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1-11 자격 없는 자에게 내리는 은총의 단비

by 평화의길벗 posted Jun 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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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1-11 자격 없는 자에게 내리는 은총의 단비


참된 신앙이란,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며 복음을 관념적인 지식으로 전락시키려던 세속의 헛된 지혜를 직시하고, 내 입맛에 맞는 말씀만 편식하려는 이기심을 버리고 말씀의 밥상에서 나를 허물어 내는 거룩한 영적 식사를 통해,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처럼 흠결 많고 자격 없는 우리조차 기어코 부활의 영광스러운 증인으로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에 온전히 기대는 생명 사건입니다.


긴 가뭄 끝에 찾아온 반가운 장맛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메말라 죽은 듯 엎드려 있던 길가의 풀꽃들 속으로 푸른 생명의 숨결을 거침없이 불어넣는 아침입니다. 죽음 같은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이 경이로운 자연의 부활 앞에서도, 팍팍한 세상 속에서 나의 가치와 쓸모를 끝없이 증명해 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쫓겨 남몰래 한숨짓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내 모습 때문에 깊은 회의와 소외감을 안고 진리의 길을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에, 사망의 그늘을 거두어 내시고 생명의 빛으로 찾아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늘 화려한 자격증과 뛰어난 실적을 내밀며 스스로 완성된 자임을 입증해야만 환대받을 수 있다고 다그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마주한 고린도전서 15장의 풍경은, 그토록 많은 은사와 지식을 자랑하던 고린도 교인들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치명적이고도 영광스러운 토대인 부활의 복음을 어떻게 오해하고 훼손했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헬라 이원론의 영향에 젖어 있던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육신은 무가치하고 악한 것이기에 오직 영혼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죽은 자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관념적인 철학이나 지적 유희로 소비했을 뿐,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죽음을 깨뜨리고 다시 사셨다는 실재를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치명적인 오해 앞에서 단호하고도 절절하게 선언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바로 이 부활의 복음임을 강력히 천명합니다. 부활의 복음에 비추어 십자가가 이해되지 아니하면, 십자가의 대속은 결코 제대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를 살리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라면, 그분의 부활은 바로 그 생명의 승리가 온 우주에 성취되었음을 확증하는 찬연한 마침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게바와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와 야고보에게 차례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가슴 먹먹한 고백을 이어갑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고 합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고백합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영어로는 untimely born, 이 얼마나 처절하고 정직한 자기 인식입니까. 세상의 잣대로 보면 바울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요 기득권자였으나, 부활하신 주님의 그 압도적인 빛 앞에 섰을 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미숙하고 흠결 많으며 덜떨어진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자각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던 자비 없는 자였고, 구원받을 자격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님은 이 자격 없고 덜 형성된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던 그 완악한 영혼에게 부활의 찬란한 빛으로 다가가시어, 그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의 붉은 피로 남김없이 덮으시고 기어코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가장 존귀한 그릇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거대한 사랑 앞에서 오열하듯 선언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 지식도, 내 의로움도, 내 열심도 아닙니다. 나를 긍정하시는 분은 오직 나를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뿐임을 그는 온 존재로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듯 스스로 자격을 입증하려는 피곤한 자아의 갑옷을 벗어버리고 부활의 은총 속으로 온전히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송인규 교수는 묵상을 가리켜 영혼의 밥상이라고 명명합니다. 우리는 종종 성경을 읽으면서도 내가 듣기 원하는 위로의 메시지나 내 신념을 정당화할 구절들만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편식하려 듭니다. 그러나 참된 묵상은 내 입맛에 맞는 반찬만 골라 먹는 가벼운 식사가 아닙니다. 때로는 부활이라는 낯설고 무거운 진리를, 내 죄성을 폭로하는 두려운 진술을 내 영혼의 밥상 위에 올려놓고 온전히 소화해 내는 고단한 과정입니다. 이 묵상의 밥상은 주일이라는 특정 시간에만 갇힌 신앙생활을 매일의 일상 속에서 호흡하는 역동적인 생활신앙으로 변모시킵니다. 부활의 말씀을 밥처럼 매일 되새겨 먹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내가 이루어 낸 성취나 업적이라는 얄팍한 양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거저 먹여 주시는 은혜의 밥상으로 내 생명이 유지되고 있음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됩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완벽한 스펙과 자격을 증명해 내느라 극심한 피로감에 지쳐 계십니까. 내 안의 모순과 거듭된 실패 때문에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처럼 덜떨어지고 초라해서 하나님조차 나를 포기하셨을 거라며 짙은 절망의 어둠 속에 홀로 웅크려 계신 분이 있습니까. 이제 내 힘으로 인생의 빈 곳을 채워 구원의 자격을 획득하려던 그 피곤하고 서늘한 수고를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흠결 없이 자격을 갖추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처럼 볼품없고 무너져 내리는 우리의 이 비루한 일상조차 넉넉히 품어 안으시어,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맹렬하고도 다함 없는 자비에 온전히 잇대어 있습니다.


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깊고 어두운 흙 속에 묻혀 긴 겨울을 지나는 볼품없는 구근이 마침내 꽃을 틔워내는 과정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잣대와 헬라의 이원론적 지혜는 흙 묻고 쭈글쭈글한 그 메마른 구근을 바라보며 향기도 없고 화려한 꽃잎도 갖추지 못했다며 만삭되지 못하여 난 쓸모없는 것이라고 조롱하고 폐기하려 듭니다. 그러나 위대한 정원사이신 하나님은 그 자격 없어 보이는 낡은 구근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껍질을 찢고 화려한 꽃을 피워 너의 가치를 증명해 보라고 윽박지르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아무 능력 없이 죽어 있는 듯한 그 구근 위로, 부활의 생명이라는 따스한 봄볕과 은총의 단비를 조건 없이 그리고 한없이 쏟아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꽃을 피우려 안달하던 헛된 수고를 멈추고 정원사가 내려주시는 그 은총의 단비에 우리 존재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우리의 그 남루하고 초라했던 삶은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세상 그 어떤 화려한 장식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경이롭고 찬연한 하나님 나라의 백합화로 눈부시게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 생명의 비가 내리는 이 아름다운 여름, 나의 쓸모를 입증하여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세상의 매정한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내 입맛에 맞는 은혜만 구하던 편식을 멈추고 말씀의 밥상 앞에 나아가는 생활신앙의 묵상 자리에 고요히 엎드리십시오. 자격 없는 나를 찾아와 살리신 그 부활의 넉넉한 은총 안에서 곁에 있는 상처 입은 이들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 일으켜 주는 눈부신 생명과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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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HFGKh7jBo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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