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16-28 애굽에서 온 수레

by 평화의길벗 posted May 2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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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5:16-28 애굽에서 온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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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상실로 얼어붙은 우리의 심장을 녹이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보다 먼저 보내신 은총의 수레입니다.

참된 신앙이란, 오랜 불신과 상실의 고통으로 차갑게 얼어붙은 우리의 내면(야곱의 심장)을 직시하고, '말씀을 내 몸에 새기며 걷는 일(새김과 걷기로서의 묵상)'을 통해, 찢겨진 수평적 관계를 기어코 회복하시어 우리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환대(수레)에 기꺼이 올라타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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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연초록 잎사귀들이 한층 짙은 빛깔을 띠며 초여름의 길목으로 성큼 다가선 5월 셋째주 금요일입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눈부신 계절 속에서도, 기약 없는 기다림과 예기치 않은 삶의 흉년으로 인해 마치 한겨울의 언 땅처럼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채 오늘을 맞이하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뜻대로 풀리지 않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짙은 회의를 느끼며 서성이는 모든 분의 영혼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반가운 소식처럼 주님의 다사로운 은총이 스며들기를 빕니다. 우리가 딛고 사는 세상은 종종 과거의 상처와 죄책감이 두려움이 되어 짓누르는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마주한 구약성경 창세기 45장 후반부의 풍경은, 그 끔찍했던 폭력과 단절의 역사가 어떻게 상상할 수 없는 환대와 수평적 연대로 뒤바뀌는지를 벅찬 감동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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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돌아왔습니다. 가나안 땅 어느 집 문간에 선 그들의 얼굴은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그들이 꺼낸 말은 귀를 의심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다고, 그것도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다고. 노인 야곱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자리에 굳어버렸습니다. 성경은 그가 "어리둥절하더니"라고 기록합니다만, 히브리어 원문의 결을 따라가면 그 표현은 훨씬 날것입니다. 그의 심장이 차갑게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으되 죽은 것처럼, 소식을 들었으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20년이 넘는 상실의 시간이 한 사람의 내면을 그토록 단단하게 얼려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이 짧은 문장 하나가 조용히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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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그 얼어붙은 심장을 우리는 낯설게 바라볼 수 없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기다리던 것이 끝내 오지 않고,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는 것 같은 긴 계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심장의 온도를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불신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대가 무너지는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 아들들의 말을 믿지 못한 것은 완고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슬픔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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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문에서 참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이 회복의 이야기가 야곱의 내면적 결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야곱이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밖에서 온 무언가였습니다.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수레입니다. 말이 아니라 수레였습니다. 아들들이 아무리 입으로 전해도 믿지 못하던 야곱이, 그 수레를 눈으로 보는 순간 살아났습니다. 수레는 요셉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아버지를 영접하기 위해 제국의 힘을 빌려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운송 수단이 아니라 사랑의 증거였고, 설명이 아니라 몸으로 내보인 약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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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은 조용하지만 묵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과연 의지가 약해서입니까,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상실을 혼자 견뎌온 탓입니까. 하나님은 그 질문에 정죄로 답하지 않으십니다. 야곱에게 "왜 믿지 못하느냐"고 나무라는 대신, 수레를 보내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녹이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은총의 증거를 보내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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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닙니다. 요셉이 형들을 돌려보내며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을 기억합니까.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20년 전의 죄가 드러난 판국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형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두려움과 수치심, 그리고 서로를 향한 원망이 그 길 위에서 끓어오를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말했습니다. 다투지 말라고. 이미 용서가 선언된 자리에서 다시 서로를 찌를 필요가 없다고. 이것은 단순한 여행 지침이 아닙니다. 화해가 이루어진 자리에서 이전의 방식으로 살아가지 말라는 초대입니다. 찢겨진 관계가 꿰매어지는 일은 극적인 선언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후에도 날마다 용서를 선택하고, 날마다 다투지 않기로 결단하는 작은 걸음들이 이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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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 궁정마저 이 화해 앞에서 제 권력을 내세우지 않고 환대를 베풀었다는 장면도 쉽게 지나칠 수 없습니다. 억압의 상징인 바로가 형제애의 회복 앞에서는 아낌없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수평적으로 이어지는 화해의 힘은 수직적 권력도 잠시 내려앉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이웃과 다시 연결되는 것, 끊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이 세상 안으로 스며드는 작은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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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얼어붙은 마음이 녹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억지로 믿으려 애쓰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야곱이 스스로 마음을 녹이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의지만으로는 오래된 불신을 해동시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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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학자는 묵상을 두고 "걷기"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이는 "새김"이라고 했습니다. 소가 먹이를 천천히 되새기듯,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자리로 가져와 반복하여 곱씹고 내 안에 스며들게 하는 일. 그리고 그 말씀을 딛고 한 걸음씩 살아내는 일. 이것이 묵상의 본질입니다. 묵상은 고요한 서재에서만 이루어지는 거룩한 의식이 아닙니다. 불신이 가득한 이 하루를, 그럼에도 말씀을 붙들고 걷는 것이 묵상입니다. 내 영혼의 동토 위에 봄볕이 내려앉듯, 말씀이 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묵상입니다. 우리가 억지로 봄을 만들어낼 수 없듯, 은총도 우리가 제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빛 앞에 나를 내어 맡기는 것, 그것이 묵상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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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오랜 절망으로 굳어 있던 노인의 입에서 나온 이 한 마디가 얼마나 큰 기적인지요.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의 결심이 아니라, 밖에서 온 수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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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야곱처럼,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는 자리에 계십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심장이 차갑게 멈추어 선 것 같은 느낌으로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본문이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 얼어붙은 내면을 정죄하지 않으신다고. 오히려 당신이 미처 믿기도 전에, 이미 수레를 보내고 계신다고… 말씀을 천천히 새기며 걸어가십시오. 오늘 하루 그 걸음이 묵상이 되고, 그 묵상 안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수레를 알아보게 되기를, 그리고 그 수레에 기꺼이 올라타 이웃과 함께 샬롬을 나누는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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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기나긴 겨울을 지나온 '언 땅(Frozen Ground)'에 내려앉는 다사로운 '봄볕(Spring Sunlight)'과 같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겪는 수많은 배신과 상실의 아픔(야곱이 겪은 불신과 절망)은 우리 영혼의 흙을 생명 하나 피워낼 수 없는 차가운 동토로 꽁꽁 얼려버립니다. 세상의 논리는 그 단단한 얼음을 깨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며 날카로운 곡괭이(내 힘과 강박적인 의지)를 쥐여주지만, 그것은 겉을 부술 뿐 결코 생명을 잉태할 깊은 온기를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정원사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그 얼어붙은 일상 위로 당신의 무한한 은총의 빛(요셉이 보낸 수레)을 소리 없이, 그러나 맹렬하게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가 억지로 내 마음을 녹이려 헛되이 발버둥 치는 대신 주님의 빛 앞에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말씀을 새기며 걷는 영적 묵상), 비로소 절망의 동토는 서서히 해동되어 메마른 세상을 먹여 살리고 상처 입은 이웃을 포근히 안아주는 가장 비옥하고 따뜻한 생명의 대지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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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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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듣기

https://youtu.be/rUuzR7_Sg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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