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8-31 질그릇이 품은 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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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세련된 말솜씨와 세상의 스펙으로 스스로의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얄팍한 지적 허영을 직시하고, 내 욕망을 강화하는 도구가 아닌 내 삶의 세속적 아비투스를 깨뜨리는 거룩한 혁명을 통해, 우리의 남루함조차 기어코 구원의 통로로 삼으시는 십자가의 그 맹렬하고도 어리석어 보이는 은혜에 내 존재를 온전히 의탁하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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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자기 피알(PR)의 시대입니다. 화려한 언변과 그럴듯한 이력서로 자신의 쓸모와 매력을 증명해 내지 못하면 도태될 것만 같은 숨 막히는 불안이 공기처럼 떠도는 세상입니다. 매끄러운 수사학으로 무장한 이들이 박수갈채를 받는 이 치열한 과시의 무대 아래서,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남몰래 어깨를 움츠리고 계신 분들, 그리고 내 가치를 내 힘으로 입증해야만 한다는 세상의 무거운 강박에 지쳐 진리의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에, 우리의 연약함 그대로를 넉넉히 품어 안으시는 주님의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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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는 상업적으로 크게 번성했을 뿐 아니라 헬라의 이원론적 철학과 수사학이 고도로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유창하고 달콤한 말솜씨를 최고의 지혜라 여기며 숭상했습니다. 비극적이게도 이러한 세속의 가치관은 복음의 문턱을 넘어 교회 안으로까지 고스란히 흘러들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하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세상의 잣대인 지혜와 언변을 기준으로 사역자들을 평가했습니다. 누구는 바울의 논리가 좋다 하고, 누구는 아볼로의 수사학이 더 탁월하다며 파당을 지어 다투었습니다. 복음마저도 자신이 남들보다 더 세련된 지식을 가졌음을 증명하는 종교적 액세서리로 전락시킨 참담한 영적 허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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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화려한 수사학의 성채를 쌓아 올린 이들을 향해, 바울 사도는 벼락같은 선언을 던집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 1:18).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고 헬라인들은 철학적 지혜를 찾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형틀에 매달린 예수의 십자가는 미련하고 혐오스러운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 약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어 강하고 지혜롭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고전 1:26).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가 세상의 스펙을 갖추고 매끄러운 언변을 구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철저히 무자격하고 비천한 우리를 품어 안으심으로써, 구원은 인간의 알량한 성취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그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위대한 섭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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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얄팍한 지식으로 자기를 포장하려는 세속적 관성을 깨뜨리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송인규 교수는 묵상이란 내가 목말라하던 위로나 성공의 비전을 성경에서 빨아들여 내 신념을 강화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님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진정한 묵상은 우리 몸에 새겨진 세상의 생존 법칙, 즉 강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세속적 아비투스를 해체하는 일입니다. 내 입맛에 맞게 말씀을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낯설고 불편한 말씀이 나를 찌르고 교정하도록 나를 내어주는 고통스러운 순복입니다. 지혜의 말로 자신을 치장하려는 헛된 시도를 멈추고 십자가 앞에 내 교만을 무장해제 시키는 내면의 거룩한 혁명, 그것이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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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가진 직분이나 성경 지식, 혹은 사회적 성공을 은근히 과시하며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피로감 속에 살고 계십니까. 반대로 내세울 만한 성취가 없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엔 너무 초라한 사람이라며 위축감에 사로잡혀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이제 내 힘으로 인생의 값어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그 서늘한 강박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화려한 금관을 쓴 철학자가 아니라, 십자가에 벌거벗겨진 가장 연약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혜가 끝나는 그 처절한 무능과 실패의 자리에서, 기어코 우리의 죽음을 생명으로 뒤바꾸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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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화려하게 조각된 금잔의 헛된 꿈을 버리고, 투박한 질그릇의 본질을 껴안는 일과 같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우리에게 흠집 하나 없는 눈부신 금잔처럼 매끄럽게 세공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고 다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토록 얄팍한 지식과 스펙으로 나를 도금하려 애쓰며, 남들의 잔과 내 잔의 화려함을 비교하느라 피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위대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가장 고귀한 보혈과 은총의 생수를그 번지르르한 금잔에 담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이리저리 부딪혀 이가 나가고 거칠고 투박한 우리의 질그릇을 일부러 택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반짝이려는 피곤한 위장을 멈추고 빈 그릇의 연약함 그대로 주님 앞에 엎드릴 때, 마침내 사람들은 그릇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보잘것없는 그릇 속에서 콸콸 쏟아져 나와 온 세상을 적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압도적인 생수를 발견하고 하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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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그릇이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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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절정으로 치닫는 이 눈부신 계절, 세련된 말과 지식으로 남을 누르고 일어서려는 세상의 차가운 수직적 질서를 미련 없이 거부하십시오. 그저 내 안의 세속적 관습을 깨뜨리시는 말씀의 혁명, 그 깊은 묵상의 자리에 고요히 엎드리며, 십자가의 넉넉한 은총 안에서 곁에 있는 약한 이들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는 참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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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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