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16-28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 상처의 화살을 품어 빚어낸 은총의 진주

by 평화의길벗 posted May 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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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16-28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 상처의 화살을 품어 빚어낸 은총의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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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서로를 향해 적의의 활시위를 당기고 먹잇감을 물어뜯는 세상의 폭력적인 수평적 현실 앞에서도 절망하는 대신, '말씀 속 인물들의 고통과 탄식의 자리로 깊이 시간 여행을 떠나는(공감으로서의 묵상)' 영적 연대를 통해, 우리에게 박힌 상처의 화살마저 기어코 담을 넘는 생명의 가지로 피워내시는 하나님의 가없는 은총에 내 삶을 온전히 의탁하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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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인간관계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때로는 서로를 향해 숨겨둔 적의의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서늘한 긴장감과 마주치게 됩니다.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한 경쟁의 전쟁터 한복판에서, 날아오는 상처의 화살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남몰래 한숨짓고 계실 여러분의 영혼에, 상처 입은 우리를 기어코 은총의 샘 곁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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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마주한 창세기 49장 후반부의 풍경은, 파란만장한 생의 끝자락에 선 늙은 아비 야곱이 아들들에게 남기는 유언이자 축복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흔히 축복이라 하면 무탈하고 영광스러운 덕담을 기대하지만, 야곱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미래는 지독하리만치 적나라한 현실의 폭력성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단을 향해서는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라고 하고, 베냐민을 향해서는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라고 선언합니다. 나아가 요셉을 향해서는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라고 묘사합니다. 창세기가 그려내는 인간의 역사는 뱀처럼 서로의 발뒤꿈치를 물고, 이리처럼 약자를 탈취하며, 형제를 향해 적개심의 화살을 쏘아대는 수평적 폭력의 연대기입니다. 요셉을 향해 맹렬하게 화살을 쏘았던 그 활 쏘는 자는 다름 아닌 질투와 이기심에 눈이 멀어 그를 노예로 팔아넘긴 친형제들이었습니다. 인간은 이토록 잔혹하게 서로를 파괴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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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자식들의 이 폭력적인 수평적 실상을 내다보다가, 길섶의 뱀 이야기를 하던 도중 돌연 깊은 탄식을 토해냅니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창 49:18). 서로를 물어뜯고 화살을 쏘아대는 인간의 비루한 역사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과 은총이 없이는 어떠한 소망도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은 자의 처절한 항복 선언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은 그 지독한 폭력의 상처가 파멸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창 49:22, 24). 요셉은 자신에게 날아온 폭력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더 높고 견고한 방어의 담장을 쌓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논리는 나를 찌른 자들에게 복수하거나 철저히 담을 쳐서 나를 보호하라고 다그치지만, 요셉의 생명력은 도리어 그 담장을 훌쩍 넘어 나를 과녁 삼았던 형들조차 먹여 살리는 무성한 생명의 가지로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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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역전은 어디서 비롯됩니까. 그것은 참된 묵상, 곧 공감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송인규 교수는 묵상을 가리켜 "공감(Empathy)"이라고 정의하며, 올바른 성경 묵상에는 일종의 시간 여행이 요구된다고 말합니다. 기록된 시대의 형편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문화와 신념 속으로 깊이 잠입하는 것이 묵상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묵상은 내게 유리한 위로의 구절만 얄팍하게 뽑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적개심의 화살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던 요셉의 그 피 흘리는 고통 속으로, 그리고 자식들의 잔혹한 본성을 마주하며 구원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야곱의 그 서늘한 탄식 속으로 내 영혼이 깊이 잠입하여 함께 우는 치열한 공감의 시간입니다. 그 뼈아픈 공감의 묵상을 거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민감해지며, 나를 찌른 이들을 향한 분노를 내려놓고 생명의 샘이신 하나님께 우리 존재를 온전히 의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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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 곁의 누군가가 쏜 억울한 화살에 맞아 마음이 갈기갈기 찢긴 채 짙은 회의와 고독의 방에 갇혀 계십니까. 이제 내 힘으로 복수하고 생존을 쟁취하려 꽉 쥐었던 그 고단한 활과 화살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형제를 과녁 삼아 활을 쏘았던 그 비루한 자들마저 끝내 열두 지파의 품 안으로 끌어안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화살을 피하는 완벽한 기술이나 견고한 성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숱한 상처와 폭력으로 얼룩진 우리의 남루한 일상 한복판에 마르지 않는 은혜의 샘으로 찾아오시어, 찢긴 우리 영혼을 도리어 타인을 살려내는 눈부신 샬롬의 가지로 빚어내시는 주님의 그 압도적이고도 신실한 자비에 온전히 잇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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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차갑고 뾰족한 이물질을 품어 영롱한 보석으로 빚어내는 진주조개의 생애와 같습니다. 거친 바다에서 뜻하지 않게 조개의 연한 속살로 날카로운 모래알 하나가 파고듭니다. 세상의 논리는 그 고통스러운 모래알을 당장 뱉어내거나 상대를 향해 독을 뿜으라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조개는 그 치명적인 상처를 피하기 위해 단단한 껍데기를 굳게 닫고 죽어가는 대신, 기어코 자신의 생명액을 짜내어 그 날 선 이물질을 겹겹이, 그리고 고요히 감싸 안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분노의 활시위를 내려놓고 주님의 손에 우리 영혼을 온전히 내어 맡길 때, 우리 삶에 박힌 그 억울하고 쓰라린 흉터들은 마침내 나를 넘어 이웃의 절망까지 환하게 비추는 가장 고귀하고도 눈부신 은혜의 진주로 찬연하게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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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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