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19-31 사망의 두려움을 깨뜨리고 평강을 주시며, 성령과 함께 세상으로 파송하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

by 평화의길벗 posted Apr 05,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요한복음 20:19-31 사망의 두려움을 깨뜨리고 평강을 주시며, 성령과 함께 세상으로 파송하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

*

안식 후 첫날 저녁, 십자가 처형의 충격으로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굳게 문을 닫고 모여 있던 제자들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하시며 십자가의 흔적인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처럼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이어서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시고 죄 사함의 권세를 부여하십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직접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고집합니다. 여드레 후, 주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도마에게 상처를 내어주시며 믿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십니다. 이에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위대한 신앙 고백을 올리고, 주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축복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은 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

# 역사·문화적 배경 : 본문의 시점인 '안식 후 첫날(주간의 첫날)'은 기독교 역사에서 주일(Lord's Day) 예배가 시작되는 중요한 기원이 됩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평강(샬롬)'은 일상적인 인사말이었으나, 부활하신 주님이 선포하신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나 근심이 없는 상태를 넘어,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진 궁극적이고 종말론적인 화해와 평화를 의미합니다.

# 신학·정경적 배경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주시는 장면은, 창세기 2:7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빚은 인간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첫 창조'와, 에스겔 37:9에서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 큰 군대를 이룬 환상을 뚜렷하게 연상시키는 '새 창조'의 행위입니다. 또한 도마의 고백은 요한복음 1:1의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서론의 대전제를 제자의 입술을 통해 확증하는 기독론의 찬란한 최고봉입니다.

# 철학·인문학적 배경 : 도마의 '의심'은 실증적이고 감각적인 증거(보고 만지는 것)만을 진리로 인정하려는 인간 이성의 한계와 철학적 회의주의를 대변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 실존의 한계를 억압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친히 상처 입은 몸을 내어주시는 무한한 관용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물리적 감각을 초월하여 시공간 너머의 진리를 신뢰하는 "보지 못하고 믿는" 더 높은 차원의 영적 인식(믿음)으로 인류를 초대하십니다.

*

# 19-21a절 닫힌 문을 뚫고 찾아온 평강의 주님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사, 두려움에 갇힌 제자들을 찾아와 십자가의 영광스러운 상처를 보이시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강을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제자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보복이 두려워 모인 곳의 문들을 굳게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닫힌 문을 뚫고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못 박히신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비로소 부활의 주님을 알아본 제자들은 기쁨에 사로잡힙니다.

.

극도의 공포에 짓눌려 문을 걸어 잠근 제자들의 모습은 죽음 앞에서 철저히 무력해진 인간 실존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물리적 장벽에 제한받지 않는 신령한 '새 창조의 몸'이었습니다. 주님이 선포하신 "평강(εἰρήνη, 에이레네)"은 제자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심리적 위안을 넘어, 십자가 피로 이룩하신 하나님과의 완벽한 화목(롬 5:1)을 선언하시는 종말론적 샬롬입니다. 주님이 손과 옆구리의 끔찍한 상처를 보이신 것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분이 곧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리신 바로 그 '역사적 예수'와 동일한 분이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한 그 흉터는 이제 승리와 사랑을 증명하는 영광의 훈장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두려움은 주님의 임재와 십자가의 흔적을 확인하는 순간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환희(χαρά, 카라)로 역전됩니다.

.

급변하는 경제 상황과 치열한 경쟁, 예기치 않은 질병과 실패 앞에서 우리도 제자들처럼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두려움에 떨 때가 많습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난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할 때, 우리가 스스로 만든 그 철옹성 같은 두려움의 방 한가운데로 부활의 주님이 친히 찾아오심을 믿으십시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의 이 선언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영혼을 지켜내는 절대적인 반석입니다. 나를 위해 못 박히신 주님의 그 흉터 난 두 손이 지금 내 삶을 굳게 붙들고 계십니다. 오늘 내가 겪는 억울한 상처와 실패의 흔적조차도,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도리어 남을 위로하고 살리는 영광스러운 간증으로 변화될 줄 믿으며,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평안으로 다시 일어서시기를 축복합니다.

*

# 21b-23절 파송과 새 창조의 성령 수여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연약한 제자들을 파송하시고 새 창조의 숨결인 성령과 죄 사함의 권세를 부어 주시는 사명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평강을 선포하신 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며 그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이어서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명하시고, 그들에게 누구의 죄든지 사하거나 그대로 둘 수 있는 권세를 위임하십니다.

.

21절은 요한복음의 '대위임령(Great Commission)'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성육신과 십자가의 사명을 완수하셨듯이,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리자가 되어 그 복음의 사명을 세상 끝까지 이어가야 합니다. 파송과 함께 예수님은 "숨을 내쉬며(ἐνεφύσησεν, 에네퓌세센)" 성령을 주십니다. 이 헬라어 단어는 70인역 성경(LXX) 창세기 2:7에서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생령이 되게 하신 것과, 에스겔 37:9에서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 살아나게 한 것에 사용된 바로 그 단어입니다. 즉, 성령 수여는 죄와 사망에 갇힌 인간을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새 창조(New Creation)' 사역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신 죄 사함의 권세는 제자들 개인이 독단적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령의 권능을 입고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할 때 복음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죄 사함이, 배척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확정된다는 '선교적 선포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

부활의 주님을 만난 자는 결코 자기만의 은혜의 방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끼리 위로받고 끝나는 종교적 친목 단체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깨어지고 아픈 세상 한복판으로 파송받은 '사명 공동체'입니다. 직장 동료, 이웃, 믿지 않는 가족들이 바로 우리가 보냄을 받은 선교지입니다. 그러나 내 알량한 지식과 의지로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불어넣으시는 새 창조의 숨결, 곧 '보혜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혹은 고단한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주님, 제 영혼에 성령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일터의 부조리 앞에서도 정직을 선포하고, 미움과 갈등이 있는 곳에 용서와 생명의 복음을 흘려보내는 위대한 '일상의 사도'들로 살아가시기를 뜨겁게 권면합니다.

*

# 24-29절 도마의 의심과 참된 믿음의 축복

인간의 깊은 의심과 연약함까지도 긍휼히 여기사 친히 찾아와 만져주시고, 마침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최고의 고백을 이끌어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첫 번째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동료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며 강하게 의심합니다. 여드레 후, 주님이 다시 문이 닫힌 방에 나타나사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압도된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엎드리자, 주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

도마는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증거가 없이는 초자연적 기적을 거부하는 모든 시대의 이성주의자들을 대변합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도마의 불신앙을 불쾌하게 여기거나 내치지 않으시고, 오직 길 잃은 한 마리 양과 같은 그를 회복시키기 위해 8일 후 특별히 다시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의 은밀한 고집을 이미 다 아시고 그가 원했던 대로 거룩한 상처를 내어주십니다. 이 사랑의 압도적인 현현 앞에 도마는 감히 상처에 손을 넣지 못한 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Ὁ κύριός μου καὶ ὁ θεός μου)"라는 철저한 항복의 고백을 터뜨립니다. 이 고백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거부했던 예수의 신성, 즉 요한복음 1장 1절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진리를 피조물의 입술로 완벽하게 선포한 기독론적 절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시공간의 제약으로 부활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하지만,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조명을 통해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후대의 모든 신자들(바로 우리들)을 향한 가장 위대한 축복이자 종말론적인 약속입니다.

.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 안에도 도마와 같은 지독한 회의와 의심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내 삶에 이런 끔찍한 질병과 경제적 고통을 허락하실까?" 하며 증거를 보여달라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정직한 의심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맹목적 맹신을 넘어 더 깊은 진리로 나아가기 위한 영적 성장통입니다. 의심을 홀로 숨기지 말고 기도의 자리로 가지고 나아가 주님께 솔직히 토로하십시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주님은 책망 대신 십자가의 긍휼로 다가오사 우리 심령을 만져주실 것입니다. 또한 남의 신비한 은사나 특별한 신앙 체험을 지나치게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손에 들려진 이 완성된 성경 말씀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깊이 만나고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눈으로 환상을 보는 것보다 주님이 더 칭찬하시고 기뻐하시는 "복된 믿음"입니다. 각박한 삶의 현실 속에서도 오직 말씀을 등불 삼아, 나를 찾아오신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철저히 모셔 들이는 복된 성도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 30-31절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 영원한 생명

기록된 모든 표적과 말씀의 궁극적 목적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데 있음을 밝히사, 모든 세대의 백성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명확하다고 결론짓습니다. 그것은 바로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

30-31절은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명확한 나침반이자 기록 목적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 중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을 지시하는 7가지 핵심 표적들만을 정교하게 선별하여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믿게 하려 함(ἵνα πιστεύσητε, 히나 피스튜세테)"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합니다. 아직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복음을 영접하게 하려는 선교적 목적이며, 이미 믿는 자들에게는 환난과 의심 속에서도 믿음의 굳건함을 지속하게 하려는 목회적 목적입니다. 이 모든 믿음의 궁극적 종착지는 바로 "생명(ζωή, 조에)"을 얻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단지 죽고 나서 천국에 가는 미래의 사건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 땅에서부터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창조주 하나님과 끊임없는 인격적 친밀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역동적이고 충만한 영생의 삶 자체를 의미합니다(요 17:3).

.

오늘날 정보의 홍수와 수많은 영상 매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 목적이 단순히 교양을 쌓거나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펴는 단 하나의 이유는, 그 말씀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과 연합하여 내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신앙생활이 무기력해지고 습관적인 종교 행사로 전락했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명의 말씀인 요한복음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이 진정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매일 고백하십시오. 그 이름을 힘입어 살아갈 때, 절망과 죽음이 지배하는 이 세상 한복판에서도 결코 시들지 않는 하늘의 생명력이 여러분의 삶과 가정, 그리고 광양 땅을 푸르게 소생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 거둠의 기도

죽음의 권세를 산산이 깨뜨리시고,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부활하신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의 참혹한 패배감에 짓눌려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흉터를 안고 친히 찾아오사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늘의 평강을 부어주신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찬양합니다.

주님, 우리는 부활의 생명을 가졌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작은 위협과 경제적 염려 앞에서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스스로 두려움의 감옥에 갇혀 살았던 

연약한 자들임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눈에 보이는 증거와 내 알량한 경험만을 의지하려 했던 

도마와 같은 우리의 영적 교만과 불신앙을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옵소서.

이제 간절히 구하옵기는, 오늘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심령에 

새 창조의 숨결인 보혜사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의심과 불안을 거두어 가시고, 

기록된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철저히 고백하는 

복된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끼리만 안주하는 교회가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내가 속한 직장과 가정, 

그리고 세상 한복판으로 당당히 파송받아 

죄의 사슬에 매인 이웃들에게 용서와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참된 부활의 증인들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꾸시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오늘 이 땅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하시는,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