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6:28-47:12 험악한 세월을 뚫고 빚어진 나그네의 축복

by 평화의길벗 posted May 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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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6:28-47:12 험악한 세월을 뚫고 빚어진 나그네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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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유다를 먼저 요셉에게 보내어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마침내 고센에서 요셉을 만나 목을 어긋맞껴 안고 울며 "이제 죽어도 족하도다"라고 고백합니다(46:28-30). 요셉은 형제들에게 바로를 만날 때, 애굽 사람들이 가증히 여기는 직업인 '목자'임을 당당히 밝혀 고센 땅에 머물 수 있도록 정치적 지혜를 줍니다(46:31-34). 요셉의 계획대로 형들 중 다섯이 바로 앞에 서서 자신들이 목자임을 밝히고, 바로는 그들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내어주며 자신의 가축까지 맡깁니다(47:1-6). 이어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바로 앞으로 인도합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자, 바로가 나이를 묻고 야곱은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며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고백한 뒤 다시 바로를 축복하고 나옵니다(47:7-10). 요셉은 바로의 명령대로 애굽의 가장 좋은 땅 라암셋(고센)을 주어 기업을 삼게 하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가족 수대로 양식을 공급하여 봉양합니다(4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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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으로, 고대 애굽인들은 농경 사회의 정착민들로서 짐승의 털과 피를 묻히고 떠도는 유목민(목자)을 종교적, 문화적으로 "가증히(토에바, 혐오)" 여겼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지만, 가족들이 애굽의 주류 사회로 편입되어 세속화(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문화적 혐오'를 역이용합니다. 그들을 변방의 목초지인 고센 땅에 고립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신앙과 혈통을 보존하려는 고도의 정치·사회적 전략이었습니다.

# 신학적·인문학적 배경으로, 야곱과 바로의 만남은 수평적 권력 관계의 완전한 전복을 보여줍니다. 바로는 스스로를 '태양신의 아들'이라 칭하는 살아있는 신이자 제국의 최고 통치자였고, 야곱은 기근을 피해 도망 온 130세의 초라한 난민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7:7의 "논란의 여지 없이 열등한 자가 우월한 자에게 축복을 받느니라"는 말씀처럼, 영적 주도권은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또한 "험악한 세월"이라는 야곱의 회고는, 자신의 탐욕과 자식들의 배신으로 얼룩졌던 수평적 파탄의 역사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대면하고 수용하는 처절한 실존적 고백입니다.

# 송민원 박사의 '수평적 읽기' 관점에서, 본문은 야곱 일가가 단순히 하나님의 기적으로 호의호식하게 되었다고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앞서 보낸 자가 하필 과거 요셉을 팔아넘기자고 주도했던 '유다'라는 점은 찢어졌던 가족의 신뢰가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증명합니다. 또한, 세상(바로) 앞에서 자신들의 약점(목자라는 신분)을 숨기지 않고 정체성을 지켜내는 형제들의 모습과, 상처 입은 가부장 야곱이 세상의 권력 앞에서 결코 기죽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축복하는 모습은, 십자가의 긍휼을 통과한 성도가 세상을 향해 어떤 영적 우위를 점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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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34절 눈물의 상봉 : 찢어진 상처를 이으시는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은 가장 깊이 찢어진 상처를 기어이 치유하시어 온전한 상봉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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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유다를 먼저 앞세워 요셉에게 보냅니다. 요셉은 수레를 갖추고 달려 나와 아버지와 목을 어긋맞껴 안고 한참 동안 웁니다. 야곱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상봉 이후 요셉은 형제들에게 바로 앞에서 "우리는 목자이니이다"라고 당당히 밝히라고 지시합니다. 애굽 사람들이 목자를 토에바(תּוֹעֵבָה), 곧 종교적 혐오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 고백은 그들을 고센 땅이라는 구별된 공간으로 인도하기 위한 요셉의 지혜로운 설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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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놀랍게도 요셉이 아니라 유다입니다. 20년 전, 어린 요셉을 노예 상인에게 팔자고 제안했던 장본인이 바로 유다였습니다(창 37:26-27). 그런데 지금, 아버지 야곱은 그 유다를 가장 먼저 앞세워 요셉에게 보냅니다. 이것은 단순한 심부름이 아닙니다. 유다는 그 사이 자신의 며느리 다말 앞에서 "그녀가 나보다 옳다"(창 38:26)고 수치를 인정하는 사람으로 변했고, 은잔 사건(창 44장)에서는 베냐민 대신 자기 목숨을 내놓는 대속의 자리에 섰습니다. 야곱이 유다를 앞세웠다는 것은, 한때 가족을 파괴했던 자가 완전히 용서받고 가족의 신뢰를 다시 얻었음을 가족 전체가 인정한다는 공동체적 선언이었습니다. 이 상봉의 눈물은 단순한 혈육의 그리움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쌓여 있던 수평적 폭력과 불신의 장벽이 완전히 무너진 샬롬의 눈물입니다.

이어지는 요셉의 전략 또한 심상치 않습니다. 애굽 제국의 2인자로서 가족들을 권력의 단맛으로 보호할 수 있었음에도, 요셉은 오히려 애굽인들이 혐오하는 "목자"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게 합니다. 세상의 주류 문화에 동화(assimilation)되는 것을 막고, 변방의 구별된 땅 고센에서 언약적 정체성을 보존하게 하려는 거룩한 전략이었습니다. 세상의 중심부보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는 고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요셉은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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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땅에 서 있습니까? 세상의 인정을 얻기 위해 신앙인의 정체성을 슬쩍 감추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셉처럼, 나를 구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믿고 기꺼이 세상의 혐오와 조롱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 인생의 깊은 상처 가운데서도 화해와 회복의 역사를 써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찢어진 관계라 할지라도, 십자가 앞에서 정직하게 무너지는 사람은 반드시 다시 연결됩니다. 내 주변에 아직 화해하지 못한 유다가 있다면, 오늘 그를 위해 먼저 기도하는 자리에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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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1-6 제국 앞에 선 목자들 : 정체성의 선언이 땅을 얻다

하나님은 세상 앞에서 신앙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자들에게 예비하신 삶의 터전을 허락하시는 주관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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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형들 중 다섯 명을 바로 앞에 세웁니다. 바로가 생업을 묻자, 형제들은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라고 대답하며 기근을 피해 잠시 거류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바로는 "땅의 좋은 곳"인 고센을 기업으로 허락하고, 능력 있는 자는 자신의 가축까지 맡기겠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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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자의 옥좌 앞에 선 이 유목민들의 장면을 수평적으로 상상해 보십시오. 태양신의 아들로 숭배받는 황제 앞에 남루한 기근 난민이 섰습니다. 이들이 조금이라도 세련되게 보이고 싶었을 유혹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종들은 목자이온데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라고 선언합니다. 단순히 직업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다 그러했노라고, 자신들의 뿌리와 신앙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토에바(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당당히 자신을 드러낸 이 선언은, 하나님 앞에서 훈련된 영혼만이 할 수 있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결과는 역설적이었습니다. 바로는 그들을 경멸하여 내쫓지 않고, 오히려 애굽에서 가장 비옥한 땅 고센을 내어줄 뿐 아니라 황실의 가축 관리까지 맡깁니다.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을 포장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것들이, 약함을 정직하게 드러냈을 때 거저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적 처세술로는 접근할 수 없는 문들을 정직한 고백 하나로 활짝 열어놓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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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 앞에서, 직장 앞에서, 관계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서 있습니까? 어설픈 스펙으로 경쟁하려 하지 말고, "나는 십자가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분명한 정체성의 선언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믿으십시오. 세상은 처음에는 비웃을지 몰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장 중요한 것을 신앙인에게 맡기며 신뢰하게 됩니다. 약함 속에서 강함을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붙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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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7-10 험악한 세월의 고백 : 상처받은 나그네가 황제를 축복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상처로 얼룩진 험악한 세월조차 연단의 도구로 삼으사, 세상을 향해 생명의 복을 빌어주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우리를 빚어내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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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바로 앞에 세웁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합니다. 바로가 나이를 묻자,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다시 바로에게 축복하고 물러납니다. 이 짧은 네 구절에서 본문은 두 번이나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였더라"(7절, 10절)고 강조하여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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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창세기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역설의 현장입니다. 히브리서 7:7은 "논란의 여지 없이 열등한 자가 우월한 자에게 축복을 받느니라"고 선언합니다. 축복은 더 큰 자가 더 작은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지의 행색을 한 130세의 늙은 나그네가,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받는 파라오를 향해 두 번이나 축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진정한 황제는 파라오가 아니라 야곱이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을 가슴에 품은 자가 세상의 모든 권좌보다 높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성경은 이 간결한 장면 하나로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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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 물음에 터져 나온 야곱의 고백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험악한(라아, רָעָה) 세월"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고생이나 불운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이후, 형을 속이고(창 27장), 라반에게 속이고 속임 당하며 20년을 보내고, 자식들의 손에 피 묻은 요셉의 옷을 받아 안고 통곡하며 보낸 수십 년의 역기능적 삶 전체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직면하는 처절한 실존의 고백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과거를 신앙적 영웅담으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앞에서조차 자신의 상처와 허물을 있는 그대로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찢어지고 구겨진 두 손이 이제 세상의 가장 높은 권력자를 향해 평화의 축복을 쏟아붓는 거룩한 제사장의 손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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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가운데 "험악한 세월"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까? 그 부끄럽고 아픈 시간들을 숨기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정직하게 내놓을 때, 그 상처는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거룩한 흔적이 됩니다. 화려한 온실 속에서 자란 사람은 아픈 세상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없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뚫고 은혜로 살아남은 당신이야말로, 절망 속의 이웃을 향해 진정한 생명의 축복을 흘려보낼 수 있는 존귀한 통로입니다. 세상 앞에서 기죽지 말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을 담대히 빌어주는 영적 거인으로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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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11-12 기근 속의 풍요 : 생명을 먹이시는 신실한 공급자

하나님은 극심한 흉년과 같은 시대적 위기 속에서도 예비하신 사람을 통하여 언약 공동체를 세밀히 봉양하시는 신실한 공급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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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바로의 명령대로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영구적 기업(아훗자, אֲחֻזָּה)으로 확정 지어 줍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가족 수대로 양식(떡)을 주어 봉양(킬켈, כִּלְכֵּל, 친밀하게 부양하다)합니다. 천하가 기근으로 타들어 가는 바로 그 시간에, 언약 백성은 풍족한 땅에 정착하여 양식을 공급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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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언약이, 여기서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현실로 착지합니다. 라암셋이라는 이름으로 확정된 이 땅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번성하여 대민족을 이루고 출애굽을 준비하는 영적, 육적 인큐베이터가 됩니다. 이것이 단순한 생존 이야기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먼저 보내시어(창 45:5) 흉년의 한복판에 생명의 창고를 준비해 두셨고, 때가 되자 상처받은 가족 전체를 그 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수직적 섭리가 수평적 돌봄의 떡으로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킬켈’이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단순한 먹이고 입히는 행위를 넘어, 어머니가 갓난아기를 품어 기르듯 친밀하고 세밀하게 돌본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기근이 온 땅을 집어삼키던 그 시절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거칠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수를 헤아려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채우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이름을 알고, 우리 가정의 형편을 헤아리시며,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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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이 기근의 시대에 이웃을 먹이고 살려내는 작은 요셉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나에게 주어진 재물과 재능과 자리는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데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흉년의 때에 연약한 형제의 식구를 따라 양식을 나누라고 하나님이 내게 임시로 맡기신 생명 구원의 자원들입니다. 내 삶의 현장이 죽어가는 자들을 살려내는 거룩한 라암셋이 되도록, 오늘 내 손에 있는 떡을 기꺼이 이웃에게 떼어 주는 십자가의 삶을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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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험악한 인생의 파도 속에서도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어이 제국의 한복판에서 생명의 둥지를 마련하시는 신실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깊은 허물을 가졌던 유다가 가족의 길잡이가 되고, 

요셉의 목을 어긋맞껴 안는 눈물의 상봉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하심을 찬양합니다. 

인간의 죄와 배신도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막을 수 없음을 이 본문 앞에서 다시 배웁니다. 

우리 가정과 공동체 안에도 얽힌 불신과 미움의 매듭들이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풀어지게 하시고, 

우리가 서로를 향해 유다처럼 먼저 걸어가는 화해의 용기를 주시옵소서.

제국의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목자이니이다"라고 당당히 정체성을 선언했던 형제들처럼, 

세상 앞에서 얄팍한 처세술로 신앙을 감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스펙과 화려함으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정직하게 고백할 때 

주님이 예비하신 고센 땅을 기업으로 허락하실 것을 믿사오니,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평생을 속이고 다투며 스스로 험악한 세월을 만들었던 야곱이, 

그 뼈아픈 상처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면서도 

세상의 가장 큰 권력자 바로를 향해 담대히 축복을 선포하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장면 앞에 우리의 마음이 떨립니다. 

우리 인생의 실패와 부끄러운 흉터들이 

더 이상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올무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그 험악했던 시간들을 은혜로 정제하사, 

절망에 빠진 세상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생명의 복을 빌어주는 

영적 거인의 삶으로 우리를 빚어 주시옵소서.

기근의 때에 요셉을 통해 가족들을 가족 수대로 세밀히 봉양하셨던 그 손길로, 

오늘 경제적, 영적 흉년을 지나는 우리 성도들의 가정마다 

하늘의 양식으로 배불리시며 그 생업을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옵소서. 

나아가 우리 교회가 이 시대의 상처받고 굶주린 이웃들을 

넉넉히 품어 살려내는 따뜻한 고센 땅이 되게 하시고, 

험악한 세월을 가로질러 빚어지는 나그네의 축복이 

이 공동체로부터 온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목자 되시어 험악한 세월 속에서도 

풍성한 꼴로 우리를 먹이시는 참된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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