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9:1-20 우물가에서 터진 눈물, 그 눈물이 열어낸 사랑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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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내 이익만을 좇다 모든 관계를 잃어버린 도망자의 자리에서 멈춰 서서, 굳게 닫힌 마음의 돌을 굴려 내고 타인을 위해 기꺼이 수고의 땀을 흘리는 사랑으로 나아감으로써, 우리를 새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거룩한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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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신곡』의 첫 행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생길의 절반을 지나 어두운 숲속에 있음을 알았으나 어긋난 길에 서 있었다." 저는 하란의 들녘에 도착한 야곱을 생각할 때마다 이 문장이 떠오릅니다. 야곱은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그것이 출발이 아니라 끝처럼 느껴지는 그 아찔한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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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망자였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것을 빼앗고, 에서의 분노를 피해 달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이기심으로 모든 관계를 끊어낸 사람이 낯선 땅에 홀로 서 있는 것, 그것이 야곱의 실상이었습니다. 우물가에 이르렀을 때 그 우물 아귀를 막고 있던 큰 돌(창 29:2)이 눈에 들어옵니다.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한 돌이었겠지만, 저는 그 돌이 야곱 자신의 내면을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차갑고, 무겁고, 아무것도 내주지 않으려는 굳게 닫힌 마음. 이기심으로 살아온 사람의 영혼은 그 돌처럼 단단하게 닫혀 있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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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그 우물가에 라헬이 양 떼를 몰고 다가옵니다. 그 순간 야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성경은 짧게 그러나 강렬하게 전합니다. "야곱이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 내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었더라."(창 2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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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왜 울었을까요. 저는 오래 이 질문 앞에 머물렀습니다. 혈육을 만났다는 안도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도망자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 아버지의 몸을 더듬던 손, 형의 울음소리, 어머니를 영영 떠나왔다는 예감,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그 울음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눈물은 감격의 눈물이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비로소 깨닫는 사람의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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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눈물이 야곱을 변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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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허기를 이용하고, 아버지의 눈먼 틈을 타 축복을 훔쳐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칠 년을 일하겠다고 자청하고,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창 29:20)고 했을 때, 이것은 다른 야곱입니다. 셈에 밝은 사기꾼이 타인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땀을 아낌없이 바치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사랑이 그 일을 해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물가에서 터진 그 눈물이 닫혔던 문을 열어놓았고, 그 열린 문으로 사랑이 들어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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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야곱을 어떻게 변화시키셨습니까. 천둥 같은 음성으로 그의 잘못을 꾸짖으신 것이 아닙니다. 낯선 땅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하시고, 그 만남이 야곱의 닫힌 마음에 눈물의 틈을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상의 우물가에서, 한 사람의 얼굴을 통해, 우리 안에 굳게 닫혀 있던 것을 조용히 열어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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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는 묵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묵상을 다시 생각하다』의 저자들은 묵상을 가리켜 "안식"이라고 정의합니다. 그 말이 처음에는 너무 단순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그 말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안식이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이 말한 것처럼, 안식일은 끊임없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세상의 논리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멈추는 것이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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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칠 년을 사랑으로 일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도망자로 살아온 삶으로부터의 안식이었습니다. 쫓기는 삶을 멈추고, 한 사람을 위해 머무는 것. 빼앗는 삶을 멈추고, 주는 삶으로 돌아서는 것. 그것이 야곱에게 주어진 묵상의 자리였습니다. 묵상이란 내 욕망의 달음질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이 이미 내 곁에 두신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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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저마다의 우물가에 서 있습니다. 어쩌면 그 우물을 무거운 돌로 막아두고 아무것도 내주지 않은 채 지쳐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단단히 닫아버린 마음, 상처받지 않으려 두꺼워진 벽, 그 무게가 실은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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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라헬을 위해 돌을 굴려 낸 것은 힘이 세어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언가가 그의 안에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도 그 무언가가 움직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닫힌 문을 두드리시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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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쫓기듯 달려온 걸음을 잠시 멈추시기 바랍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내 마음의 돌을 조금만 굴려 내어 보시기 바랍니다. 칠 년이 며칠 같이 느껴지는 사랑, 그 사랑이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우물가의 만남을 통해 조용히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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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굴려지는 곳에 물이 흐릅니다. 물이 흐르는 곳에 생명이 깃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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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계곡의 얼음을 생각합니다. 두꺼운 얼음 아래에도 물은 흐릅니다. 소리 없이, 보이지 않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 얼어붙었던 표면이, 봄볕 한 줄기에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할 때, 그 물은 비로소 제 모습으로 흐릅니다. 야곱이 우물가에서 흘린 눈물이 그 봄볕이었습니다. 우리의 묵상도 그러합니다. 내 힘으로 나를 지키려 굳어버린 것들을 녹여내는 일, 그 조용하고 따뜻한 일. 녹아내린 물은 결국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목을 축입니다. 우리가 묵상 안에서 부드러워질 때, 우리는 그렇게 흘러가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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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