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01:18-31 십자가의 역설 : 세상의 지혜를 폐하시는 하나님의 참된 지혜와 능력

by 평화의길벗 posted Jun 0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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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01:18-31 십자가의 역설 : 세상의 지혜를 폐하시는 하나님의 참된 지혜와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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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세상의 철학과 수사학을 숭상하며 교만과 분쟁에 빠진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인간의 말과 지혜가 아닌 '십자가의 도(말씀)'가 진정한 구원의 능력임을 선포합니다. 기적을 구하는 유대인과 철학적 지혜를 찾는 헬라인에게 십자가는 각각 거리끼는 것과 미련한 것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자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하고 약하며 천한 자들을 택하셔서 지혜롭고 강하다 자부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며, 성도의 유일한 지혜와 의로움과 구속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주님 안에서만 자랑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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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및 문화적 배경 : 1세기 고린도 도시는 상업적인 번성과 더불어 ‘철학과 수사학’이 고도로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고린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새로운 사상들이 유입되어 혼합주의가 형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논리적이고 화려하게 말하는 수사학에 능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며, '고린도인처럼 말한다'는 것은 설득력 있고 달콤하게 수사학적으로 말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또한, 영혼만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헬라 이원론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 신학 및 사상적 배경 : 고린도 교인들은 이러한 세속의 철학과 수사학적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혜롭다고 착각하며, 설교자의 수사학적 능력과 학식을 기준으로 바울, 아볼로 등을 평가하고 파벌을 나누어 시기하고 경쟁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말의 지혜'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십자가의 도(말씀)'를 구원론적, 기독론적 본질로 제시하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세상의 지혜와 능력을 철저히 파괴하고 뒤집는 '역설적 십자가의 방식'으로 성취됨을 논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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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1절 십자가의 도 : 세상을 심판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세상의 교만을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로 심판하시고, 오직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베푸시는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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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구원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지혜와 총명을 멸하시고 미련하게 하셨으며,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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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분쟁의 근본 원인이 '세상 지혜에 대한 숭상'에 있음을 간파하고, 이 단락에서 '십자가의 도(말씀)'와 '세상의 지혜'를 극단적으로 대조합니다. 이사야 29:14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폐기하심을 선포합니다. 당시 수사학과 철학을 대변하는 ‘지혜 있는 자, 선비(서기관), 변론가’들은 세상의 지성인들이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들의 지혜가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선포하는 기술의 어설픔이 아니라, 선포되는 '내용(케리그마)' 즉,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구원자'라는 메시지 자체가 세상의 눈에는 미련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이토록 '어리석어 보이는' 방법을 택하신 것은,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이성과 철학적 지혜를 도구 삼아 스스로 구원에 도달하려는 교만을 원천 봉쇄하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지성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단호한 심판인 동시에,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를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능력입니다. 세속 철학에 병들어 죽어가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가장 원색적이고 본질적인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만을 제시하는 바울의 모습에서, 자기를 부인하게 하심으로 교회를 살리시려는 주님의 애끓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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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한민국 사회와 교회는 지독한 능력주의와 지성주의, 그리고 '합리성'이라는 우상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말의 지혜'란 세련된 마케팅 기법, 심리학적 위로, 경영학적 목회 원리, 그리고 현란한 영상 매체들일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복음의 본질인 십자가의 고난과 자기 부인을 전하기보다는, 세상이 듣기 좋아하는 '성공과 축복의 수사학'으로 설교를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진정으로 구원하고 교회를 회복시키는 것은 세상의 철학이나 스펙이 아니라,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뿐입니다. 우리 교회를 비롯한 오늘날의 성도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인간적인 계산, 인맥, 처세술(세상의 지혜)로 해결하려는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억울하게 손해 보고, 낮아지고, 희생하는 '십자가의 방식'이 세상의 눈에는 패배자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그것이 갈등을 치유하고 생명을 낳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굳게 믿고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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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5절 표적과 지혜를 넘어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그리스도

하나님은 인간의 종교적 기대(표적)와 철학적 탐구(지혜)를 십자가로 산산조각 내시고, 가장 연약하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통해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루시는 역설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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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지만,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이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약하심이 사람의 지혜와 강함보다 뛰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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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당시 세계관을 양분하던 유대인과 헬라인을 등장시킵니다. 유대인은 출애굽의 기적과 같은 스펙터클한 신적 권능(표적)을 기대했고, 헬라인(이방인)은 이성에 부합하는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지혜를 진리로 여겼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모순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였으므로(신 21:23) 십자가는 심각한 '걸림돌(스칸달론)'이었고, 헬라인에게 반역자로 몰려 사형틀에서 죽은 신의 이야기는 완벽한 '미친 짓(미련함, 모리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기대치(표적과 지혜)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하나님은 가장 처참한 실패와 연약함의 상징인 '십자가'를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셨고,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자기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최고의 '지혜'를 나타내셨습니다. 오직 은혜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만이 성령의 조명을 통해 이 십자가의 역설 속에 감추어진 참된 영광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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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도들 안에도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과 '지혜를 찾는 헬라인'의 모습이 공존합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 질병의 치유, 사업의 대박, 자녀의 명문대 진학 등 가시적인 '표적(성공)'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해하는 기복주의 신앙이 여전합니다. 반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설명만을 추구하며 이성에 갇혀 하나님의 초월적 구원을 재단하려는 이성주의적 신앙도 팽배합니다. 직장과 세상 속에서 우리는 힘의 논리(표적)와 지식의 논리(지혜)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전쟁터를 살아갑니다. 이 전쟁터에서 그리스도인이 이기는 방식은 더 센 표적이나 더 높은 스펙을 들이미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처럼 나를 내어주며, 원수 갚는 대신 용서하고, 불의한 이익 대신 정직한 손해를 감수하는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약하심'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 연약한 순종을 통해 직장과 사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진정한 능력이 발휘됨을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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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29절 약하고 미련한 자를 부르시는 은혜의 선택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에 미달하는 비천하고 약한 자들을 조건 없이 선택하심으로 세상의 교만을 꺾으시고, 누구도 자기 육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는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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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부르심의 상태를 상기시킵니다. 그들 중에는 지혜롭고 능하고 문벌 좋은 자가 적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하고 멸시받는 자, 없는 자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고 강하며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폐하셨습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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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십자가의 역설적 진리가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들 자체에 어떻게 체화되어 있는지를 보라고 촉구합니다("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대다수는 로마 제국의 사회·경제적 엘리트(문벌 좋고 능한 자)가 아니라 평범한 하층민, 노예,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세상의 계급과 지식을 흉내 내며 영적 우월감을 내세워 파당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세상의 '없는 것들'을 선택하셔서 '있는 것들'을 폐하셨을까요?. 바울은 헬라의 이원론적 계급주의와 능력주의에 물든 그들의 교만을 산산조각 내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인간의 공로나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철저히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세상의 가장 미천한 자들을 택하사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으신 이 '종말론적 대역전'은, 오직 구원이 100% 하나님의 은혜임을 천명하기 위함입니다. 그 어떤 육체(타락한 피조물)도 감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스펙, 혈통, 도덕, 영적 은사를 자랑할 수 없도록,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교만의 근거를 십자가 아래에서 철저히 소멸시키십니다. 이것이 연약한 자들을 품으시는 주님의 뜨거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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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한민국은 '수저론'으로 대표되는 지독한 서열화 사회입니다. 출신 학교, 부모의 재력, 직장의 간판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우상처럼 숭배받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한국 교회마저 이러한 세속적 기준을 도입하여, 헌금을 많이 하는 부자, 높은 지위의 사람들을 교회의 요직에 세우고 은연중에 우대하는 '세속화의 죄악'을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학벌이 짧고, 가난하며,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들이 오히려 복음 안에서 가장 존귀하게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 개인의 삶에서도, 내가 가진 지위나 부나 학식을 하나님이 주신 특권으로 삼아 교만해지지 말고,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자격 없는 자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철저히 고백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연약하고 무시당하는 동료들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 바로 저런 자들을 택하사 존귀케 하신다는 복음의 렌즈로 그들을 섬기는 수평적 사랑의 실천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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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1절 우리의 유일한 자랑,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사 그분 안에서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의 풍성한 복을 누리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게 하시는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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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구원함)이 되셨으므로, 자랑하는 자는 오직 주 안에서만 자랑해야 한다고 성경을 인용하여 결론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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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자랑을 폐기하신 바울은 이제 성도가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지 긍정적이고 궁극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성도의 새로운 실존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출생의 기원(origin)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현학적인 말의 유희를 참 지혜로 착각했지만, 바울은 '그리스도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참된 지혜'라고 선언합니다. 이 지혜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구원론적 열매로 나타납니다.
1) 의로움(칭의) : 법정적 개념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인으로 무죄 선언을 받음.
2) 거룩함(성화) : 성전의 개념으로,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삶이 거룩하게 빚어짐.
3) 구속함(구원, 영화) : 노예 시장의 개념으로, 사탄과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값을 지불하고 완전히 해방되어 최후의 자유와 영광을 누림.
이 놀라운 구원의 전 과정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9:24의 인용처럼, 성도의 입술에 담길 유일한 언어는 자신의 은사나 지식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자랑"뿐이어야 합니다,. 파당으로 찢어진 교회를 십자가의 은혜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여, 오직 한 분 주님만을 찬양하는 공동체로 회복시키시려는 바울(주님)의 눈물겨운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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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대, 자기 PR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성취, 외모, 부, 심지어 영적 체험과 종교적 행위마저 자랑거리로 삼아 타인과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생활 속에서도 '내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는가, 얼마나 헌신하는가'가 자기 의가 되어 남을 정죄하는 무기가 되곤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선 성도는 철저한 영적 파산을 선고받은 자들입니다. 내 안에는 단 1%의 의로움도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의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어주셨음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를 내세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입술을 깨물고, 십자가의 은혜만을 간증해야 합니다. 이 험난한 코로나 이후 시대,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양극화로 소망을 잃어가는 한국 사회를 향해, 우리 교회가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정치적 힘이나 경제적 구호가 아니라, 우리의 의로움과 구속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자랑하고 그 복음대로 낮아져 섬기는 삶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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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은혜와 권능의 원천이 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세상의 화려한 지혜와 능력을 추구하며 끝없이 경쟁하고 높아지려는 

저희의 완악하고 교만한 심령을 십자가 앞에 온전히 내려놓습니다. 

입술로는 십자가의 은혜를 찬양하면서도, 

삶의 자리에서는 여전히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처럼 눈에 보이는 성공만을 갈망하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처럼 나의 논리와 스펙을 의지하며 살았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아무 자격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천하고 미련한 저희를 은혜로 택하사, 

지혜 있고 강하다는 세상의 거짓된 우상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심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광양사랑의교회를 비롯한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세속의 가치관과 파당 짓는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지혜요,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 이름 하나만을 온 세상에 자랑하며 선포하는 

순결한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의 눈에는 미련해 보이고 약해 보일지라도, 

십자가의 희생과 낮아짐을 통해 상처 입은 세상을 치유하고 

영혼을 살려내는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참 지혜와 자랑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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