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8:08-22 어긋맞낀 두 손과 끊어진 질투의 사슬

by 평화의길벗 posted May 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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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8:08-22 어긋맞낀 두 손과 끊어진 질투의 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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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스라엘)은 요셉의 두 아들을 보고 누구냐고 묻고, 요셉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주신 아들들이라고 답합니다(8-9절). 눈이 어두운 야곱이 그들에게 입 맞추고 안으며, 요셉의 얼굴을 다시 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10-11절). 요셉이 장자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손에, 차남 에브라임을 왼손에 닿도록 인도하지만, 야곱은 손을 어긋맞껴(교차하여)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에 얹습니다(12-14절). 야곱은 조상들의 하나님, 출생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고엘)'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축복합니다(15-16절). 요셉이 아버지가 손을 어긋맞낀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교정하려 하지만, 야곱은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며 차남이 장자보다 더 크게 될 것이라는 영적 통찰을 고집합니다(17-19절). 마지막으로 야곱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며 하나님이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고, 요셉에게 형제들보다 세겜(일 부분)을 더 주겠다고 선언합니다(20-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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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에서 '오른손(우편)'은 힘과 권위, 그리고 가장 크고 영광스러운 축복(장자의 갑절의 분깃)을 상징합니다. 요셉이 애굽 제국의 관례와 서열에 따라 장남 므낫세를 아버지의 오른쪽에 치밀하게 배치한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행동이었습니다.

# 신학적·구속사적 배경 : 창세기는 끊임없이 인간의 혈통적 장자권(Primogeniture)이 거부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차남이 축복을 받는 패턴(가인 대신 아벨/셋, 이스마엘 대신 이삭, 에서 대신 야곱, 르우벤 대신 유다/요셉)을 보여줍니다. 야곱의 어긋맞낀 두 손은 인간의 기득권과 서열을 파괴하고 은혜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십자가적 구속 원리를 예표합니다.

#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 관점 : 본문은 역기능 가정의 가장 끔찍한 뇌관이었던 '편애와 서열의 파괴'가 어떻게 치유의 결말을 맺는지를 고발하듯 보여줍니다. 과거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챘을 때 가정은 살의와 도망으로 파탄 났고, 요셉이 채색옷(장자의 대우)을 입었을 때 형들은 질투로 그를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에브라임이 므낫세의 장자권을 가로채는(오른손의 축복을 받는) 이 상황에서, 놀랍게도 므낫세는 동생을 시기하지 않고, 요셉의 가족 안에는 어떠한 폭력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수평적인 질투의 사슬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마침내 끊어진 것입니다. 또한 야곱이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부른 것은 성경 전체에서 최초의 고백으로, 남을 속이며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의 '험악한 세월'을 전적으로 이끌어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깨달은 성숙한 통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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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4절 제국의 서열을 뒤집는 어긋맞낀 두 손 : 자격 없는 자에게 임하는 십자가 모양의 은혜

하나님은 세상의 서열과 기득권을 십자가 모양으로 어긋맞껴 뒤집으심으로, 자격 없는 자에게 전적인 은혜를 베푸시는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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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어두운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보고 입 맞추며 안아줍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축복하기 편하도록 장남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고, 차남 에브라임을 왼손을 향하게 하여 이끕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장남 므낫세의 머리에 얹어 의도적으로 팔을 어긋맞껴(שָׂכַל, 사칼) 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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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인간의 통제욕과 하나님의 주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현장입니다. 요셉은 애굽 제국의 2인자로서 철저히 질서와 서열, 합리적 공정성을 중시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장남 므낫세가 당연히 우월한 오른손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확신 속에 아이들의 위치를 완벽하게 기획하여 아버지 앞에 밀어 넣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은 어두웠으나 영의 눈이 열린 노인 야곱은, 그 치밀한 인간적 배치를 뚫고 두 팔을 십자가 모양으로 어긋맞껴 얹습니다. 

히브리어 사칼(שָׂכַל)은 단순한 교차가 아니라 '지혜롭게, 의도적으로'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우연한 실수가 아닙니다. 창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 곧 인간의 기득권과 육신적 장자권을 폐기하시고 자격 없고 연약한 자를 택하시어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시는 은혜의 역설을 야곱이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인 대신 셋이, 이스마엘 대신 이삭이, 에서 대신 야곱이, 르우벤 대신 유다와 요셉이 선택되었던 그 일관된 패턴이 지금 이 늙은 족장의 어긋맞낀 두 손 위에서 다시 한번 완성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긋맞낀 두 손의 궁극적인 형태는 훗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온 인류를 향해 양팔을 벌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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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상의 문화는 요셉처럼 서열과 질서를 사랑합니다. 더 좋은 학벌, 더 많은 재산,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당연히 하나님의 더 큰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교회 안에서조차 은연중에 그런 기준으로 사람들을 줄 세우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언제나 세상의 상식을 거스르는 어긋맞낀 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내 인생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왼손의 자리에 있는 것 같아 절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어긋맞낀 오른손의 은혜가 바로 그 낮고 자격 없는 곳을 향하고 있음을 신뢰하십시오. 또한 내 힘으로 자녀의 인생 서열을 기획하려는 영적 통제욕을 내려놓고, 주권적으로 엇갈리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사칼) 앞에 온전히 항복하는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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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절 험악한 세월을 구속한 '나의 목자' : 고집 센 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선한 목자의 고백

하나님은 속이고 빼앗으며 상처투성이로 살아온 우리의 험악하고 실패한 세월마저도,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하시며 끝까지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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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한 최초의 성경 본문이 바로 이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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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기도문은 야곱 인생 최고의 걸작이자, 그의 신앙이 도달한 궁극적 성숙의 절정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הָרֹעֶה אֹתִי, 하로에 오티, 문자적으로 '나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수평적으로 야곱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거짓말로 형의 축복을 훔쳤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치열하게 내 힘으로 부를 축적하려 발버둥 쳤으며, 자식들의 살육과 근친상간, 요셉을 잃은 슬픔으로 점철된 그야말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는 늘 자신이 자기 인생의 목자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서 지나온 모든 수평적 고통의 궤적을 돌아보니, 자신이 지팡이를 쥐고 양을 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야말로 고집 세고 눈먼 양이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자신을 치시고 먹이시고 보호하셨던 참된 목자이셨음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더불어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신(הַגֹּאֵל, 하고엘, 구속자) 사자"라고 고백합니다. 고엘(Goel)은 친족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속량하는 대속자입니다. 야곱이 스스로 저지른 죄악의 빚과 환난의 늪에서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내 대속하여 살려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장엄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훗날 룻기의 보아스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고엘이 되실 것임을 이 노인의 황혼 기도는 먼 지평선 너머로 이미 가리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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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인생의 성공과 안정을 내 지혜와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질병의 위기나 재정적 실패, 자녀 문제 등 피할 수 없는 환난을 만날 때 비로소 내가 양처럼 무지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야곱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삶이 아무리 실수투성이요 상처로 얼룩진 험악한 세월이었다 할지라도, 그 시간은 결코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모난 성품과 수평적 파탄 속에서도 끝까지 나를 추적하시고 구속(Goel)하시어 십자가의 은혜로 이끌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내 인생의 진정한 목자이셨음을 고백하십시오. 내 힘으로 아등바등 살아보려는 인생의 피곤한 짐을 내려놓고, 이제는 나를 영원한 푸른 초장으로 이끄시는 선한 목자의 인도하심에 내 남은 생애를 전적으로 의탁하는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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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0절 "나도 안다 내 아들아" : 수 세대를 이어온 질투의 사슬이 마침내 끊어지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불공평해 보이는 방식으로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 은혜를 향한 질투와 비교의식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우리를 참된 샬롬의 공동체로 성숙시키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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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에게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옮기려 하며 "아버지가 이러하지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라고 교정하려 듭니다. 그러나 야곱은 허락하지 않으며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고 답하며, 형도 큰 민족을 이루겠지만 아우가 그보다 더 큰 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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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지 아니하여." 이 표현은 요셉 안에 여전히 세상의 잣대, 곧 장자 우선주의가 견고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노망이 나서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여겨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을 인간의 공정성으로 막아서려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יָדַעְתִּי בְנִי יָדַעְתִּי, 야다티 베니 야다티)." 이는 육신의 눈은 멀었으나 하나님의 섭리를 꿰뚫어 보는 영적 거인의 확신에 찬 선언입니다. 여기서 수평적 읽기의 진정한 정점이 드러납니다. 과거 야곱의 가정에서 동생이 형을 역전하는 축복을 받을 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가인은 아벨을 쳐 죽였고,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했고, 야곱의 아들들은 편애받는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형제 살해와 지독한 질투라는 역기능의 카르텔이 수 세대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에브라임이 므낫세의 장자권을 가로채는 이 극적인 순간에, 성경은 므낫세의 분노나 형제간의 다툼을 전혀 기록하지 않습니다. 요셉의 걱정과 달리, 므낫세는 동생에게 주어지는 어긋맞낀 축복을 잠잠히 수용합니다. 수 세대를 이어온 끔찍한 질투와 희생양 메커니즘의 저주가, 십자가 형태로 어긋맞낀 야곱의 두 손 아래서 마침내 치유되고 극복된 것입니다. 목자 하나님의 섭리가 한 역기능 가정의 오랜 저주를 샬롬의 공동체로 변화시킨 장엄한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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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무서운 독은 타인을 향한 시기와 비교의식입니다. 나보다 나중에 들어온 신자, 나보다 연약해 보이는 지체가 나보다 더 큰 은혜를 받고 리더로 세워질 때, 우리는 요셉처럼 "하나님, 이러지 마옵소서, 내가 먼저이고 내가 더 자격이 있습니다"라며 불쾌해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남이 받는 축복을 향한 나의 시기심을 죽이는 것입니다. 내게 익숙한 서열과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할 때 분노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의 질서를 기쁨으로 수용하며, 동생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왼손의 자리로 물러나 박수 쳐 줄 수 있는 므낫세와 같은 성숙함이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질투를 끝내고 타인의 축복을 수용할 때, 비로소 공동체는 깊은 화해와 샬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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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2절 나그네의 소망과 세겜의 유산 : 상처의 땅을 믿음의 기업으로 물려주는 족장의 유언

하나님은 이 땅의 삶이 끝나갈 때, 육신의 유산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는 언약적 약속만을 가장 위대한 기업으로 물려주게 하시는 영원한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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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마지막으로 요셉에게 말합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일 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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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야곱은 애굽 제국의 심장부에서 눈을 감으면서도, 결코 애굽의 부귀영화를 유산으로 남기지 않습니다. 그는 영원히 떠돌아야 할 나그네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비록 자신은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구속사적 소망을 자녀들에게 전수합니다. 인간 지도자는 죽고 사라지지만,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임마누엘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위대한 유언입니다. 

더불어 야곱은 요셉에게 특별한 유산으로 세겜(שְׁכֶם, 쉐켐, 어깨 혹은 일 부분)을 줍니다. 세겜은 야곱 인생에 가장 수치스럽고 끔찍한 폭력이 일어났던 트라우마의 장소입니다. 딸 디나가 강간당하고, 아들들 시므온과 레위가 잔혹한 학살을 저질러 가문이 멸망당할 뻔했던(창 34장) 뼈아픈 과거가 묻힌 땅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제 죽음 앞에서, 그 수평적 실패와 상처의 땅을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상징하는 소망의 장소로 재해석하여 요셉에게 물려줍니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조차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 안에서는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영광스러운 첫 교두보로 변화됨을 선포하는 믿음의 승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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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주려 합니까? 통장의 잔고나 세상의 성공을 남겨주지 못해 미안해합니까? 성도가 물려주어야 할 가장 위대한 유산은 세상의 물질이 아니라, "부모인 나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평생토록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라는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또한 우리 인생에 남에게 감추고 싶은 세겜과 같은 상처와 실패의 흔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통과한 상처는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내가 예전에는 이런 끔찍한 죄인으로 실패했었지만, 하나님이 이 실패를 구속하사 은혜의 기념비로 삼으셨다"고 담대히 간증하십시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내 상처마저도 은혜로 역전시키신 십자가의 신앙을 가장 고귀한 기업으로 물려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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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의 굳어진 상식과 서열을 무너뜨리사 

자격 없는 자에게 어긋맞낀 은혜를 부어주시는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죽음을 앞둔 야곱이 자신의 험악한 세월을 돌아보며, 

그 모든 수평적 파탄과 절망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향해 "나의 목자요, 나를 건지신 구속자"라고 찬양했던 

그 위대한 고백이 오늘 우리의 심장에서 터져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지혜와 내 고집으로 양 떼를 쳐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남을 속이고 상처 주었던 우리의 어리석은 지난날을 용서하옵소서. 

오직 주님의 십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만이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이끄시는 유일한 소망임을 온전히 신뢰하며 항복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요셉처럼 세상의 합리적 질서와 공정함이라는 잣대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재단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더 수고했으니, 내가 장자이니 마땅히 더 큰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고집하며, 

연약한 지체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엇갈린 은혜를 시기하고 

기뻐하지 않았던 우리의 좁은 마음을 부수어 주시옵소서.

"나도 안다 내 아들아" 하시며 차남의 머리 위에 오른손을 얹으신 

그 십자가의 역설 앞에 우리의 모든 교만과 비교의식을 못 박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더 이상 남의 축복을 배 아파하는 

형제 살해의 질투가 사라지고, 타인의 영광을 기쁨으로 품어내는 

므낫세와 같은 성숙한 샬롬이 꽃피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언젠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이 땅을 떠날 나그네들입니다.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썩어질 애굽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시리라"는 

임마누엘의 굳건한 언약을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물려주는 

부모 세대가 되게 하옵소서. 

내 인생의 수치스러웠던 세겜의 상처마저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기업으로 바꾸어내시는 

주님의 크신 구속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의 모든 실패와 눈물과 부끄러움이 

주님의 손 안에서는 하나도 허비된 것이 없었음을 고백하며, 

남은 날들을 그 은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목자가 되시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어긋맞껴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죽음의 환난에서 영원히 속량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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