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6:9-43 변방의 이름들 앞에서

by 평화의길벗 posted May 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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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6:9-43 변방의 이름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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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묵상이란 나만이 구원의 중심이라는 배타성의 껍질을 안에서 쪼는 일이며, 그 껍질 밖에서 에돔의 이름까지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우리는 비로소 이웃을 향해 열리는 생명의 문턱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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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아이들이 웃는다. 그 웃음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증언하는 소리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소유해야만, 중심에 서야만, 선택받아야만 비로소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고 배워왔다. 그 믿음은 신앙 안에서도 여전히 살아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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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6장을 펼치면 낯선 이름들의 행렬이 시작된다. 엘리바스, 르우엘, 고라, 아말렉, 딤나... 에서, 곧 에돔의 족장들이다.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자신들의 거룩한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왜 언약 밖의 사람들, 변방으로 물러난 형 에서의 자손들을 이토록 세밀하게 남겼을까. 도무지 우리 구원과 무관해 보이는 이방의 족보가 하나님의 말씀 한복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당혹스럽고 다음에는 불편하며, 그러고 나서 비로소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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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랫동안 성경을 수직적으로 읽어왔다. 위에서 아래로, 선택된 자와 버림받은 자 사이의 선명한 경계로. 그 시선 안에서 야곱은 영광이고 에서는 실패다. 그러나 성경 기자는 담담하게 적는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 이스라엘이 채 왕국을 세우기도 전에, 에돔은 이미 왕들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패자의 책에서라면 결코 허락되지 않았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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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는 교회를 가리켜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라 불렀다. 그에게 신앙이란 자신의 구원을 독점하는 고요한 내면의 성채가 아니라, 타자의 고통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세상 한복판의 현존이었다. 옥중에서 그는 물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 질문은 에서의 족보 앞에서 다른 방식으로 다시 들려온다. 언약 밖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총이 스며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타자를 우리 이야기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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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엘륄은 기술 문명이 인간을 효율의 논리로 환원시킨다고 경고했다.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세계를 분류하고, 쓸모없는 것은 지워버리는 사회. 그 논리는 신앙 공동체 안에도 침투한다. 열정이 있어야, 능력이 있어야, 눈에 띄어야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은밀한 기준이 생겨난다. 에돔의 족보는 그 기준에 항의한다. 하나님은 이 세계의 효율 논리 밖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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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은 그 논리와 싸우는 방식이다. 박대영 목사는 묵상을 가리켜 영적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사건이라 했다. 알 속의 병아리가 안에서 쪼고, 어미가 밖에서 응답하는 그 동시성. 묵상은 내 배타성의 껍질을 안에서 쪼아 깨뜨리려는 갈망과, 에돔의 이름까지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광활한 은총이 마주치는 사건이다. 그 사건 안에서 우리는 성경을 사용하기를 멈추고 성경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꿰뚫어 본다.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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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피조물 속에 하나님의 지문이 묻어 있다는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그어놓은 경계선 위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이 거대한 모자이크라면, 화려한 조각만이 아니라 빛바래고 투박한 조각들이 서로 비스듬히 맞물릴 때 비로소 완성되는 그림이다. 사람은 서로 비스듬히 기댄 채 한 세월을 사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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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곁의 변방을 떠올려보자. 신앙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게 서 있는 이웃, 오래 실패하여 이름을 잃어버린 듯 살아가는 사람, 내가 야곱일 때 에서처럼 밀려난 누군가. 하나님은 그 이름들을 기억하신다. 족보에 새기신다. 우리도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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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날, 껍질을 안에서 쪼는 일을 시작하자. 말씀 앞에 고요히 앉아, 나의 배타성이 얼마나 단단한가를 직면하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밖에서 응답하실 때, 우리는 변방의 이름들을 향해 걸어갈 용기를 얻는다. 그것이 묵상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이다.그것이 묵상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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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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