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3:1-15 잃으면 잃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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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나만의 안전을 위해 움켜쥐었던 마지막 애착을 기근의 한계 앞에서 내려놓고, 형제를 위해 자신을 담보로 내어주는 수평적 책임의 자리로 나아가며, 말씀이 삶의 내부가 되어 사랑의 방식이 되게 하는 묵상의 항복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에 온전히 안기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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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곳간이 텅 비었습니다. 애굽에서 어렵사리 가져온 곡식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기근은 끝날 기미가 없고, 아들들의 눈빛은 점점 더 간절해집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다시 가서 양식을 조금 사 오라." 그런데 유다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아버지의 말을 막아섭니다. 베냐민 없이는 애굽 총리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막내를 데려가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여기서 굶어 죽을 것이라고. 그 말에 야곱은 신경질을 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이 늙은 아비의 탄식 안에는,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한 진실 하나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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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남긴 마지막 핏줄 베냐민에게 온 존재를 걸어 두고 있었습니다. 그 집착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는 나머지 아들들과 그 가족들이 굶주려가는 현실에는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닙니다. 편애와 자기 연민은, 그것이 아무리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곁에 있는 사람들을 서서히 질식시킵니다. 내가 지키려는 것이 클수록, 내가 외면하는 것도 그만큼 커집니다. 야곱의 곳간은 텅 비었지만, 정작 더 위태로운 것은 그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가족들의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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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막힌 자리에서 유다가 나섭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이 한 문장이 에세이 전체에서 가장 무겁습니다. 유다는 20여 년 전, 동생 요셉을 은 이십 세겔에 팔아넘기자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타인을 돈으로 환산했던 그가, 이제는 자신을 담보로 내어놓습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대했던 자리에서, 자신이 수단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자리로 건너온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되돌릴 수 없는 종류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던지신 가장 오래된 질문,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에 유다는 드디어 자기 몸을 던져 응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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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헌신 앞에서 야곱의 완강함이 마침내 금이 갑니다. 그는 예물을 챙기고 갑절의 돈을 준비하고, 베냐민을 내어줍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 말을 믿음의 고백으로 읽기 전에, 잠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이것은 장엄한 결단이 아닙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사람이 끝에 몰려 내뱉는 체념 어린 탄식입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채로 마지못해 손을 여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남루한 항복이, 하나님이 기다리셨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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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진석 선생이 말한 '포월(匍越)'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현실을 훌쩍 벗어나 비상하는 초월이 아니라, 진흙탕 바닥을 박박 기다가 마침내 그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야곱의 항복이 그랬습니다. 기근의 바닥, 슬픔의 바닥, 집착의 바닥을 오래 기어온 끝에 손을 여는 것, 이것이 바로 포월입니다. 손에 쥔 것을 놓아야만 모두가 살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받아들이는 것, 그 고통스러운 수용이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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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나의 굳은 애착을 내려놓고 형제를 위해 나를 내어주는 자리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끄는 영적 호흡이 바로 묵상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묵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읽는 말이 우리 삶의 내부가 되도록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리듬과 이미지가 기도의 실천, 순종의 행위, 사랑의 방식이 되도록 하는 독서." 묵상은 말씀에서 유용한 정보를 캐내는 행위가 아닙니다. 말씀을 내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멈추고, 말씀이 나의 베냐민, 곧 내가 놓지 못하는 마지막 애착을 내려놓게 하시도록 그분의 처분에 나를 맡기는 일입니다. 내 손이 비어야 새로운 것을 받을 수 있듯, 내 마음이 고요히 열려야 말씀이 삶의 내부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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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마지못해 펼친 그 텅 빈 손 위에, 하나님은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을 얹어 주셨습니다. 베냐민은 살았고, 죽은 줄만 알았던 요셉과의 재회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온 가족의 구원이 애굽에 이미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야곱의 항복이 완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불완전하고 비루한 빈손조차 덮어 안으시어, 기어코 구원의 잔치로 빚어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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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이것만은 절대 뺏길 수 없다"며 무언가를 꽉 쥐고 계십니까. 손에 땀이 나도록 붙들고 있는 그것이 오히려 당신 곁의 사람들을 숨막히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손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어보십시오. 완벽하게 놓지 않아도 됩니다. 야곱처럼, 어쩔 수 없어서 마지못해 여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그 초라한 빈손 위에 기어코 찬란한 생명을 얹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이 당신 삶의 내부로 스며들어 사랑의 방식이 되기를, 그리고 그 묵상의 고요한 자리에서 비로소 텅 빈 손의 축복을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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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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