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28-30 십자가에서 완성된 갈증, 세상을 적시는 은총의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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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우리의 얄팍한 욕망과 모범답안을 내려놓고,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 탄식하시며 우리의 고통을 끌어안고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주님의 처절한 사랑의 이야기(묵상) 속으로 들어가, 은혜의 날개 위로 비상하는 구원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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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벚꽃 잎이 봄바람에 흩날리며 겨우내 쌓였던 대지의 먼지를 생명의 향기로 씻어내는 2026년 4월 3일의 눈부신 아침입니다. 저마다의 가슴에 남몰래 감춘 무거운 삶의 짐을 안고 오늘이라는 순례의 길을 걷고 계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여전히 짙은 회의와 안개 같은 현실 속에서 참된 진리를 더듬고 계신 모든 분께 평화의 주님이 주시는 넉넉한 은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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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늘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는 자만이 승리자라고 가르칩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는 실패와 저주의 상징일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9장 후반부의 풍경은, 가장 무력하고 처참한 패배의 자리에서 인류의 구원이 완벽하게 빚어지는 위대한 역설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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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극심한 고통 속에서 가상칠언(架上七言)의 마지막 말씀들을 쏟아내십니다. 주님은 모든 일이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 "내가 목마르다"(요 19:28)라고 깊이 탄식하십니다. 이 절박한 목마름은 단지 찢긴 육신이 겪는 생물학적 갈증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타들어 갔던 주님의 목마름이 오늘 이 시대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무고한 희생들 때문에 목이 타시고, 가자 지구의 참상, 곳곳의 전쟁과 억압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연약한 이들 때문에 지금도 주님의 목은 타들어가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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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셔 주님의 입에 대어 준 것이 알량한 호의인지 짓궂은 조롱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동일 변호사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마태복음 말씀을 목숨을 다해 지키고 싶은 내 인생의 문장으로 꼽았듯, 주님의 그 타는 목을 해갈시켜 드려야 할 엄중한 책임은 오늘 이 땅의 연약한 이웃들을 긍휼히 보듬어야 할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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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거두시기 직전, 예수님은 마침내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선언하십니다.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Tetelestai)', 즉 목적을 온전히 완수했다는 승리의 외침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힘이 없어 당한 무기력한 패배가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으신 거룩한 순명(順命)의 마침표이며 생명을 살리기 위한 영광스러운 귀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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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놀라운 십자가의 은총 앞에서 자주 길을 잃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화려한 권력으로 로마를 무찌르고 당장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강력한 메시아라는 세속적인 모범답안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십자가에 벌가벗겨진 예수를 향해 조롱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저주하던 군중들의 언어는 생명을 찌르는 서늘한 얼음장이었지만,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해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간구하시며, 마침내 "다 이루었다"고 생의 마지막 숨결을 토해내신 예수님의 가상칠언은 죽어가는 우리의 영혼을 단숨에 살려내는 가장 맹렬하고 뜨거운 '생명의 온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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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값비싸고 장엄한 십자가의 은혜를 우리 영혼에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묵상을 다시 생각하다』에서 권일한 선생은 "묵상은 이야기다"라고 정의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아빠를 기다리며 삐뚤빼뚤 쓴 서툰 글 속에서도 아빠의 다채로운 사랑과 체온이 담겨 있듯이, 묵상이란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하나님의 그 애달픈 사랑의 거대한 '이야기' 속에 나의 작고 초라한 일상의 조각들을 기꺼이 포개어 넣는 친밀한 사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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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회권 교수는 묵상을 "독수리 날개"에 비유합니다. 묵상은 마치 허공으로 내던져져 캄캄한 자유낙하를 하는 것 같은 절망의 순간에, 마침내 우리를 받아 안으시는 하나님의 날개 위로 되올려지는 거룩한 훈육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허공을 날아보겠다고 퍼덕이는 헛된 수고를 멈추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은혜의 기류에 온몸을 맡긴 채 하늘을 비상하는 경이로운 생명 사건, 그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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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흠이 많고 부족할까?", "내 믿음으로는 도저히 주님 앞에 설 자격이 없는 것 같아" 하며 깊은 자책과 회의에 빠져 계신 분이 있습니까? 더 훌륭한 헌신과 도덕적 완벽함을 증명해 내야만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인정해 주실 것이라는 율법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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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무거운 증명의 짐을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한동일 변호사는 우리 각자에게는 견딜 수 있는 끓는점이 다름을 고백하며, 언젠가는 우리 스스로 절망에서 걸어 나와 "지금 마셔야 한다(Nunc est bibendum)"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충만한 때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쓰라린 고통의 잔을 우리가 홀로 들이켜도록 주님은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그 진노와 고통의 잔을 우리를 대신하여 먼저 다 마셔 비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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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네가 남은 구원의 조건들을 다 이루어라"고 다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철저히 실패한 우리를 향해 "내가 널 위해 다 이루었다"고 명확히 선언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평안은 흔들리고 넘어지는 우리의 허약한 의지나 종교적 업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쏟아내시며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그 압도적이고 완벽한 은총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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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무언가를 내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세속의 모범답안은 찢어버리십시오. 그저 나를 향해 쏟아지는 주님의 그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묵상) 안에 고요히 머물며, 십자가에서 피어난 영원한 생명의 넉넉함을 마음껏 누리시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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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썰물로 인해 갯벌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조각배(Stranded Boat)'와 같습니다. 바닥을 드러낸 갯벌 위에서, 배는 제아무리 훌륭한 노를 젓고 강력한 엔진을 가동하려 한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한 뼘도 생명의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때가 되어 광활한 대양으로부터 압도적인 '밀물(High Tide)'이 밀려들어 올 때, 배는 아무런 수고 없이도 거뜬히 물 위로 떠올라 마침내 자유로운 항해를 시작하게 됩니다. 내 알량한 힘과 의지로 구원의 바다에 이르려던 헛된 뜀박질을 멈추고,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며 우리 영혼의 갯벌로 맹렬하게 밀려들어 오시는 주님의 은총(밀물)에 우리 존재를 온전히 맡길 때(묵상), 우리는 마침내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참된 자유와 평안의 항구로 평화로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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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