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19-34 형제의 허기를 딛고 선 욕망, 그 비루함을 덮으시는 십자가의 옷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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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타인의 약점을 이용해 내 몫을 챙기려는 서늘한 경쟁의 '모범답안'을 버리고, 팥죽 한 그릇 앞에서도 무너지는 우리의 비루한 실존조차 십자가의 보혈로 덮어주시는 은혜로 '옷 입으며(묵상)', 이웃을 향한 연민의 시선을 회복하는 따뜻한 부르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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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대지를 적시고 지나간 자리마다, 벚꽃이 떠난 빈 가지를 채우려는 듯 연초록 생명들이 다투어 제 빛깔을 뿜어내는 4월의 경이로운 아침입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무한 경쟁의 쳇바퀴 속에서 남몰래 삶의 무게를 견디며 이 자리에 오신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그리고 내 믿음의 초라함에 짙은 회의를 안고 진리의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의 일상에 평화의 주님이 주시는 넉넉한 은총이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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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늘 남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라고 가르칩니다. 때로는 타인의 약점조차 나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을 '능력'이라 포장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구약성경 창세기 25장 후반부의 풍경은, 그토록 지독한 인간의 경쟁과 이기심이 가족이라는 가장 내밀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비극적으로 얽히는지를, 그리고 그 찢긴 관계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낯선 은총을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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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했을 때, 아이들은 태중에서부터 서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창 25:22). 그리고 자라나면서 그 갈등은 부모의 어긋난 편애로 인해 더욱 깊어집니다. 사냥한 고기를 좋아한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장막에 머무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창 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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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성경을 하나님과 인간의 위계적인 질서로만 파악하는 '수직적 관점'을 넘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얽히고 충돌하는 이야기에 주목하는 '수평적 관점'으로 읽어낼 것을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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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우리는 이 본문을 수직적인 ‘모범답안’으로만 읽어왔습니다. 장자권을 가볍게 여긴 에서는 세속적인 인간이기에 마땅히 버림받았고, 영적인 장자권을 사모한 야곱은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이기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수평적 시선으로 이 본문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뼈아픈 진실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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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서 돌아와 허기에 지쳐 죽을 지경이 된 형 에서가 붉은 죽을 달라고 애원할 때, 야곱은 형의 극심한 굶주림을 바라보며 연민을 느끼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절박한 생존의 위기를 이용해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창 25:31)고 거래를 요구합니다. 이기주 작가가 말했듯 언어에는 저마다의 온도가 있습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형제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야곱의 언어는 영혼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영하의 온도이자, 잔인한 폭력의 온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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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역사, 특히 창세기를 가리켜 '형제간의 경쟁(sibling rivalry)의 역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사랑과 협력을 나누어야 할 형제들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며 깊은 상실감과 투쟁 속에 빠져드는 비극입니다. 야곱은 종교적 열심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지만, 실상은 아우구스티누스나 루터가 지적한 '자기 속으로 구부러진 인간(homo incurvatus in se)'의 전형이었습니다.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중심에 놓고 타자를 대상화하는 앙상한 이기주의의 민낯입니다. 팥죽 한 그릇의 식욕에 영원한 가치를 팔아넘긴 에서나, 형의 고통을 딛고서라도 기어코 축복을 쟁취하려는 야곱이나, 수평적 관계 속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부서진 연약한 인간군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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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이기적이고 비루한 우리 실존의 부끄러움을 마주할 때, 우리 영혼을 살려내는 거룩한 처방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을 다시 생각하다』의 공저자들은 묵상이 단순한 지적 깨달음을 넘어 우리 존재를 완전히 덮어주시는 은혜의 사건임을 일깨워 줍니다. 묵상이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몸을 온전히 내어 주심으로, 벌거벗고 수치스러운 "우리 부끄러움을 완벽하게 덮어 주신 그리스도로 옷 입는 시간"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두려움에 숨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던 하나님은, 타인의 눈물을 딛고 성공의 탑을 쌓으려던 우리의 얄팍하고 이기적인 옛사람의 옷을 벗기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옷, 곧 '용서와 연민'의 새 옷으로 우리를 덮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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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묵상은 생명과 능력으로 충만한 말씀을 들음으로써 나의 비좁은 세계관을 부수고 "우리의 세상도 새롭게 창조"되는 경이로운 시간입니다. 내가 움켜쥔 알량한 장자권이나 팥죽 그릇을 내려놓고, 형제의 허기를 불쌍히 여기며 곁을 내어주는 '새 창조'의 자리로 나아가는 영적 혁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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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야곱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하나님의 복을 쟁취해야 해"라는 무거운 강박과 경쟁심에 쫓기고 계십니까? 아니면 "나는 에서처럼 늘 눈앞의 이익과 팥죽 한 그릇의 유혹에 넘어가는 자격 없는 사람이야"라며 깊은 회의와 자책감에 빠져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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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팍팍하고 무거운 증명의 짐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그가 도덕적으로 완벽하거나 형보다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형의 약점을 파고드는 야곱의 그 치사한 이기심과 모난 성품조차도 온전히 아시면서,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내 깨뜨리고 빚으셔서 이스라엘이라는 거룩한 은총의 통로로 만들어 내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남들보다 얼마나 경쟁에서 잘 이기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팥죽 한 그릇 앞에서도 쉽게 무너져 내리는 우리의 얄팍한 본성과 흠결마저도 고스란히 끌어안아 주시는 하나님의 그 맹렬하고도 끈질긴 긍휼에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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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타인을 이겨야만 내가 복을 받는다는 세상의 차가운 모범답안을 미련 없이 찢어버리십시오. 그저 우리의 허물 많은 실존조차 넉넉히 덮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옷 입으며(묵상), 내 곁에 허기진 이웃에게 아무 조건 없이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을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한 평화의 순례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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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다양한 나무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품이 넓은 깊은 숲'과 같습니다. 숲의 표면에서 나무들은 한 줌의 햇살(세상의 복과 이익)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가지를 뻗으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서로를 그늘지게 합니다(형제간의 다툼).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숲의 가장 깊은 바닥, 축축하고 부드러운 '부엽토(은총의 흙)'는 키가 큰 나무의 잎사귀이든 가장 작고 병든 나무의 잎사귀이든 가리지 않고 자신의 품으로 고스란히 받아안아 썩히고 녹여냅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형제보다 더 높이 솟아오르려는 피곤한 경쟁을 멈추고, 우리의 뾰족한 이기심마저 온전히 덮어 생명의 양분으로 바꾸어 내시는 주님의 깊은 은총의 흙 속으로 뿌리를 내릴 때(묵상), 우리는 마침내 세상을 향해 맑은 산소를 뿜어내는 푸르고 아름다운 공존의 숲으로 함께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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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