 아볼로파가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1장). 세속적 정치인이라면 아볼로를 견제했겠지만, 바울은 오히려 아볼로에게 고린도에 가서 그들을 돌보라고 수차례 강력히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볼로는 바울의 권면을 거절합니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바울의 반응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아볼로를 정죄하거나 강압하지 않고, 그의 자율적인 판단과 하나님의 타이밍(기회가 있으면 갈 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줍니다. 억압과 군림이 아닌,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워주는 완벽한 수평적 동역의 극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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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교회를 멍들게 하는 가장 큰 죄악은 '갑질'과 '권위주의'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직분을 계급으로 여기고, 나이 어린 부교역자나 청년들을 함부로 대하며 상처를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반대로, 리더의 뜻과 다르면 무조건 불순종하며 대립각을 세우기도 합니다. 교회의 리더와 성도 여러분, 우리의 동역은 어떠합니까? 나보다 어리고 부족해 보이는 지체라 할지라도 그가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자라면 그리스도를 대하듯 존중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사역을 의논할 때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정죄하거나 강압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의 자유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그 사람만의 시간(타이밍)을 기다려 줄 줄 아는 넉넉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세속적인 통제와 억압을 십자가에 못 박고, 바울과 아볼로가 보여준 이 눈물겨운 상호 존중과 신뢰의 동역을 우리 공동체 안에 아름답게 꽃피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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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온 우주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한 몸 되게 하시고, 

질서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오늘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권면 앞에서, 

부활 신앙을 가졌노라 자랑하면서도 

정작 지갑을 열어 형제를 돕는 일에는 인색하였고, 

교회의 재정과 행정을 세상의 기준보다도 못하게 

불투명하게 처리했던 우리의 이기주의와 위선을 철저히 회개합니다. 

주님, 우리 교회에 참된 십자가의 영성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내 개교회의 배만 불리는 탐욕을 버리고, 

고통받는 열방의 성도들과 미자립 교회를 향해 

미리 준비된 정성스러운 연보를 기꺼이 흘려보내는 

거룩한 낭비가 이 제단 위에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앞에 닥친 고난과 맹렬한 대적자들 앞에서 도망치던 비겁함을 용서하소서. 

도리어 그 핍박의 현장이 하나님께서 열어두신 위대한 복음의 문임을 깨닫고, 

내게 맡겨진 직장과 가정의 척박한 땅에서 물러서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는 담대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교회 안에서 나이와 계급으로 서로를 무시하고 군림하던 

더러운 권위주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의 연약함을 보듬고 아볼로의 거절을 존중했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주님의 일꾼으로 귀히 여기고 신뢰하며 배려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역의 공동체를 세워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의 모든 구체적인 질서 속에 참된 부활의 생명으로 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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