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07:01-24 십자가의 은혜로 빚어내는 일상의 거룩함 : 결혼, 독신, 그리고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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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7장부터 고린도 교인들이 편지로 질문해 온 여러 현안에 대해 답변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결혼과 성(性)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헬라 이원론에 빠져 부부간의 성관계마저 거부하려는 극단적 금욕주의를 교정하며, 부부의 상호 의무와 배려를 강조합니다. 또한 결혼과 독신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은사(카리스마)'임을 밝히며, 미혼자와 과부, 기혼자, 그리고 불신 배우자를 둔 자들에게 각각 합당한 목회적 권면을 줍니다. 나아가 이 모든 지침을 아우르는 대원칙으로서, 성도는 세상의 신분이나 처지를 바꾸려 안달하기보다 '하나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일상의 소명에 충실해야 함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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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및 문화적 배경 : 1세기 고린도는 아프로디테 신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창기 문화와 타락한 성도덕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고린도 교회 내 일부 성도들은 헬라 철학의 이원론(육체는 악하고 영혼만 선하다)에 깊이 물들어, 영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는 육체적 욕망을 철저히 억제해야 하며 심지어 부부간의 성관계조차 금악시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빠졌습니다.
# 신학 및 사상적 배경 : 고린도전서 1-6장이 바울이 전해 들은 '소문(분쟁, 음행, 소송)'에 대한 책망이었다면, 7장부터 16장까지는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보낸 '편지 질문들'에 대한 목회적 답변입니다("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7:1). 고린도 교인들의 근본적인 신학적 질병은 자신들이 이미 천사처럼 신령한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과실현된 종말론'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이들은 방종으로(6장), 어떤 이들은 극단적 금욕으로(7장) 치달았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영적 엘리트주의를 해체하며, 일상의 평범한 관계(부부)와 주어진 사회적 신분(노예나 자유인) 속에서 십자가의 원리를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영성임을 역설합니다.
# 묵상 포인트 : 하나님은 결혼과 독신,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일상을 은사로 베푸사, 세속적 신분이나 처지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가 부름받은 바로 그 삶의 자리에서 십자가의 거룩함을 살아내게 하시는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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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부부 관계의 거룩한 의무와 상호 배려
성자 예수님은 우리의 육체적 관계조차 거룩한 연합으로 부르시며,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권리를 내어주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게 하시는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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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는 고린도 교인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도, 음행을 피하기 위해 부부가 서로에 대한 성적 의무를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부부는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말고 배우자에게 내어주어야 하며,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한 합의 외에는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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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는 말은 바울의 주장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내 금욕주의자들의 슬로건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적 성숙을 위해 부부 관계조차 단절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타락한 고린도 사회에서 음행을 피하기 위해 부부간의 정상적인 성관계가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주목할 점은 바울이 1세기 가부장적인 로마-헬라 사회의 상식을 뒤엎고, 부부의 '상호 동등성'을 철저히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채무, 빚)를 다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 말합니다. 내 몸의 권리(주장)를 내가 갖지 않고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것, 즉 나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와 권리마저 배우자를 위해 희생하고 내어주는 이 모습이야말로 다름 아닌 '십자가의 자기 비움(Kenosis)'입니다. 바울은 부부의 침상을 불결하게 여긴 그들의 이원론을 반박하며, 그곳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이 가장 구체적으로 실천되어 사탄의 유혹을 방어하는 거룩한 성소임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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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성(性)을 쾌락의 도구로 철저히 소비하면서도, 정작 부부 사이에서는 의무감과 피로감으로 인해 친밀함을 잃어버린 쇼윈도 부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부부의 친밀한 연합을 죄악시하는 것도, 반대로 세상처럼 성을 쾌락의 도구로 남용하는 것도 모두 거부합니다. 부부 관계는 서로를 향한 가장 구체적인 헌신이자 십자가 배려의 실천입니다. 부부들은 가정 안에서 서로의 필요를 민감하게 채워주고, 피곤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배우자에게 내 몸의 권리를 내어주는 섬김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음란한 세상 문화로부터 가정을 지키고, 우리 안의 거룩을 보존하는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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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절 하나님이 주신 각기 다른 은사, 결혼과 독신
성령님은 각 사람의 영적 유익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결혼이나 독신이라는 각기 다른 은사를 베푸사,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을 온전히 섬기게 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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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앞서 말한 분방에 대한 지침이 명령이 아니라 허락(권도)이라고 밝히며,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이 독신이기를 원하지만, 사람마다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어 하나는 이러하고 다른 하나는 저러하다고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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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결혼과 관련된 모든 문제의 기저에 '하나님의 주권적 은사(카리스마)'가 있음을 천명합니다. 바울 자신은 복음 전파에 헌신하기 위해 '독신'이라는 특별한 은사를 받았습니다. 고린도의 금욕주의자들은 독신만을 영적으로 우월한 상태로 여겼으나, 바울은 '결혼' 역시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은사요 부르심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들의 영적 교만을 무너뜨립니다. 은사의 본질은 나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입니다(고전 12장). 따라서 결혼한 자는 가정을 통해, 독신인 자는 독신의 자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섬기도록 부름받은 동등하게 존귀한 사명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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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는 종종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결혼한 부부와 자녀로만 한정 짓고, 독신이나 이혼, 사별로 혼자 된 분들을 어딘가 결핍된 존재로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선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독신 역시 하나님이 주신 '은사(카리스마)'라고 선언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결혼한 자들은 자신의 가정이 이기적인 울타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독신인 지체들은 자신의 자유와 열정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데 값지게 드려야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차별이 아닌 '다양한 은사의 아름다움'으로 인정하고 존중할 때, 교회는 모든 세대와 계층을 품어내는 진정한 영적 가족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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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절 미혼자와 과부를 향한 현실적 권면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의 연약함과 정욕을 체휼하시며, 무리한 영적 허세 대신 결혼이라는 안전한 제도를 통해 거룩을 지키도록 배려하시는 긍휼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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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혼인하지 않은 자들(미혼자)과 과부들에게 자신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고 명하며,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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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임박한 환난(26절)과 주의 일에 전념하기 위한 목적(32절)에서 독신을 이상적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인간의 육체적 본성과 연약함을 직시하는 탁월한 목회적 현실감각을 지녔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금욕주의자들처럼 육체의 욕망을 억누르며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는 위선을 바울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burning with passion)보다 혼인하는 것이 낫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 제도가 성적 욕망을 합법적이고 거룩하게 충족시켜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하는 안전망(방파제) 역할을 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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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청년들의 결혼이 급격히 늦어지거나 비혼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취업난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욕의 유혹이 가득한 문화 속에서 비혼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영적, 도덕적 위기를 초래하기 쉽습니다. 교회는 청년들이 스스로 절제할 수 없는 육신적 한계와 싸우고 있음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이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결혼할 수 있도록 만남의 장을 열어주며 멘토링과 재정적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청년들 또한 화려한 스펙과 경제적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질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세속의 기준을 내려놓고, 정욕의 올무에 빠지기 전에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신앙의 가정을 꾸리는 것을 소명으로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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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1절 신자 부부를 향한 이혼 금지 명령
예수님은 언약의 신실함을 요구하시며, 부부가 갈등 속에서도 십자가의 인내로 이혼의 유혹을 극복하고 화해와 연합을 이루기를 명령하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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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결혼한 자들에게 "이는 나의 명령이 아니라 주의 명령이라"고 단언하며, 아내는 남편과 갈라서지 말고(갈라섰다면 그대로 지내거나 다시 화해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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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에서 바울은 예외적으로 "내가 아니요 주시라"고 밝힙니다. 이는 공생애 기간 예수님께서 직접 남기신 이혼 금지의 명령(막 10:9,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을 바울이 정확히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남성은 언제든 이혼 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버릴 권리가 있었으나, 복음은 부부를 동등한 언약적 파트너로 선언하며 이기적인 이혼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물론 배우자의 부정이나 치명적인 폭력 등 부득이한 별거(갈라섬)가 발생할 수 있음을 바울도 인정합니다(11절a). 그러나 그 경우에도 궁극적인 지향점은 새로운 결혼을 통해 쾌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시 화해하거나(katallage) 그대로 지내는 것"입니다. 이는 언약에 대한 신실함을 죽기까지 지켜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부부 관계 속에 체화하라는 엄중한 요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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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 중 이혼율 최상위권을 다투는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조차 가치관의 차이나 성격 차이를 이유로 쉽게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 작금의 뼈아픈 현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결혼은 단순한 낭만적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맺은 구속력 있는 '언약'입니다. 부부들은 부부 관계에 갈등과 위기가 닥쳤을 때, 세속적인 변호사나 이기적인 자아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엄중한 십자가 명령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내 자존심이 깨어지고 상대의 허물을 짊어지는 십자가의 고통 없이는 가정의 화해는 불가능합니다. 배우자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나 같은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품으신 주님의 그 인내를 기억하며 가정이라는 십자가를 묵묵히 져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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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6절 불신 배우자와의 관계와 선교적 가정
하나님은 성도의 거룩한 삶을 통해 불신 가족까지도 거룩함의 은혜 아래로 품으시며, 화평 중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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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불신 배우자를 둔 신자들에게 권면합니다. 불신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하거든 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불신 남편이나 아내가 믿는 배우자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며, 자녀들 역시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신자가 갈라서기를 원하면 갈라서게 하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우리를 부르셨음을 명심하라고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구원할지 어찌 알겠느냐며 소망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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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고린도 교회의 매우 현실적인 문제(교회에 들어온 후 불신 배우자와 이혼해야 하는가?)를 다룹니다. 금욕주의나 영적 엘리트주의에 빠진 신자들은 불신자와의 육체적 결합이 자신을 더럽힌다고 생각하여 이혼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놀라운 은혜의 원리를 선포합니다. "불신 배우자가 신자로 인해 거룩하게 된다(헤기아스타이)!" 이는 불신 배우자가 자동적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언약 백성인 신자 한 사람을 통해 그 가정 전체가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 역사와 은혜의 영향력(거룩한 영역) 아래로 편입된다는 뜻입니다. 복음은 분열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불신 배우자가 떠나길 고집한다면 구속받지 말고 보내주어 '화평'을 유지해야 하지만(15절),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성도는 그 가정에 머물며 복음의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16절). 일상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불신 배우자에게 십자가의 사랑과 인내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하고도 힘겨운 '선교'임을 주님은 일깨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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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남편이나 아내, 혹은 부모님을 두고 나 홀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제사 문제, 주일 성수, 십일조 등으로 빚어지는 갈등 속에서 차라리 관계를 끊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당신 한 사람 때문에 그 가정이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장막 안에 들어와 있음을 선언합니다. 우리는 섣부른 정죄나 종교적 강요로 가정을 불화로 몰아넣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은 가정 안에서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부드럽게 언어를 사용하며, 삶의 헌신(화평)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야 합니다.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네가 네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겠느냐"는 바울의 소망 찬 격려를 붙들고, 포기하지 않는 눈물의 기도로 불신 가족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십자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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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4절 부르심의 원리 : 있는 그 자리에서 주와 함께
성부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세속적 신분이나 처지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그 평범한 일상의 자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의 자리로 탈바꿈시켜 영광을 보게 하시는 섭리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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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명합니다. 할례자나 무할례자의 상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요, 종으로 부름받았어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종은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자유인은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 결론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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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7장 전체, 나아가 고린도전서 전반부의 신학적 결론이자 정점입니다. 바울은 결혼, 이혼, 독신의 문제를 논하다가 갑자기 종교적 신분(할례)과 사회적 신분(노예/자유인)을 끌어들임으로써 거대한 '소명론(Calling, 클레시스)'을 전개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영적 지식을 얻으면 사회적 신분이나 물리적 환경(결혼, 노예 등)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1세기 로마-헬라 사회의 후견인 제도 아래서 유력한 자에게 줄을 대어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세속적 욕망을 신앙으로 포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 혁명적인 선언을 합니다(24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세상에서 성공한 자유인이냐 비천한 노예냐 하는 것은 십자가 앞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종은 세상에서는 매인 자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진정한 자유인이요, 자유인은 세상에서는 권력자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종(노예)일 뿐입니다(22절).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기에, 우리의 진짜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23절). 따라서 성도는 자신의 직업이나 신분을 향상시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의 종(노예)'이 되지 말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가정과 직장, 그 비천하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의 자리'로 숭고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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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한민국은 그 어느 시대보다 스펙, 연봉, 아파트 평수, 직업의 귀천으로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지독한 서열화 사회이자 '능력주의' 사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조차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르심(소명)을 세속적인 성공이나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며 끝없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성공에 있지 않고 '충성'에 있습니다. 내가 청소 노동자이든, 대기업의 CEO이든, 전업 주부이든, 비정규직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내게 주어진 현실의 직업과 삶의 환경을 불평하거나 탈출하려 애쓰기 전에,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심어놓으신 거룩한 제단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돈과 권력, 타인의 시선이라는 '사람의 종'으로 끌려다니지 마십시오. 오늘 내게 주어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정직하게 땀 흘리고 주님과 동행(하나님과 함께 거함)할 때, 그 평범한 밥벌이의 현장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영광스러운 거룩한 성전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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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온 우주의 주관자이시며 우리의 삶을 섬세하게 섭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세상의 헛된 지혜와 이원론에 빠져, 몸으로 짓는 음행을 가볍게 여기고,
때로는 헛된 금욕으로 영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거룩한 일상을 파괴하려 했던 우리의 교만과 무지를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허락하신 부부 관계가 내 권리를 십자가에 못 박고
배우자를 섬기는 가장 숭고한 헌신의 자리임을 깨닫게 하사,
이기심과 갈등으로 찢겨진 이 땅의 가정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치유하여 주옵소서.
결혼한 자는 가정을 통해, 독신인 자는 독신의 자유를 통해
오직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특별히 불신 가족을 품고 눈물 흘리는 성도들에게 인내를 더하사
그들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가정이 구원받는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세속의 신분 상승과 성공의 잣대에 휘둘려
박탈감에 시달리던 우리의 시선을 교정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셨사오니,
더 이상 세상의 스펙과 물질에 매인 사람의 종으로 살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들이 내가 서 있는 바로 그곳,
평범하고 남루해 보이는 일상의 직장과 가정의 자리가
하나님이 부르신 영광스러운 소명의 자리임을 믿고,
오늘 하루도 주님과 함께 거하며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참된 자유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일상의 거룩함으로 부르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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