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31-42 십자가의 밤을 밝히는 은밀한 용기, 세상을 정화하는 생명나무로 서다

by 평화의길벗 posted Apr 0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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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31-42 십자가의 밤을 밝히는 은밀한 용기, 세상을 정화하는 생명나무로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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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세상의 시선과 권력이라는 안전한 울타리에 숨어 지내던 비겁함을 깨치고 나와, 십자가에서 찢기신 주님의 상처 곁에서 비효율적으로 끙끙대며(묵상) 우리 자신을 세상의 아픔을 정화하는 한 그루의 생명나무로 세워가는 거룩한 반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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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벚꽃잎이 봄비에 젖어 아스라이 흩날리며, 화려한 생의 이면에 감춰진 유한함과 쓸쓸함을 가만히 일깨우는 2026년 4월 4일의 아침입니다. 바쁜 일상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영혼의 무게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오신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그리고 여전히 짙은 안개 같은 현실 속에서 흔들리며 참된 진리의 길을 더듬고 계신 모든 분께 평화의 주님이 주시는 넉넉한 은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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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척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수단화하는 폭력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9장 후반부의 골고다 언덕 풍경은, 종교적 위선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비겁함이 하나님의 은총을 만나 어떻게 거룩한 용기로 피어나는지를 서늘하고도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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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숨을 거두신 날은 안식일 예비일이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 거룩한 안식일에 시신을 십자가에 매달아 두어 땅을 더럽힐 수 없다며,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달린 자들의 다리를 꺾어 치워 달라고 요구합니다(요 19:31). 참으로 소름 끼치는 종교적 위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정결법 준수'라는 자기들만의 종교적 모범답안에 갇힌 나머지, 우주의 창조주이신 생명의 주님을 무참히 살해하면서도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는 끔찍한 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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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숨을 거두신 예수님을 향해 군인 하나가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요 19:34). 주님은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으시고, 마지막 남은 생명의 진액마저 우리를 살리는 은혜의 강물로 남김없이 내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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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혹한 죽음의 언덕에, 뜻밖의 두 사람이 조용히 걸어 나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입니다. 요셉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예수의 제자임을 숨기던 사람이었고(요 19:38), 니고데모 역시 남들의 눈을 피해 캄캄한 한밤중에만 예수를 찾아왔던 소심한 지식인이었습니다(요 19:39). 호언장담하며 목숨을 바치겠다던 제자들은 모두 두려움에 쫓겨 뿔뿔이 도망쳤지만, 평소에는 비겁하게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이 두 사람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십자가의 빛 아래로 자신의 몸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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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변호사는 성경과 인생을 강독하며, 우리가 낮 동안에는 스스로 천재이거나 훌륭한 사람이라 착각하며 살지 몰라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그렇지 않은 솔직한 자기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라고 권면했습니다. 십자가의 비극 앞에서, 요셉과 니고데모는 율법의 지위 뒤에 숨어 있던 자신의 비겁하고 적나라한 민낯을 정직하게 대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변하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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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차갑게 돌아서는 제국의 영하의 온도 앞에서, 무려 백 리트라(약 33kg)나 되는 막대한 양의 몰약과 침향을 짊어지고 다가와 주님의 찢긴 시신을 정성스레 어루만진 이 두 사람의 무언의 행동은, 꽁꽁 얼어붙은 골고다의 죽음을 녹여내는 가장 뜨겁고 맹렬한 '사랑의 온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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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연약했던 이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십자가 곁으로 다가설 수 있었던 은총의 비밀을 우리 삶으로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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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공지능(AI)이 성경 본문을 순식간에 요약해주고 내 수준에 맞는 해석과 큐티 나눔 거리까지 정해주는 효율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영적 스승들은 묵상이란 결코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비효율적으로 말씀 앞에서 끙끙대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일깨웁니다. 참된 묵상은 성경의 활자를 지식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주님의 상처 앞에 서서 나의 비겁함을 정직하게 끌어안고 끙끙대며 아파하는 시간입니다. 나아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실시간으로 번역되어, 뒤틀린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혁신하도록 존재를 온전히 내어맡기는 위대한 혁명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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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왜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의 이익과 시선 앞에 이토록 쉽게 무너질까?" 자책하며 깊은 회의에 빠져 계신 분이 있습니까? 남들처럼 찬란한 헌신의 자리에 서지 못해 십자가 앞에 나아가기를 부끄러워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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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은 탁한 갠지스강 삼각주에서 무성하게 자라며 오염된 강물을 맑게 정화시키는 맹그로브(Mangrove) 나무의 숭고함을 이야기하며,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대지를 정화시키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라고 갈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생부터 흠집 하나 없고 두려움 없는 거목이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겁 많고 나약했던 자들의 뒤늦은 방문조차 가장 아름다운 장례의 예식으로 기꺼이 받아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강인한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찢긴 몸으로 다가와 비겁한 우리를 기어코 품어 안으시는 주님의 그 다함 없는 긍휼에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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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평가라는 낡은 장막을 걷어내십시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신 주님의 상처 곁에서 비효율적으로 끙끙대며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그 은총 안에 머물 때, 우리의 일상은 상처 입은 세상을 위로하고 정화해 내는 아름다운 생명의 숲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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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혼탁한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진흙탕 기수역에 뿌리를 내린 '맹그로브(Mangrove) 숲'과 같습니다. 온갖 오물과 소금기로 가득한 그 척박한 뻘밭에서 맹그로브 나무는 썩어 죽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짠 몸을 필터 삼아 독성을 걸러내며 주변에 수많은 생명이 깃들 수 있는 맑고 청정한 바다를 창조해 냅니다. 우리가 내 안위만을 지키려 숨어 있던 안전한 울타리를 미련 없이 떠나, 주님의 십자가라는 거룩하고도 쓰라린 진흙탕(은총) 속에 우리 영혼의 뿌리를 묵상으로 깊이 내릴 때, 비로소 우리의 연약한 삶은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을 생명의 숨결로 정화해 내는 푸르고 든든한 은혜의 숲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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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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