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6:28-47:12 금빛 틈새로 흐르는 축복

by 평화의길벗 posted May 23,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세기 46:28-47:12 금빛 틈새로 흐르는 축복

.

참된 신앙이란, 힘과 성공만이 지배하는 제국의 수직적 질서 한복판에서 나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변방을 택하며, 십자가 위에서 우리 부끄러움을 완벽하게 덮어 주신 그리스도로 옷 입는 시간인 묵상을 통해, 화려한 권력자에게조차 도리어 평화의 축복을 흘려보내는 거룩한 상처 입은 치유자로 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은총에 온전히 기대는 생명 사건입니다.

*

우리 영혼 밑바닥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오랜 슬픔의 찌꺼기들을 말끔히 씻어내는, 그 뜨겁고도 후련한 정화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언제입니까? 만물이 짙푸른 생명력으로 굽이치는 이 5월의 오늘, 어쩌면 여러분의 내면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인생의 흉년과 켜켜이 쌓인 상처의 무게가 앙금처럼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단한 생존의 무게를 견디며 진리의 빛을 찾아 예배당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 그리고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막막한 일상 속에서 신앙의 이유를 묻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에, 우리의 찢긴 마음을 기어코 싸매어 안으시는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

수레를 타고 달려온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보자마자 목을 어긋맞껴 안고 한참 동안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20여 년 전 형들의 지독한 이기심과 폭력으로 시작된 단절과 고통의 세월이 이 한바탕의 통곡 속에서 마침내 허물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감격적인 재회 직후, 요셉은 가족들에게 바로를 만날 때 대비할 말을 일러줍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하는 자를 혐오하니, 대대로 목축을 업으로 삼아왔다고 정직하게 밝혀 변방인 고센 땅에 머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총리의 후광을 업고 얼마든지 제국의 권력 중심부로 편입될 수 있었던 형제들이 제국이 혐오하는 목자라는 정체성을 조금도 숨기지 않음으로써 기꺼이 변방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차지하여 남을 지배하려는 제국의 논리에 편입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한 거룩한 자발적 유배였습니다.

.

이윽고 늙은 야곱이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바로 앞에 섭니다. 성경은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했다고 두 번이나 명확히 기록합니다. 의탁할 곳 없어 곡식을 구하러 온 초라한 난민 노인이 오히려 축복의 주체로 우뚝 서는 이 경이로운 장면은 세상의 수직적 질서가 완벽하게 전복되는 순간입니다. 바로가 나이를 묻자 야곱은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내어놓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형을 속이고, 삼촌과 다투고, 자식을 잃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숱한 실패와 눈물로 얼룩진 험악한 세월을 조금도 포장하지 않은 채 고백하는 것입니다. 조너선 색스는 "지배자 민족은 승리를 기념하는 건축물을 세우지만, 선택된 민족은 반대로 패배와 결점을 기록한다"고 갈파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입니다. 하나님을 부여잡고 뒹굴며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사람만이, 힘과 권력에 도취된 제국의 군주를 향해 진정한 생명의 축복을 건넬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상처를 통해 타인을 치유하고 축복하는 참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

그렇다면 나의 험악한 세월과 부끄러운 상처를 숨기려 허둥대지 않고 세상을 향해 넉넉한 축복을 흘려보내는 자유인으로 서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거룩한 영적 호흡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참된 묵상입니다. 성경 묵상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고 우리 부끄러움을 완벽하게 덮어 주신 그리스도로 옷 입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세상 앞에서 꿀리지 않기 위해 알량한 성공의 옷, 지식의 옷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위장하려 듭니다. 그러나 묵상이란 내가 초라한 목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나의 험악한 세월과 남루한 죄악의 실상을 십자가 아래 온전히 노출하는 고통스러운 항복입니다. 내 알량한 갑옷을 벗어 던지고 오직 내 허물을 완벽하게 덮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그 크신 은혜와 긍휼로 나를 새롭게 옷 입히는 시간, 그것이 참된 묵상입니다. 그 은총의 옷을 입을 때 우리는 바로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도리어 그를 축복하는 넉넉한 생명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거룩은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고,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며, 세상의 방식을 구별하고, 영적인 삶을 분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산산조각 난 도자기의 틈새를 금으로 이어 붙여 본래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고귀한 예술품으로 재탄생시키는 킨츠기라는 회복의 예술과 같습니다. 세상은 깨어지고 금이 간 도자기를 쓸모없는 쓰레기라며 매정하게 내다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진 것을 들키지 않으려 번듯한 가짜 유약으로 애써 상처를 덧칠하며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장인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그 부서진 조각들을 알뜰히 모아, 당신의 가장 값비싼 긍휼과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영롱한 황금빛 은총으로 그 틈새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메우십니다. 우리가 내 상처를 부끄러워 숨기려는 헛된 수고를 멈추고 주님의 손길에 찢긴 삶을 고요히 내어 맡길 때, 우리의 그 험악했던 상처의 흔적들은 도리어 세상을 가장 따뜻하게 위로하고 축복하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눈부신 금빛 무늬로 우리 인생 위에 찬란하게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

평화의길벗_라종렬

*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mgwdL5ElKlc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