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02-16 ‘주 안에서’ 하나 된 남녀 : 창조 질서와 상호 존중으로 빚어내는 영광스러운 예배

by 평화의길벗 posted Jun 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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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02-16 ‘주 안에서’ 하나 된 남녀 : 창조 질서와 상호 존중으로 빚어내는 영광스러운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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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우상 제물 문제를 매듭지은 후, 공적 예배 시 발생하는 문제들(11-14장) 중 첫 번째로 여성의 예배포(너울) 착용 문제를 다룹니다. 바울은 하나님-그리스도-남자-여자로 이어지는 ‘머리 됨’의 창조 질서를 근거로, 예언이나 기도를 할 때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말고 여자는 머리를 가림으로써 각자의 성적 정체성과 권위를 존중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칫 남성 우월주의로 오해될 수 있는 이 원리를 ‘주 안에서’라는 새 창조의 질서로 교정하며, 남녀가 철저히 상호 의존적이고 동등한 존재임을 선언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인간의 본성과 모든 교회의 보편적 관례에 호소하며 예배 안에서의 불필요한 논쟁을 멈추고 질서와 평화를 지킬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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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및 문화적 배경 : 1세기 고린도는 헬라-로마 문화의 중심지로,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당대 사회에서 존경받는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가리는(너울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 정숙함의 표시였으며, 머리를 깎거나 민 여성은 창기나 간음한 여인으로 취급받아 수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 신학 및 사상적 배경 : 고린도 교회의 일부 여성들은 복음 안에서 얻은 자유와 ‘과실현된 종말론(자신들이 이미 천사처럼 신령한 존재가 되어 육체적 성별의 차이가 무의미해졌다는 착각)’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적 예배 시 머리 가리개를 벗어 던짐으로써 기존의 사회적, 창조적 질서를 무시했습니다. 바울 신학의 관점에 따르면, 본문은 단지 ‘수건을 쓰느냐 마느냐’의 피상적 규례가 아니라, 예배 공동체 안에서 ‘성(性)에 따른 창조 질서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등과 상호 의존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다루는 심오한 신학적 텍스트입니다. 바울은 십자가 복음이 창조 질서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와 품위를 회복하며, 나아가 ‘주 안에서’라는 새로운 연대의 틀(상호 의존)을 통해 교회의 하나 됨을 완성한다고 역설합니다.

# 묵상 포인트 :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의 질서 속에 당신의 영광을 담으사 예배의 품위를 명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의 은혜로 남녀를 상호 의존적인 동등한 존재로 연합하게 하시며, 교회를 헛된 논쟁이 아닌 거룩한 평화로 이끄시는 질서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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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절 머리 됨의 질서와 예배의 품위

하나님은 만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 안에 거룩한 창조 질서를 세우시고, 우리가 드리는 공적 예배가 방종이 아닌 품위와 질서 속에서 드려지기를 원하시는 질서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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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이 전해 준 전통(유전)을 지키는 것에 대해 먼저 칭찬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영적 질서를 깨우칩니다.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면 그 머리(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여자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면 그 머리(남자)를 욕되게 하는 것으로,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없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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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예배 상황을 다루며(11-14장) ‘머리(케팔레, kephalē)’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여기서 머리는 단순히 ‘지배자’라는 의미보다는 ‘기원(source)’과 ‘질서(order)’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고린도 교회의 여성들이 공적 예배에서 ‘기도나 예언’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바울이 금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제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여성의 사역을 억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역을 수행하는 ‘태도와 복장’에 있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이 머리에 너울을 쓰지 않는 것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기존 권위를 조롱하는 사회적 반항으로 비쳤고, 이는 예배의 품위를 손상시키며 공동체에 수치를 가져왔습니다. 바울은 거짓된 종말론에 심취하여 세상의 눈에 방종으로 비치는 행동을 ‘영적인 자유’로 착각하는 그들을 향해, 예배의 자리는 자신의 자유를 과시하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머리 됨의 질서를 존중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는 곳이어야 함을 엄중히 경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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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절대적 권위나 질서를 거부하고 개인의 개성과 취향의 자유를 최우선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이러한 풍조가 교회 예배에도 스며들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예의와 품위보다는 내 감정과 편의만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경외)을 상실한 채 단정치 못한 옷차림이나 무례한 태도로 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누리는 복음의 자유가 혹여 이웃의 눈에 방종이나 무질서로 비치어 교회의 영광을 훼손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가정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질서를 파괴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창조 질서를 존중하며 그 안에서 겸손히 내 역할을 감당할 때 가장 빛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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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0절 창조 질서에 나타난 영광과 천사들 앞에서의 권위

예수님은 우리의 예배를 천사들과 함께 감찰하시며, 남녀가 각자에게 부여된 창조 본연의 아름다움과 정체성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기를 원하시는 거룩하신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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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근거로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므로 머리를 가리지 않아야 하며,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설명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너울)를 머리 위에 두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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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남녀의 질서를 구약 창세기 2장의 창조 기사로 거슬러 올라가 신학적으로 논증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고 남자를 위하여 지음받았다는 것은, 여자의 본질적 열등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적이고 기능적인 ‘질서’를 의미합니다. 특히 10절의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두어야 한다”는 말씀은 매우 신비롭고 중요한 대목입니다. 유대 전승과 초대 교회의 이해에 따르면, 천사들은 창조 질서의 수호자이자 하나님께 드려지는 공적 예배의 동참자 및 감찰자로 임재합니다. 따라서 여성은 천사들이 지켜보는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서, 머리를 가리는 표(너울)를 통해 창조 질서에 순응함을 보여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이 너울은 여성을 억압하는 굴레가 아니라, 여성이 공적 예배에서 당당하게 기도하고 예언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엑수시아)의 표지’가 됩니다.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은 교회가 혼탁한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창조 본연의 거룩한 질서를 회복하여 영광스러운 예배를 드리기를 촉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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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성(性)의 차이를 해체하려는 급진적 젠더 이데올로기와, 반대로 성을 권력의 도구로 삼아 혐오하는 남녀 갈등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이념적 대립 속에서 가정과 사회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남녀의 다름이 결코 차별이나 억압의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다채롭게 드러내기 위한 거룩한 창조 질서임을 선언합니다. 성도들은 남녀 간에 서열을 세우거나 서로의 역할을 깎아내리는 세속적 가치관을 배격해야 합니다. 직장이나 교회 안에서 여성을 향한 가부장적 폭력을 회개함과 동시에, 남녀의 구분을 무너뜨리려는 혼란스러운 사상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우리의 예배와 일상을 지켜보고 있음을 인식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남성으로서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품위 있게 감당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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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2절 ‘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남녀의 상호 의존과 동등성

성령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 간의 서열과 차별을 허무시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 불가결한 생명의 동역자로 연합하게 하시며, 만물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을 깨닫게 하시는 연합의 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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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선포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며, 그리고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결론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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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고린도전서 11장 전반부의 핵심이자 기독론적 대반전의 자리입니다. 만일 바울의 논리가 10절에서 멈췄다면, 이는 남성 우월주의를 정당화하는 텍스트로 오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1절의 “그러나(plēn)”라는 접속사는 앞선 창조 질서의 논의를 뛰어넘는 ‘주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의 질서를 선언합니다. “주 안에서(en kyriō)”는 바울 신학의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통과한 새 언약의 공동체 안에서는 남녀의 위계적 서열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여자가 최초의 남자(아담)에게서 나왔지만, 이후의 모든 남자는 여자(어머니)의 몸을 통해 태어납니다. 바울은 이 기가 막힌 논리를 통해 남녀의 ‘완벽한 상호 의존성(interdependence)’을 확증합니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에크 투 데우)”는 12절의 선언은, 남성과 여성의 궁극적인 기원과 권위가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있음을 천명함으로써 인간적인 우월감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질서(다름)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동등성을 성취해 내는 이 놀라운 역설이야말로 교회를 빚어가시는 성령님의 위대한 솜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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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내에는 여전히 유교적 가부장제의 잔재가 남아 있어 여성 성도의 사역과 리더십을 폄하하거나 제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권리만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며 교회의 영적 권위와 질서를 흔드는 세속적 페미니즘의 영향도 경계해야 합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가정과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줍니다. 부부는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여자 없이 남자 없고, 남자 없이 여자 없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와 가정은 서로를 향해 지배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철저히 돕는 배필로서 상호 의존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의 영적 권위를 존중하며 질서를 지킬 때,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주 안에서의 완벽한 연합’을 세상에 증명하는 생명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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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6절 본성과 교회의 보편적 관례에 순복하는 겸손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과 본성 속에도 진리의 그림자를 심어두셨으며, 소모적인 논쟁을 고집하는 영적 교만을 버리고 보편 교회의 거룩한 관례와 평화에 순복하기를 원하시는 평강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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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스스로 판단해 보라고 촉구합니다.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지, 남자가 긴 머리를 갖는 것은 부끄러움이요 여자가 긴 머리를 갖는 것은 영광임을 본성이 가르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마지막으로, 논쟁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바울의 일행이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와 다른 관례가 없다고 쐐기를 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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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제 신학적 논증을 넘어 그들 내면에 있는 보편적인 상식(본성, physis)에 호소합니다. 1세기 지중해 문화권에서 남자가 여자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거나, 여자가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은 본성에 어긋나는 수치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스러운 성적 구별의 본능을 통해, 예배 시 복장과 태도 역시 이 본성에 합당하게 품위가 있어야 함을 논증합니다. 특히 16절의 “논쟁하려는 생각(philoneikos)”을 가진 자들에 대한 바울의 단호한 태도에 주목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의 이런 가르침조차 헬라적 수사학과 자기들만의 영적 지식으로 끝까지 논박하고 반항하려는 교만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너희처럼 무질서한) 관례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즉, 아무리 자신이 영적 지식과 자유가 충만하다고 자부할지라도, 그것이 보편 교회의 덕과 평화를 깨뜨리고 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헛된 교만일 뿐이라는 준엄한 책망입니다. 주님은 지식으로 교회를 소란하게 하는 자보다, 사랑과 겸손으로 공동체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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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본질(구원, 십자가, 부활)이 아닌 비본질적인 문제(예배의 형식, 복장, 악기 사용, 문화적 관습 등)를 두고 자신의 성경 지식과 논리만을 끝까지 고집하며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논쟁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신학적 지식이나 자유가 아무리 옳다 해도, 그것이 교회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고 성도 간의 화목을 해친다면 기꺼이 입을 다물고 나의 주장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사에 남과 논쟁하여 이기려는 ‘싸움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보편적인 상식(본성)을 존중하고, 교회의 오랜 믿음의 관례와 영적 지도력에 순복하며, 나의 작은 권리 주장을 십자가에 못 박아 공동체의 화평(Shalom)을 이루어 내는 진짜 어른스러운 신앙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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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창조의 주관자이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만유의 주, 삼위일체 하나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사 자유인이 되게 하셨건만, 

우리는 그 자유를 구실로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권위와 창조 질서를 경홀히 여기고, 

내 권리와 편의만을 앞세우며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힌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주님, 우리 교회가 드리는 공적 예배가 

감정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곳이 아니라, 

천사들도 흠모하며 지켜보는 거룩하고 품위 있는 

영광의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남성과 여성이라는 

고귀한 정체성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세상의 타락한 성 윤리와 성별 갈등의 이데올로기가 

교회 안에 틈타지 못하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 없고, 여자 없이 남자 없다"는 

생명의 역설을 가슴에 새기기 원합니다. 

우리 안의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나 이기적인 권리 주장을 

십자가에 철저히 못 박게 하시고, 

서로를 나보다 낫게 여기며 상호 의존하는 

진정한 동역과 연합을 가정과 교회 안에서 이루어 내게 하옵소서. 

헛된 지식으로 논쟁을 일삼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보편 교회의 거룩한 질서와 화평에 

겸손히 순복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이 어둡고 분열된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의 참된 질서와 샬롬을 보여주는 

생명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물의 기원이 되시며 교회의 참된 머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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