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6:09-43 에서의 족보 - 세상에 뿌리내린 자와 하늘을 향해 걷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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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 산에 정착한 에서의 후손들이 에돔이라는 이름 아래 족장들을 배출하고, 원주민 호리 족속과 통혼하여 정치적 기반을 다지며, 이스라엘에 왕이 서기 훨씬 이전에 이미 강력한 왕정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이 거대한 족보의 행렬은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는 건조한 한 문장으로 종결되며, 영원한 언약을 내려놓고 세상의 영토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한 인간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수면 아래에는 언약 밖의 사람들이 이루어낸 눈부신 수평적 번성과, 느리고 고단한 나그넷길을 걸어가는 야곱 가문의 수직적 언약 사이의 날카로운 대조가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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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 사회에서 족보는 단순한 혈통의 기록이 아니라, 영토의 소유권과 정치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권력의 증명서'였습니다. 에서의 가문이 세일 산의 원주민(호리 족속)과 통혼한 것은 유목민이었던 그들이 원주민의 기득권을 흡수하여 빠르고 안정적으로 국가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사회적 융합(Assimilation)이었습니다.
# 신학적·문학적 배경 : 창세기에는 10개의 족보(톨레도트)가 나오는데, 36장의 에서의 족보는 야곱의 족보(37장 이후)로 넘어가기 직전에 삽입된 거대한 분기점입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가나안에서 땅 한 평 제대로 갖지 못한 나그네로 떠돌고 있을 때, 에돔은 이미 막강한 군사력과 정치력을 갖춘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언약을 떠난 자들이 훨씬 더 강성하고 화려해 보입니다.
#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 관점 : 본문은 언약 밖의 인간들이 수평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의 힘으로 안전과 번영을 쟁취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에서는 무력과 통혼, 정치적 타협을 통해 재빠르게 세일 산의 주인이 되고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세속적 성공의 명단은, 비록 지금은 초라하고 느릴지라도 하나님의 약속만을 의지하여 걸어가야 하는 야곱 가문의 '수직적 언약의 길'과 강렬한 대조를 이룹니다. 한편, 하나님은 에서를 단순히 내버리지 않으시고 그에게도 거대한 민족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창조주로서의 풍성한 자비(일반 은총)를 보여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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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9절 세일 산에 뿌리내린 에서의 족장들 : 빠른 번성, 그 너머의 은총
하나님은 언약 밖의 인생들에게도 번성의 은혜를 거두지 않으시는 광대하신 창조주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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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이름을 올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에돔 땅의 족장, 히브리어로 '알루프(אַלּוּף)', 곧 군장이요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아다와 바스맛과 오홀리바마에게서 태어난 엘리바스와 르우엘의 후손들이 세일 산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권력의 자리를 채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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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읽기의 빛 아래서 이 이름들을 다시 바라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 무렵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가정 안에서 암투와 배신과 도덕적 결함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르우벤은 서모와 동침했고,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에서 피를 흘렸으며, 형제들은 요셉을 팔아넘기기 직전이었습니다. 지리멸렬하고 추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후손들은 이미 에돔 땅 전역에 확고한 군장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언약을 떠난 자가 더 빠르게, 더 눈부시게 세상의 자리를 채워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들의 행렬은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주었던 말을 기억합니까.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창 27:40). 하나님은 그 말조차 헛되이 흘러가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구속사의 핵심 줄기에서 밀려난 에서에게도 하나님은 번성의 복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빚으신 모든 피조물을 함부로 폐기하지 않으십니다. 교회의 울타리 밖에 있는 이들에게도, 언약의 공동체 바깥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창조주의 넓고 깊은 일반 은총은 비처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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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주변의 '에돔의 족장들'을 바라보십시오. 신앙 없이도 일찌감치 임원이 되고 명함에 화려한 직함을 새긴 이들을, 정직함 없이도 넉넉한 삶을 누리는 이들을. 그들을 시기하거나 분노하는 마음이 일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이 땅 모든 피조물에게 내리시는 일반 은총의 결과입니다. 그들의 빠른 성공이 내 믿음의 실패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묻고 싶습니다. 세상의 족장이 되지 못한 그 자리에서, 당신은 더 크고 깊은 것, 곧 십자가의 특별한 은총 안에 머물러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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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0절 호리 족속과의 통혼 : 정체성을 녹이는 융합의 유혹
하나님은 생존의 이름으로 거룩함을 팔아넘기는 영적 타협을 감찰하시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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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에서의 혈통이 아닌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세일 땅의 원주민이었던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들, 로단, 소발, 시브온, 아나 등의 이름이 줄을 잇습니다. 낯선 이름들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이름들은 이미 에서의 족보 안에 깊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오홀리바마는 아나의 딸이었고, 딤나는 엘리바스의 첩이 되었습니다. 에서의 족보와 호리 족속의 족보는 이미 피와 살로 뒤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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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혈혈단신으로 세일 산을 정복한 무용의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우 영리했습니다. 원주민 유력자들의 딸들과 통혼함으로써 그들의 기득권과 토지와 인맥을 고스란히 흡수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융합, 성공을 위한 혼합. 그것이 에돔 제국의 밑바닥에 깔린 실체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에서 하몰의 통혼 제안을 거절했던 것과 정반대의 길을, 에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걸어갔습니다. 신앙의 순결함보다 현실의 이익을 선택할 때, 우리는 언제나 에서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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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 통혼의 유혹은 다른 언어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이 정도 타협은 괜찮아." "성공한 뒤에 하나님께 돌려드리면 되지." "세상 방식 좀 쓴다고 신앙이 흔들리겠어." 주일 성수 대신 더 많은 영업의 기회를, 정직함 대신 세상의 처세술을, 구별된 삶 대신 더 쉬운 동화를 택하는 순간마다, 우리의 족보 안에 호리 족속의 이름이 하나씩 새겨집니다. 그러나 정체성을 팔아 얻은 번성은 하나님 나라의 족보에서 우리의 이름을 지워버립니다. 나는 지금 무엇과 통혼하고 있습니까. 내 믿음의 혈통을 희석시키고 있는 이 시대의 호리 족속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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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39절 이스라엘보다 먼저 선 에돔의 왕들 : 더딤의 신학
하나님은 세상 제국의 빠른 왕국이 아닌, 고난 속에서 빚어지는 당신의 나라를 세워 가시는 신실한 통치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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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선언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이 이러하니라"(31절). 이 구절 앞에 서면 마음 한편이 쓸쓸해집니다. 벨라, 요밥, 후삼, 하닷, 삼라, 사울, 바알하난, 하달. 여덟 왕의 이름이 줄을 이읍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성읍에서 왕위를 차지한 자들로, 하나의 왕조가 아니라 힘과 쿠데타로 교체되는 권력의 순환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였을 때, 광야를 떠돌았을 때, 사사 시대의 혼돈 속에 있었을 때, 에돔은 이미 왕정 국가를 운영하는 문명의 선진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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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에게 왕을 서두르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무관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더딤이었습니다. 에돔의 여덟 왕이 힘과 폭력과 권력 투쟁으로 왕국을 세웠다면,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실 왕국은 그런 방식으로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만이 진정한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힘이 아닌 거룩함으로 세워지는 나라를 원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광야의 기다림과 눈물과 실패와 회개의 모래 위에 천천히 쌓여야 했습니다. 빠른 성공보다 깊은 성품을, 화려한 왕관보다 부서진 마음을 먼저 빚으셔야 했기에,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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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도 이 더딤의 시간이 있습니까.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믿음으로 살려 해도 세상은 나를 비켜 가는 것 같은, 에돔의 왕들은 벌써 저만큼 앞서 가는데 나는 아직 광야인 것 같은 그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이야말로 하나님이 내 존재의 밑바닥부터 당신의 손으로 빚어 가시는 가장 은혜로운 계절임을 믿으십시오. 세상의 왕국은 빠르게 세워지지만 권력의 이동에 따라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천천히 빚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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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43절 세상에 고착된 에서의 마지막 : 거룩한 나그네의 길
하나님은 이 땅에 영원한 장막을 치려는 유혹을 끊어내고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걷는 거룩한 나그네로 우리를 부르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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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역과 거처를 따른 에돔 족장들은 이러하였더라.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43절). 족보는 이 문장으로 닫힙니다. 에서의 이름이 세일 산의 구역과 거처 위에 영원히 새겨집니다. 그는 마침내 이 땅에 완전히 고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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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가나안을 걸었지만 그 땅에 뿌리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 땅의 나그네와 거류민이라 불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으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증언합니다(히 11:16). 그들의 장막은 언제든 거두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땅에 이름을 새기는 데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달랐습니다. 그는 세일 산이라는 영토를 얻은 것에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구역과 거처에 자신의 이름을 고정시켰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던 그날처럼, 그는 영원한 것을 보이는 것과 바꾸는 삶을 끝까지 살았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말합니다. 에돔은 사라졌습니다. 세일 산에 구역과 거처를 확정 지었던 그 화려한 이름들은 지금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장막을 치고 거두기를 반복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던 나그네 야곱의 후손들은 오늘도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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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장 깊은 소망은 어디에 닿아 있습니까. 이 땅의 아파트 평수와 통장 잔고와 직함에 당신의 영원한 이름을 새기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에 고착하는 것은 안락합니다. 그러나 그 안락함은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우리는 세일 산을 거절하고 하늘의 도성을 향해 걷는 자들로 부름받았습니다. 이 땅에서는 구역과 거처가 초라할지라도,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아는 거룩한 나그네로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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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하늘을 본향으로 삼고 이 땅을 나그네처럼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는 에서의 족보 앞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화려하게 이름을 새긴 족장들의 행렬 앞에서,
이미 왕국을 세운 에돔의 위용 앞에서,
세일 산의 구역과 거처에 영원히 고착된 에서의 마지막 앞에서,
우리 자신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에돔의 족장들을 부러워했는지를 고백합니다.
세상의 빠른 성공 앞에서 하나님의 더딤을 의심했고,
생존과 안락함을 위해 거룩함을 세상의 가치관과 통혼시켰으며,
이 땅의 구역과 거처에 영원한 이름을 새기려는 욕망을
신앙의 언어로 포장했습니다.
그 모든 세속적 탐심과 영적 타협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에돔의 왕들이 이미 왕좌에 앉아 있을 때에도
당신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광야의 더딤 속에서도, 노예의 굴욕 속에서도,
당신은 당신의 방식으로 당신의 나라를 빚어 가셨습니다.
그 신실하심이 오늘 우리의 삶에도 동일하게 흐르고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응답이 보이지 않는 계절에도,
세상의 에돔들이 앞서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날에도,
우리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옵소서.
이 땅의 세일 산이 아니라 하나님이 경영하실
하늘의 도성을 본향으로 삼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며,
거룩한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이 땅을 걸어가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 이름을 새기는 것보다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더 깊이 소망하는 자들로 세워 주옵소서.
세상의 왕국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영원히 서 있을 그 나라의 왕이시며,
우리의 참된 본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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