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28-38 냉소의 법정을 뒤덮는 생명의 온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니라"

by 평화의길벗 posted Mar 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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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28-38 냉소의 법정을 뒤덮는 생명의 온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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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힘과 이익만을 진리로 여기는 세상의 차가운 냉소에 동화되는 대신, 세상 한복판으로 들어와 폭력을 묵묵히 받아내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우리 내면의 곳간에서 꺼내어(묵상), 일상을 은총의 나라로 빚어가는 숭고한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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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구름 사이로 문득문득 비치는 맑은 햇살이 상처 입은 대지 위로 생명의 기운을 다정히 불어넣는 2026년 3월의 끝자락입니다.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며 오늘이라는 순례의 길을 걷고 계신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그리고 현실의 차가운 벽 앞에서 회의하며 참된 진리를 찾고 계신 모든 분의 일상에 생명이신 주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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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늘 힘의 논리와 앙상한 이기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8장 전반부의 법정 풍경은, 종교적 위선과 제국의 오만이 어떻게 생명의 진리를 짓밟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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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막힌 역설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이방인의 관정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요 18:28). 유대 지도자들은 '정결법 준수'라는 자기들만의 종교적 모범답안에 갇혀, 정작 생명의 주님을 살해하는 무서운 폭력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했습니다. 신앙이 사랑을 잃어버리고 굳어진 제도가 될 때,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대신 이웃을 찌르는 잔인한 흉기가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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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 안에서는 빌라도와 예수님의 팽팽한 대화가 이어집니다. 제국의 권력을 대변하는 빌라도는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3). 이에 예수님은 단호히 대답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요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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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나라는 군대와 무기, 경쟁과 배제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는 칼을 뽑아 상대를 제압하는 제국의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십자가를 짐으로써 미움의 사슬을 끊어내는 자발적 희생과 긍휼의 나라입니다. 이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 세상의 권력에 찌든 빌라도는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 그의 질문은 진리를 찾으려는 구도자의 갈망이 아니라, "세상에 힘과 돈 말고 무슨 진리가 있단 말이냐?"라는 서글프고도 차가운 냉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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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이익만을 좇는 세상의 논리와 빌라도의 냉소는 영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죽음의 온도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도 묵묵히 사랑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차갑게 식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단숨에 녹여내는 가장 뜨겁고 맹렬한 은총의 온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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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관정처럼 냉혹한 세상 한복판에서, 차가운 냉소에 물들지 않고 생명의 온기를 품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깊은 '묵상'입니다. 자끄 엘룰과 디트리히 본회퍼의 사상을 묵상한 찰스 링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결코 은둔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임무가 있었지만 그분은 담대하게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사셨습니다.". 참된 묵상이란 촛불을 켜고 세상과 단절된 채 도피하는 식물적인 명상이 아닙니다. 제국의 칼날이 번뜩이는 일상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나의 비루한 삶을 기꺼이 포개어 넣는 치열한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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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묵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습니다. 우리는 늘 쉽게 잊어버리고 세상의 두려움에 휩쓸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묵상을 통해 내 영혼의 깊은 곳간에 저장해 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과 은혜의 기억을 매일매일 새롭게 꺼내어 호흡하며 영적 생존을 이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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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혹시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정직하게 살려니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라며 빌라도처럼 세상의 진리에 냉소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나의 믿음이 초라하게 느껴져 주눅 든 분이 계십니까? 번듯한 헌신을 하지 못해 주님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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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변호사는 꽉 꼬여버린 매듭 같은 현실 속에서도 "인간은 자기 삶의 주석자, 해석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권면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쥔 무기의 크기로 우리를 평가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렌즈로 우리 삶을 새롭게 해석해 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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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무기를 들고 영웅이 되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때로 타협하고 냉소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다 아시면서도, 친히 거짓된 법정에 서시어 조롱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부끄러움을 당신의 피로 덮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세상의 재판관 앞에 떳떳할 만큼 흠결 없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재판정의 수모를 뚫고 피어난 주님의 그 다함 없는 은혜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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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세상을 지배하는 얄팍한 냉소와 율법적 강박을 십자가 아래 살며시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참된 '은총의 나라'로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을 내면의 곳간에서 꺼내어 맛보며(묵상), 평안하고도 넉넉한 자유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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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거친 사막 한가운데서 뿌리를 뻗어 내리는 '야생 올리브나무'와 같습니다. 사막(세상)의 표면은 타는 듯한 열기와 메마름으로 가득 차 있어, 겉으로만 보면 생명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냉혹하고 절망적인 공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나무가 가혹한 지표면의 환경에 절망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을 향해 끈질기게 뿌리를 뻗어 내려갈 때(묵상), 마침내 결코 마르지 않는 지하의 거대한 '은총의 수맥'과 만나게 됩니다. 내 힘으로 세상의 더위를 피하려 허둥대는 수고를 멈추고, 우리의 뿌리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니라" 말씀하신 주님의 깊은 생명수에 든든히 잇대어 놓을 때, 우리는 척박한 세상 속에서도 청정한 생명의 열매를 맺어내는 푸른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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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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