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1-13 영원한 사랑에 잇대어 피어나는 생명

by 평화의길벗 posted Jun 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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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1-13 영원한 사랑에 잇대어 피어나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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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남보다 뛰어난 은사와 영적 지식을 과시하며 타인 위에 군림하려던 요란한 종교적 허영을 직시하고, 시끄러운 내 자아의 주장을 멈추고 나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거룩한 비움을 통해, 소음 같은 우리조차 십자가의 영원한 사랑으로 덮어 기어코 생명의 통로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다함 없는 은혜에 온전히 기대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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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장마의 습한 기운이 대지를 무겁게 누르지만, 나무들은 그 끈끈한 비바람마저 생명의 호흡으로 받아내며 짙푸른 녹음을 향해 절정의 생명력을 뿜어내는 유월 하순입니다. 끝없는 경쟁의 트랙 위에서 남들보다 더 뛰어나고 특별한 능력을 증명해 내야만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쫓겨 남몰래 한숨짓고 계실 성도 여러분, 그리고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내 모습 때문에 깊은 회의와 소외감을 안고 진리의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에, 우리의 연약함조차 영원한 사랑으로 덮어 안으시는 주님의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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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딛고 사는 세상은 내게 남다른 지식이나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맘껏 과시하고 타인과 서열을 매겨 지배하는 것을 마땅한 지혜라고 부추깁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고린도전서 13장의 풍경은 흔히 사랑장이라 불리며 결혼식의 축시로 아름답게 낭송되곤 합니다만, 이 텍스트가 잉태된 역사적 정황은 참으로 뼈아프고 적나라합니다. 당시는 평화로운 낭만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거룩한 은사를 무기 삼아 서로 피 터지게 싸우던 지독한 분열과 갈등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과 예언, 지식의 은사를 두고 누구의 것이 더 영적이고 우월한지 줄을 세우며 얄팍한 영적 계급장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고 선언하며 13장을 엽니다. 여기서 사랑은 여러 은사 중 으뜸가는 하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은사들을 발휘해야 하는 궁극적인 방법이요 제일 좋은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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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 13:1). 바울의 이 탄식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벼락같은 경고입니다. 아무리 신비로운 천사의 언어를 구사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과 모든 비밀을 아는 지식이 있다 한들, 사랑이라는 생명의 그릇에 담기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이웃의 영혼을 피로하게 만드는 무익한 소음에 불과하다는 꾸짖음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아니하며"(고전 13:4-7)라는 구절은 단순한 도덕적 정의의 나열이 아닙니다. 무례하고 자기 이익만 구하며 으스대던 고린도 교인들의 어그러진 행태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교정하는 실천적 지침입니다. 은사는 지식을 뽐내어 남을 지배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타인을 섬기라고 주신 것인데, 그들은 은사마저 자기 과시의 액세서리로 전락시켰던 것입니다. 방언과 예언은 결국 폐하고 그칠 임시적인 것들이지만, 오직 사랑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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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시끄러운 자기 증명의 꽹과리를 멈추고 가장 좋은 길인 십자가의 사랑으로 걸어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참된 묵상이란 내 삶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종교적 지식을 수집하여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묵상은 나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는 매일의 제사입니다. 이승우 소설가의 말마따나, 자기를 주는 상징적 표현이 곧 바치는 것입니다. 내 은사와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뽐내려는 그 피곤한 자아의 마이크를 끄고,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주님의 맹렬한 사랑 앞에 나의 남루한 시간을 고요히 바쳐 엎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는 유한한 세상 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호흡하는 거룩한 비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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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고린도 교인들처럼 내가 가진 직분, 헌신의 연수, 남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종교적 지식을 훈장처럼 내세우며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함부로 재단하고 상처 주지는 않았습니까? 반대로 세상의 화려한 무대나 교회 안에서 내세울 만한 뚜렷한 능력과 은사가 없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엔 너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닐까 하며 짙은 회의와 우울의 섬에 스스로를 가두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김기석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자기 초월의 능력입니다. 이런 태도는 사랑에 빚진 자들만이 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 힘을 쥐어짜 내어 완벽한 사랑의 실적을 증명해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은사를 무기 삼아 서로 다투고 으르렁대던 고린도 교인들의 치사하고 옹졸한 바닥을 다 아시면서도 그들을 가차 없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요란한 꽹과리처럼 텅 비고 이기적인 우리의 영혼 한복판으로 다가오시어, 십자가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찢어 내어주시는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남김없이 덮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거룩함은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흠결 없이 사랑을 실천해 내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끝없이 흔들리고 실패하는 우리의 모난 일상조차 무한한 자비로 품어 안으시어, 기어코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한 우리 인생을 마주 보는 찬란한 영광으로 이끌어 주시는(고전 13:12) 하나님의 맹렬하고도 다함 없는 사랑에 온전히 잇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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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시끄러운 공사장을 온전하게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침묵의 기둥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무조건 가장 크고 요란한 소리를 내는 드릴이나 망치만이 위대하며, 자신이 이 건물을 짓는 주인공이라고 소리칩니다. 소음이 클수록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건축자이신 하나님은 그 요란한 도구들로만 집을 세우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자랑하지도 않지만, 건물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 모든 굉음과 진동을 묵묵히 받아내며 전체를 흔들림 없이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침묵의 기둥, 곧 오래 참고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을 가장 귀하고 영원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우리가 내 잘남을 증명하려던 꽹과리 같은 소음을 멈추고 십자가 아래 나를 고요히 바쳐 드릴 때, 비로소 볼품없고 연약하던 우리는 요란한 세상을 가장 다사롭고 견고하게 떠받치는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사랑의 기둥으로 찬연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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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더욱 짙어지는 이 계절, 내 능력을 과시하여 타인을 지배하려는 세상의 요란한 수직적 질서를 미련 없이 거부하십시오. 그저 내 소중한 시간을 바쳐 십자가 사랑 앞에 고요히 머무는 산 제사의 묵상에 엎드리며, 나를 조건 없이 안아주신 그 은총의 힘에 기대어 곁에 있는 약한 이들에게 기꺼이 오래 참고 친절을 베푸는 따뜻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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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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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3y-9oYL9g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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