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06:01-11 세상 법정에 선 교회 : 십자가의 포기를 통한 참된 승리와 거룩함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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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 내부의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의 불의한 법정으로 끌고 가는 행태를 강하게 책망합니다. 성도는 장차 세상과 천사를 심판할 종말론적 권세를 가진 자들임에도, 교회 안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적 공동체의 문제를 맡기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바울은 형제를 세상 법정에 고발하는 것 자체가 이미 영적인 완전한 패배라고 선언하며,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아주는 십자가의 방식을 따를 것을 촉구합니다. 나아가 불의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함을 경고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답게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갈 것을 강력히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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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및 문화적 배경 : 1세기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고린도는 상업적 번영과 더불어 소송이 매우 빈번했던 도시입니다. 당시의 재판 제도는 오늘날처럼 공정하지 않았고,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부유한 자(Patron, 후견인)가 자신의 권력과 언변을 동원해 약자들을 억압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법정을 악용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유력한 교인들은 이러한 세속적인 소송 문화를 그대로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형제를 이방 재판관(불의한 자들) 앞에 세우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 신학 및 사상적 배경 : 고린도 교인들의 소송 문제 이면에는 '복음과 성도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영적으로 성숙한 자(신령한 자)라고 자부하면서도, 실제 삶의 방식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이기심과 탐욕에 끌려다니는 '육신에 속한 자'였습니다. 이진섭 교수님의 관점과 같이, 바울은 교회가 '육신에 속한 자'로 머물며 세상의 가치관으로 공동체를 파괴할 때 구원 탈락과 멸망의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6장에서도 동일하게 경고합니다. 성도는 종말에 세상을 심판할 우주적 권세를 가진 자들인데, 역으로 세상의 판단을 구하는 것은 창조와 구속의 질서를 스스로 뒤집는 행위입니다. 바울은 '차라리 손해를 보라'는 십자가의 역설적 윤리를 통해, 이기적인 권리 주장을 멈추고 사랑으로 교회를 세우는 참된 십자가 신학을 회복하라고 촉구합니다.
# 묵상 포인트 :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우리를 씻어 거룩하고 의로운 자녀로 삼으시고, 헛된 권리 주장을 십자가에 못 박아 차라리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는 사랑으로 교회의 참된 평화와 승리를 이루게 하시는 공의와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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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성도의 종말론적 신분과 세상 법정의 부조화
바울은 성도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을 때, 어찌하여 성도들 앞이 아닌 불의한 세상 사람들 앞에서 소송하느냐고 꾸짖습니다. 그는 성도가 장차 세상을 심판할 것이며 심지어 천사들까지 심판할 터인데, 하물며 지극히 작은 세상의 일상을 판단하지 못하느냐고 반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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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세상 법정의 재판관들을 가리켜 '불의한 자들(아디코이, ἄδικοι)'이라고 부르고, 교회의 구성원들을 '성도(하기오이, ἅγιοι)'라고 부르며 날카롭게 대조합니다. 여기서 '불의한 자들'이란 도덕적인 악당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언약 밖에 있어 하나님의 법과 의를 따르지 않는 세상의 가치관을 지닌 이들을 말합니다. 바울이 "알지 못하느냐?"(2, 3절)라고 반복해서 묻는 것은,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고린도 교인들의 영적 무지를 통렬히 찌르는 수사학적 질문입니다. 다니엘 7:22이나 마태복음 19:28 등 신구약의 종말론적 비전에 따르면, 성도는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다스리고 세상을 심판할 영광스러운 왕적 신분을 부여받았습니다,. 심지어 영적 존재인 타락한 천사들까지 심판할 권세가 성도에게 있는데, 이 땅에서의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재산이나 이권 문제(지극히 작은 일)를 십자가의 지혜가 없는 이방인들에게 판단해 달라고 맡기는 것은 성도의 우주적, 종말론적 존엄성을 스스로 짓밟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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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한민국 교회는 부끄럽게도 '소송 공화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예배당 건축, 재정 횡령, 목회자 청빙, 교단 내의 이권 다툼을 두고 끊임없이 세상 법정의 문을 두드립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는 세상 판사들의 판결봉 아래에서 교회의 운명을 결정해 달라고 구걸하는 것은 복음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는 비극입니다. 우리 광양사랑의교회 공동체와 성도 개인의 삶 속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 세상의 법과 논리로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나의 영적 신분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먼저 자각해야 합니다. 법적 승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영광과 거룩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정에 내 형제를 세우려는 마음이 들 때, 장차 세상을 심판할 거룩한 성도라는 나의 영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공동체 안에서 믿음과 지혜로 갈등을 해결하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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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절 세상 앞에 선 교회의 수치와 참된 지혜의 부재
바울은 세상 사건이 있을 때 교회 안에서는 아무런 영적 권위나 인정도 받지 못하는 자들(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어찌 재판관으로 세우느냐고 한탄합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한다며, 그토록 지혜를 자랑하면서도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지혜자가 교회 안에 단 한 명도 없느냐고 탄식합니다. 나아가 형제가 형제를 고발하는 것도 모자라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며 책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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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고린도 교회의 모순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매서운 풍자입니다. 4절의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은 바로 세상의 이방인 재판관들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눈에는 그들이 권력자요 유력자일지 몰라도, 영적인 눈과 구속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에 불과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1장부터 4장까지 철학과 수사학을 숭상하며 "우리가 지혜롭다"고 교만하게 떠들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5절)라고 그들의 거짓된 지혜의 민낯을 폭로합니다. 십자가의 지혜가 없는 세속적 지식은 실생활의 갈등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지식일 뿐입니다. 특히 6절에서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ἀδελφὸς μετὰ ἀδελφοῦ)"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한 몸,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산산조각 내는 고린도 교인들의 잔인함을 고발합니다. 교회를 분열에서 건져내시려는 바울의 이 쓰라린 책망은, 자기 자녀들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가슴 아파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찢어지는 마음의 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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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합리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며,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을 당연한 '지혜'로 여깁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마저 이런 세상의 지혜가 들어와, 갈등의 중재자나 화해자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교회 안에 크고 작은 의견 대립이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방식(고발과 폭로)을 동원하려는 유혹을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교회의 진짜 지혜자는 현란한 세상 스펙을 가진 자가 아니라, 복음의 정신으로 양측의 억울함을 십자가 아래로 품어내고 피스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적 어른입니다. 가정과 직장에서도 형제(동료)의 잘못을 세상의 냉혹한 법과 여론의 재판대로 끌고 가기 전에, 우리 안에 진정한 사랑의 중재 기능이 살아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세상의 법에 호소하지 않고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의 말씀으로 스스로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영적 자생력을 회복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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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절 차라리 손해를 감수하는 십자가의 승리
바울은 성도들이 서로 고발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교회의 뚜렷한 허물이자 패배라고 단언합니다. 그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고 차라리 속아 넘어가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오히려 스스로 불의를 행하고 형제를 속이고 있다고 통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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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구절은 고린도전서 윤리의 절정이자 십자가 신학의 가장 급진적인 실천을 요구하는 대목입니다. 바울은 "피차 고발함으로 이미 너희 가운데 뚜렷한 허물(완연한 허물, ἥττημα, 헤테마)이 있나니"(7절)라고 선언합니다. '헤테마'는 전쟁에서의 '완전한 패배(defeat)'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세상 법정에서 재판에 이겨 재산을 지키고 명예를 회복한다 할지라도, 형제를 법정에 세운 순간 너희의 신앙은 이미 사탄에게 철저히 패배한 것이라는 영적 선고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바울의 대안은 충격적입니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라! 차라리 속아주라!" 이것은 산상수훈에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마 5:39)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의 정확한 메아리입니다. 십자가의 방식이란 내 권리를 주장하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이 억울해서 고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형제)의 것을 빼앗고 속이기 위해 세상 법정을 이용하는 악랄한 불의를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기적인 권리 주장을 멈추고 십자가의 자기 비움(Kenosis)으로 돌아갈 것을 피를 토하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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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치열한 경쟁 사회입니다. "손해 보면 바보가 된다"는 것이 생존 공식처럼 여겨집니다. 직장 내의 권력 다툼이나 부동산 문제, 심지어 교회 내의 주도권 싸움에서도 우리는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바보가 될 용기"를 요구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 내가 맞고 네가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자가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공동체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나의 명백한 권리마저 내려놓고 차라리 억울함을 뒤집어쓰고 침묵하는 십자가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눈에는 미련하고 굴욕적인 패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원수를 사랑으로 이기는 가장 위대한 승리입니다. 직장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물질적 손해를 볼 위기에 처할지라도, 형제를 짓밟고 일어서기보다는 차라리 손해를 감수하는 그 십자가의 흔적(스티그마)을 통해 세상은 우리 안에서 살아계신 예수를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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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절 씻음과 거룩함을 입은 자의 새로운 정체성
바울은 불의한 자(음행, 우상 숭배, 간음, 동성애, 도적, 탐욕, 술 취함, 모욕, 속여 빼앗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합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 중에도 과거에는 이런 자들이 있었으나,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음을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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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신학의 관점에 따르면, 바울은 여기서 교회론과 구원론을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형제를 속이고 고발하는 행위는 단순한 도덕적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불의입니다. 바울이 나열한 10가지 죄악의 목록(음란, 우상숭배, 동성애, 탐욕 등)은 1세기 이방 사회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바울은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과거형)"라고 말하며, 그들의 비참했던 과거를 들추어냅니다. 그러나 핵심은 11절의 극적인 반전에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씻음(Washed)을 받았고, 거룩함(Sanctified)을 입었고, 의롭다 하심(Justified)을 얻었느니라!" 헬라어 원문은 이 세 동사를 모두 부정과거 수동태로 사용하여, 이 놀라운 변화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주 예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의 전적인 은혜로 단번에, 그리고 영구적으로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성전이 되었으며, 법정적으로 완전한 무죄 선언(칭의)을 받은 자들이, 어찌하여 다시 옛사람의 구토물(탐욕과 분쟁)을 주워 먹고 불의한 세상 법정 아래로 기어들어가느냐는 맹렬한 책망입니다. 성도의 삶(윤리, Imperative)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이 영광스러운 신분(Indicative)에 걸맞아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궁극적인 목회적 대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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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교회는 "한 번 예수 믿으면 어떤 죄를 지어도 천국에 간다"는 값싼 구원론에 오염되어, 신앙과 윤리가 철저히 분리된 이원론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배당에서는 거룩한 척하지만, 부동산 투기, 탈세, 직장 내 갑질, 사기 등 세상의 온갖 불의를 버젓이 자행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불의를 행하고 형제를 속이는 삶을 고집한다면 결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을 수 없음을 두렵게 경고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은 과거의 죄악된 본성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과 성령의 불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자들입니다. 일터에서 불의한 이익을 취할 기회가 올 때, 혹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복수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칠 때,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 받고 거룩해진 자다!"라고 나의 새 신분을 소리 내어 선포하십시오.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뼈저리게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속의 묵은 누룩을 던져버리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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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거룩하고 자비로우신 삼위일체 하나님,
저희를 죄악의 수렁에서 건지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주시고,
성령 안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그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의 부끄러운 실상을 이 시간 철저히 회개합니다.
1세기 고린도 교회처럼, 저희 역시 영광스러운 성도의 신분을 망각한 채
세상의 가치관과 탐욕에 물들어 살아왔습니다.
십자가의 자기를 비우는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나의 작은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형제를 미워하고, 판단하며,
세상의 법과 논리로 교회를 찢고 상처 입혔던
우리의 '육신에 속한' 교만과 불의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차라리 내가 억울함을 당하고 속아주는 것이
십자가의 참된 승리임을 온 가슴으로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갈등과 분열의 세상 속에서
헛된 시시비비를 가리는 다툼의 장소가 아니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손해를 감수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완성하는
피스메이커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저희의 몸과 영혼이 이미 주님의 보혈로 거룩해진 성전임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사,
불의한 세속의 방식과 단호히 결별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평화를 이루어가는 거룩한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재판장이시며 참된 화해자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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