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17-27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온 세상의 왕으로 등극하시며,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고 새로운 영적 가족을 창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by 평화의길벗 posted Apr 01,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요한복음 19:17-27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온 세상의 왕으로 등극하시며,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고 새로운 영적 가족을 창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

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골고다)이라 불리는 곳으로 나아가사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는데, 이는 히브리, 로마, 헬라 말로 기록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고쳐 쓸 것을 요구했으나 빌라도는 이를 거절합니다. 한편, 십자가 아래에서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넷으로 나누어 가지고, 통으로 짠 속옷은 찢지 않고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짐으로써 시편의 예언을 온전히 성취합니다. 십자가 곁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중에도 어머니를 제자에게, 제자를 어머니에게 서로 부탁하시며 십자가 아래에서 새로운 영적 가족을 맺어 주십니다.

*

# 역사·문화적 배경 : 로마 제국의 '십자가 처형(Crucifixion)'은 반역자나 흉악범, 노예들에게만 가해지던 가장 수치스럽고 잔혹한 사형 방법이었습니다. 죄수의 머리 위에는 그의 죄목을 알리는 명패(티틀로스, titulus)를 달았으며, 사형을 집행한 군인들이 죄수의 옷을 전리품처럼 나누어 가지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또한 히브리어(종교의 언어), 로마어(라틴어, 법과 권력의 언어), 헬라어(문화와 지성의 언어) 등 3개 국어로 명패가 기록된 것은, 당시 지중해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이 사실을 공포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 신학·정경적 배경 :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달리 십자가 사건을 수치나 비극으로 그리지 않고, 예수님께서 온 우주의 왕으로 즉위하시는 영광의 '대관식'으로 신학화합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는 장면조차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구약 시편 22편 18절의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인간의 악한 의도조차도 하나님의 철저한 구속사적 통제 아래 있음을 증명합니다.

# 철학·인문학적 배경 : 본문은 권력과 폭력이 난무하는 형장 아래의 군인들과, 슬픔과 연대로 묶인 십자가 곁의 여인들을 강렬하게 대조시킵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절대적 단절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철학적, 실존적 절망의 끝자리에서 오히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을 묶어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출산해 내십니다,. 이는 폭력과 죽음을 이기는 사랑의 위대한 인문학적 전복을 보여줍니다.

#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성공과 권력만을 승리로 여기기에,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삶이 때로는 무모하고 초라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묵상할 요한복음 19장 중반부의 말씀은, 가장 끔찍한 사형틀인 십자가 위에서 오히려 온 세상의 왕으로 등극하시며, 구약의 모든 예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 가족을 선물로 주시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장엄한 승리를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세상의 조롱 앞에서도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우리 영혼이 참된 소망과 평안을 회복하시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 17-18절 친히 십자가를 지고 가신 골고다

끔찍한 십자가의 형벌 앞에서도 피하지 않으시고,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친히 고난의 짐을 짊어지시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무리에게 넘겨지신 예수님은 친히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불리는 골고다로 나아가십니다. 로마 군병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함께 못 박았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요한복음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다고 묘사하지만,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라고 기록하여 예수님의 능동성과 자발성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상황에 휩쓸려 억지로 끌려가시는 무력한 희생자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모리아 산으로 올라갈 때 제단에 쓸 나무를 친히 짊어지고 갔던 것처럼, 참된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인류 구원이라는 거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라는 제단의 나무를 스스로 지고 당당하게 걸어가신 것입니다. 좌우편에 못 박힌 두 죄인들 "가운데" 달리신 예수님은, 영적으로 깊은 어둠과 죄악 한가운데로 친히 뚫고 들어오셔서 그 어둠을 생명으로 품어내시는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

오늘날 경쟁이 치열한 일터나 관계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자주 "왜 나만 이런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가?"라며 원망하고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레네 시몬 뒤에 숨지 않으시고, 기꺼이 당신의 십자가를 짊어지신 주님을 묵상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진다는 십자가는 재수 없게 걸려든 불행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사랑의 수고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내 가정과 일터에서 남들이 꺼리는 궂은일이나 손해 보는 자리가 있다면 불평 없이 기쁨으로 그 십자가를 짊어져 보십시오.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가는 여러분의 땀방울을 통해, 그곳에 생명의 부활이 꽃피는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

# 19-22절 온 세상에 선포된 만왕의 왕

세상의 조롱과 수치 한가운데서도, 모든 언어와 열방을 향해 만물의 통치자요 유대인의 참된 왕이심을 공포하시는 영광의 왕이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써서 붙입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곳이 예루살렘 성에서 가까워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었는데, 그것은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고쳐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지만,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며 단호히 거절합니다.

.

십자가 위에 붙은 명패(티틀로스)는 본래 사형수의 죄목을 적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이 문구가 자신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훼손한다고 여겨 격렬히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이요 불의한 재판관이었던 빌라도의 고집("내가 쓸 것을 썼다")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구속사의 진리를 온 우주에 공포하십니다,. 종교의 언어인 히브리어, 법과 제국의 언어인 로마어(라틴어), 문화와 지성의 언어인 헬라어 등 당시 세계의 모든 대표적인 언어로 이 문구가 쓰였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이 단순히 유대 민족만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열방과 민족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셨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장엄한 대관식의 현장입니다.

.

세상은 십자가를 실패와 조롱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오늘날 지성과 권력을 자랑하는 세상의 시선 앞에서, 때로 우리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산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숨기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치욕스러운 형벌의 자리에서 가장 찬란한 승리의 왕권을 선포하셨습니다. 돈과 권력이 왕 노릇 하는 광양의 삶의 한복판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만이 나의 진정한 왕이심을 당당하게 드러내십시오. 우리의 삶의 방식, 곧 희생과 정직과 섬김을 통해 "내 삶을 다스리시는 분은 바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사실을 이웃과 동료들이 분명한 언어로 읽어낼 수 있게 하기를 원합니다. 

*

# 23-24절 겉옷과 속옷, 그리고 성취된 예언

탐욕에 눈먼 자들의 무지한 폭력 속에서도, 구약의 예언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어 가시는 신실하시고 주권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취해 네 깃으로 나누어 각각 한 깃씩 차지합니다. 통으로 짠 속옷은 찢지 않고 누가 가질지 제비를 뽑아 결정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건이 구약 시편 22편 18절("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의 예언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증언합니다.

.

사형 집행인들이 사형수의 옷을 전리품처럼 챙기는 것은 당시의 잔혹한 관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한 벌거벗김을 당하심으로, 아담의 타락 이후 인류가 짊어지게 된 모든 영적, 육적 수치와 조롱을 홀로 다 뒤집어쓰셨습니다. 이 극단적인 수치의 자리에서 군인들은 무감각하게 도박(제비뽑기)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무지하고 탐욕스러운 군인들의 맹목적인 행동조차도 사실은 하나님의 치밀한 구속의 섭리 안에 있었습니다.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시편의 예언)이 가장 비참한 현실 한가운데서 정확히 성취되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는 십자가가 통제 불능의 비극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절정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죽음이나 생명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오직 그분이 벗어 놓은 '옷(전리품)' 하나를 더 차지하기 위해 제비뽑기에 몰두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혹시 오늘 우리의 민낯은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 생명을 내어주셨는데, 정작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세상의 복과 물질적인 이익만을 계산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통렬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물을 소유하신 주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옷을 벗기우시고 수치를 당하셨다면, 우리도 세상의 헛된 탐욕의 옷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나의 작은 이익을 챙기느라 혈안이 되기보다, 벌거벗으신 주님이 친히 내게 입혀주신 '구원의 옷', '의의 겉옷'으로 인해 가슴 벅차게 감사하며 만족하는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

# 25-27절 새로운 영적 가족의 탄생

숨이 멎어가는 극심한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남겨진 자들을 향한 긍휼을 잃지 않으시고, 영원한 사랑으로 묶인 영적 가족을 창조하시는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

십자가 곁에는 군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어머니를 향해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제자를 향해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시간부터 제자는 그녀를 자기 집에 모시게 됩니다.

.

예수님은 물과 피가 쏟아져 숨을 쉬기조차 힘든 십자가의 극한 고통 속에서도 남겨진 자들을 향한 섬세한 돌봄과 긍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단순한 육신적 효도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성령의 잉태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이제 육신의 혈연으로 맺어진 낡은 가족 관계가 끝나고 십자가의 보혈과 믿음으로 맺어지는 '새로운 영적 가족 공동체(교회)'가 출산되는 위대한 순간입니다. "여자여(귀부인이여)"라는 극존칭과 함께 요한을 새 아들로 맺어 주심으로써,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처럼 험한 세상에 버려질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한 가족으로 묶어 주셨습니다.

.

교회는 단순히 주일에 한 번 만나 예배드리고 흩어지는 종교적 친목 모임이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세상의 어떤 혈연보다 더 끈끈하고 영원한 '새로운 가족'입니다,. 내 이웃의 아픔을 모른 척하고, 공동체 식구의 눈물을 외면하고 있다면 십자가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보라 네 어머니다, 네 아들이다" 하시며 연약한 자들을 서로에게 맡기셨던 주님의 애끓는 심정을 기억하십시오. 교회 안에 경제적 위기나 질병,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지체들을 내 육신의 부모나 형제처럼 찾아가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며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 보십시오. 우리가 십자가 아래에서 서로를 돌보며 진정으로 사랑할 때, 세상은 우리 안에서 살아계신 참된 가족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

# 거둠의 기도

온 우주를 다스리시며, 

우리의 참된 생명과 평안의 통치자가 되시는 만왕의 왕 하나님 아버지,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억지로가 아니라 

친히 짊어지시고 골고다를 향해 당당히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눈물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십자가 아래의 군인들처럼 

주님의 십자가 희생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 몫의 이익과 헛된 전리품만을 탐하며 살아왔던 

어리석은 죄인들임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력과 물질 앞에서는 쉽게 무릎 꿇으면서도, 

정작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통치 앞에서는 

내 고집과 자아를 꺾지 못했던 교만함을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케 씻어 주시옵소서.

이제는 치열한 삶의 현장과 속고 속이는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의 그 십자가가 결코 부끄러움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왕권의 선포요, 

온전한 예언의 성취임을 믿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하늘의 시민들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십자가의 극통 속에서도 남겨진 이들을 불쌍히 여기사 

영적인 새 가족으로 묶어주신 그 넓고 깊은 긍휼을 우리 안에 부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소외되고 상처 입은 지체들을 내 가족처럼 품어 안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십자가의 숭고한 사랑을 세상에 밝히 비추는 

거룩한 생명 공동체로 우뚝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장 비참한 형틀에서 가장 찬란한 생명의 왕국을 완성하신, 

우리의 유일한 왕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