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18-38 두려움으로 받아든 은혜의 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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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의 언어로만 세상을 읽어온 우리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 앞에서 도리어 공포를 느끼는 그 왜곡된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 참된 신앙의 문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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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었습니다. 애굽의 차가운 감옥 안에서 보낸 사흘. 정탐꾼으로 몰린 형들은 그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멈추었을 것입니다. 도망칠 곳도, 둘러댈 말도 없는 그 절벽에서, 20년 전 구덩이 속에서 살려달라고 부르짖던 동생의 목소리가 마침내 귓가에 흘러들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이 고백은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외면해온 이웃의 얼굴이 마침내 눈앞에 떠오르는, 수평적 각성의 첫 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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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회개를 하나님과 나 사이의 수직적인 사건으로만 이해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이 장면은 조용히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형들의 통곡은 절대자를 향한 종교적 의례가 아니라, 내가 짓밟은 이웃의 아픔에 주파수를 맞추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타인의 울음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되는 것, 그것이 관계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알아들으면서도 알아듣지 못하는 척했던 요셉은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해 웁니다. 찢긴 관계를 다시 꿰매려면 이런 뼈를 깎는 슬픔의 진통이 반드시 필요한 법입니다. 용서는 눈물 없이 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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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뜻밖의 방향으로 꺾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형제 중 하나가 자루를 열었을 때, 그 안에 곡식 값으로 치렀던 돈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기뻐해야 할 순간입니다. 돈도 살아 있고 곡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떨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평생 거래와 계산의 언어로 살아온 사람에게,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덫입니다. 세상의 논리는 언제나 이렇게 속삭입니다. 공짜는 없다. 무언가를 받았다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 조건 없는 호의 뒤에는 반드시 청구서가 따라온다. 그들은 요셉의 사랑을 사랑으로 읽지 못했습니다. 값없는 은혜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의 언어에 오래 길들여진 인간의 슬픈 민낯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까닭도,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 공로와 자격 없이 거저 주어지는 그 사랑의 문법이 여전히 낯설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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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야곱은 더욱 비극적입니다. 아들들의 보고를 들은 그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애굽 감옥에 볼모로 잡혀 있는 시므온의 고통은 그의 안중에 없습니다. 오직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들의 빈자리만 보입니다. 모든 것을 나의 유불리로만 환산하는 이 자기 연민은 야곱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하나님도 나를 해롭게 하신다"며 자기 슬픔의 방 안에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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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목사님은 묵상을 가리켜 '참여'라고 정의합니다. 묵상이란 내 평안을 얻기 위해 말씀을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을 화해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이야기 속으로 내 삶을 가져다 놓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정의 앞에서 야곱의 탄식이 다시 들립니다. 자기 연민의 좁은 방에 갇혀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써 내려가고 계신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 묵상은 그 방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내 계산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두려운 현실 앞에서도, 이것이 나를 해치려는 덫이 아니라 나를 살려내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안배임을 신뢰하며 손을 놓는 일입니다. 돈이 든 자루를 보고 떨었던 형들처럼, 우리도 종종 은혜를 은혜로 읽지 못합니다. 묵상은 바로 그 왜곡된 눈을 천천히 고쳐가는 연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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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야곱과 형들의 이기심과 두려움과 자기 연민을 다 아시면서도 그들을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무서운 기근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통과하게 하심으로써, 산산조각 났던 형제들을 한 식탁에 불러 모으실 화해의 잔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상처와 허물은 버려야 할 폐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뾰족한 조각들조차 당신의 손 안에 담아, 빛을 향해 비추어 올릴 때 가장 눈부신 무늬로 피워 내시는 분입니다. 은혜를 두려움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세상의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값없이 내미시는 그 손을 오늘 조용히 붙잡으시기를 권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완벽한 자격을 갖추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다함 없이 부어주시는 그 환대에 잇대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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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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