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4:1-27 낯선 우물가에서 길어 올린 환대, 일상에 스며든 수평적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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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내 이익만을 구하는 수직적 욕망의 탑을 쌓는 대신, 목마른 나그네와 말 못 하는 짐승의 고단함까지 헤아리는 '수평적 환대'의 자리로 나아가며,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넉넉한 은혜를 내 삶의 언어로 '실시간 번역(묵상)'해 내는 경이로운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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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봄 햇살이 만물을 다정히 어루만지며 대지 곳곳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2026년 4월의 아침입니다. 화사하게 피어났던 벚꽃이 바람에 흩날려 떠난 빈자리마다, 기어코 짙푸른 연초록 잎사귀들이 경이롭게 움을 틔우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남모를 삶의 무게를 견디며 이 자리에 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짙은 안개 같은 현실 앞에서 회의하며 참된 진리의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의 영혼에 평화의 주님이 주시는 다사로운 은총이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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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늘 남보다 더 높이 올라가라고, 내 소유를 더 크게 늘리라고 다그칩니다. 타인은 경쟁하여 밟고 넘어서야 할 대상일 뿐, 무한 경쟁의 시대에 대가 없는 환대나 친절은 어리석은 일이라 비웃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구약성경 창세기 24장의 우물가 풍경은, 이토록 삭막한 세속의 논리를 완전히 뒤집어엎으며, 참된 신앙이 빚어내는 경이로운 '환대와 공감'의 자리가 어떠한 것인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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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종 엘리에셀은 주인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고,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머나먼 나홀의 성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낙타 열 마리를 이끌고 도착한 낯선 우물가에서, 지친 종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가 물동이를 기울여 마시게 하라 할 때에, 그가 대답하기를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정하신 자라"(창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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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위계적 명령과 복종으로만 이해하는 '수직적 관점'을 넘어, 인간과 인간, 나아가 피조 세계와 맺는 관계에 주목하는 '수평적 관점'으로 텍스트를 읽어낼 것을 제안합니다. 종의 기도를 수직적 관점으로만 읽으면,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람을 찾기 위한 일종의 '종교적 테스트'나 '표적 구하기'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수평적 시선으로 이 본문을 바라보면, 성경이 지향하는 깊고도 아름다운 인간성의 척도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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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걸어온 낯선 나그네에게 물 한 모금을 대접하는 것은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막을 건너오느라 극도로 목이 마른 '낙타 열 마리'에게 자발적으로 물을 먹이겠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낙타 한 마리는 단숨에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십니다. 열 마리를 먹이려면 우물 아래로 수없이 오르내리며 무거운 물동이를 길어 올려야 하는 혹독한 노동을 감수해야 합니다. 늙은 종이 구한 표징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고단함과 말 못 하는 짐승의 갈증까지도 자신의 수고로 기꺼이 품어 안을 줄 아는 '수평적 연대와 긍휼'을 지닌 사람을 찾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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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리브가가 우물가에 나타나, 종의 간구 그대로 나그네를 대접하고 낙타들을 위해 물을 긷기 시작합니다(창 24:19). 한동일 변호사는 인간의 비루한 실존을 성찰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 역시 제 외로움과 고통에서 눈을 들어 타인의 외로움, 아픔을 보려는 그 순간부터 저의 외로움과 아픔의 방의 크기가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리브가는 우물가에 선 자신의 일상적 수고로움에 갇혀 있지 않고, 눈을 들어 지친 나그네와 짐승의 목마름을 보았습니다. 이기주 작가가 갈파했듯 언어와 행동에는 저마다의 온도가 있습니다. 이익을 계산하여 타인을 밀어내는 세상의 논리가 영혼을 얼어붙게 하는 영하의 온도라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노동을 감내하며 길어 올린 리브가의 물동이는 척박한 세상을 단숨에 살려내는 가장 맹렬하고 다정한 생명의 온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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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눈부신 수평적 환대와 일상의 신비를 우리 영혼에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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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을 다시 생각하다』의 저자들은 묵상이 단순히 옛 문자를 지식으로 해부하는 죽은 시간이 아님을 일깨워 줍니다. 정민영 선생은 묵상을 가리켜 "실시간 번역"이라고 통찰합니다. 성경 묵상은 타자에 관한 지식을 공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천 년 전 우물가에서 일어난 그 아름다운 환대와 긍휼의 이야기를 지금 나의 구체적인 일상 속으로 실시간 번역해 내어, 이기심으로 왜곡된 나의 가치관을 치열하게 혁신해 내는 영적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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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권연경 교수는 묵상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다음 단계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통제권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신비를 바라보며, 절망과 회의의 한복판에서도 나와 이웃을 살려내는 새로운 사랑의 세계를 상상하고 창조해 내는 힘이 묵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이 고요한 우물가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상상했듯, 묵상은 우리의 퍽퍽한 일상을 초월의 신비로 이어주는 거룩한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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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혹시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왜 번번이 내 욕심만 차리려 들까?", "내 믿음은 왜 남들처럼 대단한 헌신의 열매를 맺지 못할까?" 자책하며 짙은 회의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 대단한 업적을 증명해 보여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율법적인 강박에 짓눌려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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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스스로 완벽해져야 한다는 그 무거운 짐을 우물가에 조용히 내려놓으십시오. 늙은 종 엘리에셀은 자기가 가진 능력이나 완벽한 전략으로 주인의 뜻을 성취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지친 몸을 이끌고 우물가에 앉아 하나님의 선하심에 온전히 기대었을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라는 은총의 사람을 친히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성숙은 우리가 흠결 없이 훌륭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 없고 나약한 우리를 찾아오시어, 평범한 물동이 하나, 고단한 낙타 한 마리 같은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 속에 크고 비밀한 은혜를 숨겨두시고 우리를 선대하시는 하나님의 넉넉한 긍휼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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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배제하려던 차가운 시선을 거두십시오. 그저 우리 곁을 흐르는 하나님의 넉넉한 은혜를 묵상으로 깊이 들이마시며, 내게 다가온 누군가의 목마름을 향해 조용히 물동이를 기울여 주는 다정한 수평적 환대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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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프리즘(Prism)'과 같습니다. 프리즘 그 자체는 스스로 빛을 만들어낼 수 없는 차갑고 평범한 유리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보이지 않는 맑은 빛(수직적 은총)이 그 투명한 내면을 통과할 때(묵상), 프리즘은 그 빛을 경이롭고 찬란한 무지개 빛깔로 산란시켜 주변의 모든 어두운 공간을 다채롭게 물들입니다(수평적 환대). 우리가 내 알량한 힘으로 거룩한 빛을 뿜어내려 억지스러운 수고를 멈추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맹렬한 은혜의 빛 앞에 우리의 마음을 고요히 열어둘 때, 우리의 밋밋한 일상은 이웃의 캄캄한 고통과 외로움을 감싸 안는 가장 따뜻하고 눈부신 사랑의 스펙트럼으로 흩뿌려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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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