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25-36 흉년의 바람이 오기 전, 매듭을 짓는 시간

by 평화의길벗 posted May 1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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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25-36 흉년의 바람이 오기 전, 매듭을 짓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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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제국이 잉태한 파국 앞에서, 참된 신앙은 다가올 이웃의 굶주림을 미리 슬퍼하고 일상 속에 은총의 양식을 갈무리하는 예언자적 묵상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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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끌려 나온 한 사람이 제국의 왕 앞에 섰습니다. 방금 전까지 죄수였던 사람이, 이제 바로의 꿈을 풀어내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 요셉은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일곱 마리 살진 암소와 일곱 마리 파리한 암소, 일곱 이삭의 풍성함과 일곱 이삭의 바스러짐. 그 꿈의 무게를 요셉은 조용하고 담담하게 읽어냈습니다. 풍년이 오고, 흉년이 온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지금 당장 곡식을 거두어 쌓아두라고. 이 땅이 멸망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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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요셉의 말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풍요가 영원할 것처럼 굴러가는 제국의 질서를 향한 조용하고도 단호한 문제 제기였습니다. 피라미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 거대한 돌덩어리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등골을 휘어 쌓아 올린 것입니다. 애굽의 풍요는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의 밑바닥에는 지워진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착취의 구조 위에 세워진 번영은 그 안에 이미 흉년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타인의 생명을 짜내어 만든 풍요는 결국 모든 것을 삼키는 공허함으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제국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혹은 모른 체하면서, 오늘도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라고 속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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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 속삭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남들이 창고를 채울 때 나만 비워두는 것이 두렵고, 풍년의 계절에 멈추는 것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요셉의 제안이 겨냥한 것은 바로 그 두려움이었습니다. 곡식을 갈무리하라는 요셉의 말에는 이런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이 풍요가 끝나는 날, 당신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창고만이 아니라, 저 사람의 내일을 위해 오늘 무엇을 남겨두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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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말한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땅이 멸망하지 않도록. 권력을 강화하거나 왕의 금고를 불리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굶어 죽을 사람들, 이름도 없이 사라질 생명들을 살려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착취의 경제학을 뒤집는 은총의 경제학입니다. 소수에게 몰리는 구조를, 고통받는 이들에게 나누어지는 구조로 바꾸는 것. 그 전환의 중심에 요셉이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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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참된 신앙을 현실 도피가 아닌 세상 한복판에서의 헌신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본질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요셉의 삶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감옥의 바닥을 알았던 사람, 버려지고 잊힌 시간을 통과한 사람이, 제국의 한복판에서도 세상의 탐욕에 동화되지 않고 가장 낮은 자리의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지혜를 썼습니다. 혹시 지금 나의 신앙이 내 안의 안녕만을 구하는 데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조용한 묵상이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한 도피처로만 쓰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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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전통에서 묵상은 말씀을 천천히 씹는 것입니다. 헤시카즘의 전통에서 묵상은 고요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함석헌의 씨알 사상에서 묵상은 고통받는 민중의 자리에서 역사를 읽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전통이 하나로 수렴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묵상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보려는 자리에 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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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묵상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풍년의 화려한 들판을 보면서 동시에 그 너머의 흉년을 보는 눈. 제국의 번영을 보면서 그 밑에 깔린 생명들의 고통을 보는 눈. 그 눈이 있었기에 요셉은 지금 당장 창고를 짓자는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적 상상력이란 미래를 신기하게 내다보는 초능력이 아닙니다. 지금 이 풍요의 시간에, 아직 오지 않은 이웃의 굶주림을 미리 슬퍼하고 대비하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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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를 생각합니다. 대나무가 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은 쉬지 않고 위로만 자라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장의 가장 화려한 시기에 잠시 멈추어, 속을 비우고 단단한 매듭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매듭이 있어야 비바람에 부러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내 욕망의 질주를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잠시 서는 시간. 내 창고가 아닌 이웃의 내일을 생각하며 오늘의 것을 나누는 시간. 그 시간이 쌓여 매듭이 되고, 그 매듭이 흉년의 바람을 견디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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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끌려 나온 요셉처럼, 우리도 때로 잊히고 버려진 시간을 통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캄캄한 바닥까지 내려오십니다. 파국조차 구원의 기회로 빚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신실한 자비에 오늘 내 삶을 조용히 잇대어 보십시오. 풍년의 계절에 매듭을 짓는 사람만이, 흉년의 날에 이웃에게 생명의 떡을 내어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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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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