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7:27-48:7 애굽의 안락을 거절한 지팡이

by 평화의길벗 posted May 2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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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7:27-48:7 애굽의 안락을 거절한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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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안락한 제국(애굽)의 질서에 동화되어 영구히 안주하려는 세속적 본능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에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거는 일(묵상)'을 통해, 숱한 상실과 아픔으로 얼룩진 우리의 여정조차 기어코 영원한 언약의 품으로 끌어안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자비에 기대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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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5월의 끄트머리입니다. 눈부시게 타오르던 봄꽃들이 지고 녹음이 짙어지며, 다가올 뜨거운 여름을 향해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는 순리의 시간을 마주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늘 더 많은 풍요를 소유하고 중심부의 권력을 차지하는 것만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다그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창세기 47장 후반부에서 48장 전반부의 풍경은, 거대한 제국 애굽의 가장 비옥한 땅에서 남부럽지 않은 안락을 누리던 한 노년의 아비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 세속적 풍요의 자리를 어떻게 단호히 거절하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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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그의 가족은 고센 땅에 정착하여 번성했습니다. 애굽에서 보낸 세월만 무려 17년이었고, 나이는 백사십칠 세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기근을 피해 내려온 타국에서 총리가 된 아들의 보호 아래 평안한 노후를 보낸 완벽한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죽을 날이 임박하자 야곱은 요셉을 불러 엄숙한 맹세를 요구합니다.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나를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야곱의 모습은, 제국의 화려함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순례자의 눈부신 저항입니다.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애굽은 권력과 성취를 중심으로 사람을 목적이 아닌 노동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억압의 제국입니다. 야곱은 17년간 그 혜택을 누리면서도, 자신의 존재가 제국의 흙 속에 영구히 동화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척박하더라도 하나님의 언약이 살아 숨 쉬는 가나안 땅, 믿음의 조상들과 연대하는 언약의 자리에 눕기를 갈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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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야곱을 찾아온 요셉과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향해, 야곱은 벧엘에서 자신에게 나타나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합니다. 그리고 애굽 땅에서 태어난 두 손자를 친아들로 입양하는 파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제국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핏줄들조차 제국의 시민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거룩한 공동체 안으로 끌어안는 위대한 포용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장엄한 축복의 순간에 야곱은 느닷없이 자신의 가장 뼈아픈 상실의 기억을 꺼내 놓습니다.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바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창 48:7).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길가에 묻어야 했던 그 쓰라린 흉터는 야곱의 가슴속에 평생토록 옹이처럼 맺혀 있었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축복의 자리에서 이 비극적인 상실의 기억을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인생은 이처럼 예상치 못한 길 위에서의 죽음과 상실로 얼룩져 있지만, 하나님은 루스(벧엘)의 황량한 들판에서 도망자였던 자신을 만나주셨듯, 찢기고 파편화된 우리의 슬픈 과거조차 기어코 끌어안으시어 당신의 영원한 구원 이야기 속으로 편입시켜 주시는 신실한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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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애굽의 안락함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고, 삶의 상실조차 은총으로 빚어내는 언약의 길을 걷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거룩한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묵상의 본질을 이렇게 새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와 세속적 욕망의 이야기가 치열하게 다투는 각축장이며, 우리 앞에는 오직 두 가지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참된 묵상이란 내 인생의 안락을 위해 성경에서 처세술의 정답을 골라내는 얄팍한 행위가 아닙니다. 묵상은 세상의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분이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역사 속에 전개되어 가는지를 바라보며, 그 이야기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 일입니다. 자끄 엘륄은 그리스도인들이 시대가 중시하는 가치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경계하며, 사회에 만연한 사조에 대항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묵상은 당장 눈앞의 고센 땅이 영원한 피난처인 것처럼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숱한 상실과 두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 나라의 서사 속으로 내 삶의 발걸음을 내디디기로 결단하는 위대한 참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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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수만 리 창공을 건너는 철새의 비행과 같습니다. 캄캄한 밤하늘을 날아가는 철새들을 향해, 화려한 제국의 도시들은 눈부신 인공조명과 네온사인을 쏘아 올리며 이곳에 편히 내려앉아 머물라고 유혹합니다. 많은 새들이 그 가짜 빛에 눈이 멀어 궤도를 이탈하고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순례자인 철새는 눈앞을 현혹하는 그 거대한 인공의 불빛에 운명을 걸지 않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구 전체를 온전히 감싸고 흐르는 고요한 자기장, 곧 우리의 운명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과 섭리에 자기 내면의 나침반을 깊이 주파수 맞춥니다. 우리가 세상의 화려한 소음에 귀를 닫고 하나님의 이야기에 우리 존재의 방향을 맞출 때, 비로소 우리는 상실과 고독이 몰아치는 인생의 밤바다를 무사히 건너 우리를 살게 하시는 참된 영원의 고향, 그 약속의 땅에 평안히 이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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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생명이 약동하는 이 5월, 제국의 풍요에 길들여져 하늘의 언약을 망각하려는 세상의 낡은 관성을 미련 없이 거부하십시오. 그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이야기에 나의 운명을 거는 깊은 묵상의 자리에 고요히 머물며, 숱한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묵묵히 곁에 있는 이들의 손을 맞잡고 다정한 샬롬의 고향을 향해 걸어가는 넉넉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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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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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듣기

https://youtu.be/U6NvyPxlc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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