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01-17 암실, 혹은 어둠이 인화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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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허기에 떠밀려 마주하게 된 부서진 관계 앞에서,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직면이라는 암실을 통해 우리의 가장 부끄러운 진실을 현상하시고 기어코 화해의 이미지로 빚어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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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리는 장면을 한번 천천히 들여다봅니다. 스물두 해 전 그들의 손은 동생의 채색옷을 벗겼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상인들의 손에 넘겼습니다. 그 손이 이제 애굽 총리의 발 앞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서늘한 비대칭 속에 이 본문이 품은 모든 긴장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알아보는 자와 알아보지 못하는 자. 기억하는 자와 잊으려 했던 자. 용서를 품은 자와 여전히 변명 안에 숨어 있는 자. 그 간극이 얼마나 깊은지, 이 한 장면이 조용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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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베냐민만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스물두 해가 지났건만, 야곱은 여전히 그 밤의 공포 속에 살고 있습니다. 형들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천막 안에는 기근보다 더 오래된 기근이 있었습니다. 관계의 기근, 신뢰의 기근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쌓여온 거짓과 편애와 침묵이 빚어낸 이 수평적 단절은, 밖의 흉년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훨씬 깊었습니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때로 가장 오래된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지만, 생존의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비로소 그 상처가 다시 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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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형들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집니다.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형들은 즉각 항변합니다.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니이다." 확실한 자들. 이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동생을 팔아넘기고, 아버지 앞에서 피 묻은 옷을 내밀었던 자들이 스스로를 확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자기기만은 이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신념처럼 굳어집니다. 잘못을 기억하지 않으면, 마침내 잘못이 없었던 것처럼 됩니다. 요셉이 그들을 몰아붙인 것은 복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굳어버린 자아를 깨뜨려 진실의 자리로 끌어내려는 고통스러운 초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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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요셉은 그들을 감옥에 가둡니다. 사흘 동안입니다. 캄캄하고 좁은 그곳에서 형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처음에는 억울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억울함이 소진되면, 더 오래된 기억이 떠오릅니다. 요셉이 웅덩이 속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소리. 그들이 외면했던 그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감옥은 형벌이기 이전에, 침묵을 강제당하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분주함으로 덮어두었던 것들이,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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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영 목사님은 헨리 나우웬의 말을 빌려 이렇게 씁니다. "우는 것을 배우는 것과 영혼의 어둔 밤을 지나는 것을 배우는 것과 새벽을 기다리는 것을 배우는 것, 아마도 이것이 인간적이 된다는 것의 의미일 것이다." 참된 묵상은 해답을 빨리 얻어내는 기술이 아닙니다. 묵상은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울음을 다시 배우는 일입니다. 형들이 감옥에서 보낸 사흘은, 어쩌면 그들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본 시간이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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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의 여정은 어떤 면에서 암실의 인화 과정을 닮았습니다. 밝은 곳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꽤 번듯하게 포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어둠 속으로, 침묵의 감옥 속으로 밀어 넣으십니다. 그 어둠 안에서 우리가 도망치려는 몸부림을 멈추고, 말씀 앞에 고요히 머무를 때, 지워진 줄 알았던 진실과 함께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은혜가 천천히 떠오릅니다. 그것이 인화입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전통이 가르쳐온 것도 같은 일입니다. 서둘러 읽고 서둘러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오래 머물며 말씀이 나를 읽도록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멈추게 됩니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임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이 바로 묵상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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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 비루한 가족사의 밑바닥을 모른 척하지 않으셨습니다. 기근을 통해 형들을 애굽으로 불러내시고, 요셉 앞에 엎드리게 하셨습니다. 상처 입혔던 자와 상처 입은 자가 같은 공간에 서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평안은 우리의 깨끗한 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마저 들고 화해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자비 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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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래된 관계의 매듭 앞에서 지쳐 계신다면, 혹은 스스로를 확실한 사람이라 믿어왔지만 어둠 속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계신다면, 그 자리가 어쩌면 인화의 순간일지 모릅니다. 성급히 문을 열고 도망치지 마십시오. 어둠 속에 조금만 더 머무십시오. 그곳에서 잃어버렸던 울음을 되찾고, 부서진 관계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그 작은 용기를 하나님은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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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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