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29-50:14 제국의 피라미드를 거부한 나그네의 귀향

by 평화의길벗 posted May 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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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29-50:14 제국의 피라미드를 거부한 나그네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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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열두 아들에게 자신을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유언합니다. 그곳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신의 첫 아내 레아가 묻힌 언약의 무덤임을 강조한 뒤, 야곱은 평안히 숨을 거둡니다(49:29-33). 요셉은 아버지의 얼굴에 엎드려 울며 입 맞추고, 애굽의 의원들을 시켜 40일 동안 향 재료로 야곱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게 하며, 애굽 사람들은 70일 동안 그를 위해 애곡합니다(50:1-3). 요셉은 바로에게 청하여 아버지를 가나안에 장사하고 오겠다는 허락을 받아냅니다(50:4-6). 요셉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애굽의 모든 신하와 원로들, 병거와 기병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장례 행렬이 요단을 건너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7일간 크게 애통합니다. 가나안 백성들은 이를 보고 그곳을 아벨미스라임(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부릅니다(50:7-11). 야곱의 아들들은 유언대로 그를 막벨라 굴에 장사한 후, 형제들과 동행한 모든 자와 함께 애굽으로 돌아옵니다(5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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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애굽(이집트)은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방부 처리(Embalming)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였습니다. 시신에서 내장을 제거하고 향료와 소금(나트론)으로 40일간 건조 처리하는 것은 왕족이나 최고위 귀족에게만 허락된 장례법이었습니다. 애굽인들이 야곱을 위해 왕의 장례(72일)에 버금가는 70일 동안 애곡했다는 것은, 요셉의 권세와 야곱을 향한 제국의 예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줍니다.

# 야곱의 장례 행렬은 애굽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땅을 밟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옵니다. 이 거대한 행렬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하게 될 출애굽(Exodus)과 가나안 정복의 위대한 구속사적 예행연습(Preview)입니다. 하나님은 일개 유목민의 장례식을 제국이 경의를 표하는 국가적 행사로 승화시킴으로써 아브라함 언약의 권위를 세상에 선포하십니다.

# 본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단어는 야곱의 유언 속에 등장하는 레아입니다. 야곱은 평생 라헬만을 지독하게 편애했고, 그로 인해 레아는 평생을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 살았으며, 배다른 형제들 간의 피 튀기는 증오와 폭력, 곧 요셉 인신매매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음의 순간, 라헬(베들레헴 길가에 묻힘)의 무덤이 아니라 수평적 상처의 피해자였던 첫 아내 레아가 묻힌 막벨라 굴을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로 지목합니다. 이는 평생을 짓눌렀던 편애의 죄악을 청산하고 언약의 질서 안으로 완전히 편입되는 가부장의 영적 성숙을 보여줍니다. 또한, 서로를 찢고 죽이려 했던 형제들이 이 장례를 위해 하나 되어 거대한 행렬을 이루는 모습은 역기능 가정에 마침내 찾아온 완전한 화해, 샬롬을 고발하듯 웅장하게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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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29-33 제국을 거부한 유언 : 레아 곁으로의 귀환

하나님은 우리 내면의 삐뚤어진 애착과 수평적 상처를 죽음 앞에서 온전한 샬롬으로 치유하시는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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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명합니다.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 막벨라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야곱은 그 굴이 아브라함이 매장지로 산 것이며,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가 거기 장사되었고,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고 덧붙입니다. 유언을 마친 야곱은 발을 침상에 모으고 평안히 숨을 거둡니다. 레아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표현은 단순한 사실 보고가 아니라 임종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동사 '카바르(קָבַר, 장사하다)'가 완료형으로 쓰여, 야곱이 레아를 묻은 행위를 과거의 확정된 사실로 선언함으로써 그 언약적 의미를 못 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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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읽기에서 이 유언은 창세기 족장사 가운데 가장 깊은 내면적 치유를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애굽 제국 총리의 아버지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화려한 왕가의 계곡에 묻혀 영원한 영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의 영혼은 애굽의 풍요에 단 한 번도 동화되지 않은 영원한 나그네였던 것입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31절,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는 고백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지옥 같은 수평적 파탄으로 몰아넣었던 원인은 그의 지독한 라헬 편애였습니다. 레아는 평생 남편의 사랑을 구걸하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만 따진다면 야곱은 "나를 라헬의 곁에 묻어달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임종의 순간, 이스라엘로 성숙한 야곱은 사사로운 편애의 감정을 내려놓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흘러가는 언약의 계보(아브라함-이삭)를 잇는 정당한 언약의 아내로서 레아의 영적 지위를 공식적으로 확증하며, 자신도 그 레아 곁에 눕겠다고 선언합니다. 지독했던 편애와 가족 내의 상처가 마침내 온전한 화해와 샬롬으로 덮어지는 위대한 치유의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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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정 안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좇고 있는 라헬은 없습니까? 그 편애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받고, 가정의 샬롬이 깨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죽음의 문턱에서야 비로소 언약의 질서로 돌아온 야곱처럼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야 할 진짜 유산은 세상의 피라미드가 아니라, "우리의 본향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있다"는 분명한 나그네의 신앙입니다. 오늘, 육신적인 편애와 고집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가족을 영적으로 품어 안는 진정한 치유와 화해를 실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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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1-3 요셉의 눈물과 제국의 애도 : 세상의 기술마저 언약의 도구가 되다

하나님은 험악한 세월을 살아낸 언약 백성의 눈물을 소중히 여기시며, 세상의 시스템과 권력마저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복종하게 하시는 만유의 주재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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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아버지의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 맞춥니다. 그리고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니 40일이 걸립니다. 애굽 사람들은 70일 동안 그를 위하여 애곡합니다. 히브리어 '라파'(רָפָא, 의원)는 일반적 치유자를 뜻하는 동시에 시신을 처리하는 방부 전문가를 가리킵니다. 70일이라는 기간은 파라오의 장례(72일)에 거의 버금가는 숫자로, 고대 애굽 문헌에서 이처럼 최고의 예우를 받은 외국인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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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눈물은 언제나 깊은 수평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7세에 아버지를 떠나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서 썩으며, 제국의 권좌에 오르기까지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 그리고 고센 땅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치유의 17년(창 47:28). 이 모든 험악한 세월의 회한과 감격이 이 눈물과 입맞춤 속에 녹아내립니다. 아들의 이 따뜻한 입맞춤은 야곱이 살아온 고단한 삶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위로의 마침표입니다. 주목할 점은 애굽 제국의 반응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의원들을 시켜 아버지를 방부 처리합니다. 이는 이방 종교 의식에 동화된 것이 아닙니다.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무사히 가나안까지 이동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제국 기술을 거룩한 약속의 성취를 위한 도구로 역이용한 지혜입니다. 애굽 전체가 70일 동안 슬퍼한다는 것은, 볼품없는 유목민 노인에 불과했던 야곱을 하나님께서 제국의 한복판에서 왕과 같은 영광을 받는 존재로 높여 주신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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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세상의 전문성과 사회적 지위를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나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가고 복음을 운반하기 위한 선한 도구로 세상의 기술과 지혜를 거룩하게 역이용할 줄 아는 영적 안목을 갖추기를 소망합니다. 세상 속에서 때로 초라해 보이는 우리의 신분이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신뢰하며 언약의 자리를 끝까지 지킨 자의 삶을 세상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그 영광을 반드시 높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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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4-9 출애굽의 예행연습 : 샬롬의 행렬

하나님은 서로를 찢고 찌르던 상처투성이의 사람들을 십자가의 용서로 꿰매시어, 세상을 압도하는 거룩하고 웅장한 언약 공동체로 행진하게 하시는 구원의 통치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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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바로에게 아버지의 유언을 전하며 가나안에 올라가 장사하게 해 달라고 청원하자, 바로가 허락합니다. 요셉이 올라갈 때 바로의 모든 신하와 원로들, 애굽 땅의 모든 원로,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이 동행합니다. 병거와 기병이 호위하여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고 본문은 기록합니다. 히브리어 '마하네(מַחֲנֶה, 진영/군대)'는 창세기 32장 야곱이 마하나임에서 하나님의 군대를 만났던 장면과 같은 어근에서 파생됩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처음과 끝을 모두 하나님의 군대로 감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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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장례 행렬은 창세기 수평적 서사의 눈부신 절정이며, 구속사 전체를 관통하는 장엄한 예언적 퍼포먼스입니다. 수평적으로 보십시오. 행렬의 중심에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이 하나 되어 걷고 있습니다. 창세기 37장을 떠올려 보십시오. 형들은 요셉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고 아버지를 속여 평생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해자들이었습니다. 파편화되고 서로를 혐오하던 이 역기능 가정이, 이제는 요셉의 용서와 유다의 대속적 자기헌신(창 44장)을 통과한 후,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버지를 메고 약속의 땅을 향해 걷는 완전한 샬롬의 공동체로 재탄생했습니다. 수직적, 구속사적으로 이 행렬은 출애굽의 리허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후 모세의 인도로 병거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진군할 것입니다. 한 개인의 장례식이 하나님의 군대가 약속의 땅을 향해 올라가는 승리의 대행진으로 변모합니다. 죽음을 통해 약속의 땅을 미리 밟아보는 생명의 행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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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정과 공동체 안에는 과거의 상처로 인해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대화가 단절된 요셉과 형제들 같은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내 이익을 위해 형제를 구덩이에 밀어 넣었던 그 적대적인 관계가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 치유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군대로 함께 행진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상처 준 자를 용서하고, 나의 허물을 회개하며 어깨를 걸고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해 걷는 샬롬의 행렬, 그것이 오늘 우리 공동체가 회복해야 할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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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10-14 아벨미스라임의 애통 : 나그네의 귀환

하나님은 언약 백성의 삶과 애통이 세상 사람들에게 거룩한 표적이 되게 하시며, 최후의 승리가 오기까지 오늘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사명을 다하게 하시는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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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크게 호곡하고 7일 동안 애통합니다. 가나안 백성들이 이 광경을 보고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여 그곳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부릅니다. 아들들은 야곱의 유언대로 그를 막벨라 굴에 장사합니다. 그리고 요셉과 그의 형제들, 동행한 모든 무리가 다시 애굽으로 돌아옵니다. 히브리어 '아벨(אָבֵל)'은 슬픔의 장소를 뜻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명으로 새기는 행위입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스스로 그 땅에 이스라엘의 슬픔을 새겨준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그 땅에 실재한다는 영적 선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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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픔은 절망의 울부짖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기둥이 무너진 것에 대한 거룩한 슬픔이며, 가나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영적 충격입니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14절의 마지막입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었지만, 거기에 주저앉거나 당장 가나안을 정복하겠다고 칼을 뽑아 들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향한 갈망을 아버지의 무덤에 묻어둔 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현재의 삶의 자리, 곧 세속 제국인 애굽의 현실로 조용히 걸음을 돌립니다. 흥분하여 무리하게 앞서가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표에 자신의 삶을 철저히 맞추는 언약 백성의 깊은 절제와 인내의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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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미래의 영광, 곧 약속의 땅을 소망하면서도, 오늘 나에게 주어진 고단한 일상의 자리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변화산의 황홀한 영광에 머물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기 위해 산 아래의 일상으로 다시 내려오셨습니다. 언젠가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의 영광을 확실히 가슴에 품고, 오늘 당장 눈앞에 성취되지 않는다 해도 흔들림 없이 나의 오늘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내는 참된 순종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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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둠의 기도

험악한 세월의 상처를 기어이 화해의 샬롬으로 덮어내시고, 

세상 제국 한복판에서 우리를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이끌어 올리시는 은혜롭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평생을 이기적인 편애에 사로잡혀 레아의 눈물과 자식들의 다툼을 초래했던 야곱이, 

마침내 임종의 자리에서 사사로운 감정을 내려놓고 

상처받은 아내 레아의 곁, 막벨라 굴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며, 

굳어진 우리 영혼이 큰 떨림으로 주님 앞에 섭니다. 

주님, 우리 가정과 교회 안에도 나의 이기심과 편애 때문에 상처받고 소외되어 

피눈물을 흘리는 지체들이 있음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죽음이 이르기 전에 내 안의 교만과 고집을 내려놓고, 

그들의 상처를 품어 안는 진정한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우리 삶에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국의 화려한 피라미드를 단호히 거부하고 약속의 땅을 유언으로 남긴 야곱의 믿음이, 

오늘 이 세속 자본주의의 파도 속에 흔들리는 우리의 푯대가 되게 하옵소서. 

자녀들에게 썩어질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나라다 라는 선명한 나그네의 신앙을 

가장 값진 유산으로 물려주는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서로를 미워하여 죽음의 구덩이에 던졌던 형제들이 

이제는 용서와 사랑의 띠로 묶여 아버지를 함께 메고 

약속의 땅으로 걸어가는 그 장엄한 출애굽의 행렬이, 

분열된 이 시대와 상처 입은 우리 공동체의 내일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시스템과 권력마저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주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품은 채 오늘 내게 허락된 

삶의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 십자가의 사명을 묵묵히 살아내는 

인내의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음의 무덤에서 친히 부활하사 우리에게 영원한 본향을 예비해 주시고, 

험악한 세월을 걷는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참된 소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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