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11 폭력의 칼을 거두고 은총의 잔을 들다, ‘그의 곁에 머무는 시간’

by 평화의길벗 posted Mar 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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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1-11 폭력의 칼을 거두고 은총의 잔을 들다, ‘그의 곁에 머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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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두려움 속에서 나를 지키려 빼어 든 폭력의 칼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잔을 기꺼이 받아안으시는 주님의 거룩한 순명(順命)에 나의 삶을 포개어 넣는(묵상) 은총의 안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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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제각기 품은 생명을 여린 연초록으로 밀어 올리며 대지 위에 맑은 수채화를 그리는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분주한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이따금 길을 잃은 듯 막막함을 느끼며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모호한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짙은 회의를 안고 진리를 묻고 계신 모든 분께 평화의 주님이 주시는 넉넉한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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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끊임없이 힘의 논리를 강요합니다. 남보다 더 강한 무기를 쥐어야 안전하다고 속삭이며, 위기의 순간에는 타인을 베어서라도 나를 지켜내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8장의 겟세마네 동산 풍경 역시, 폭력이라는 낡은 무기를 들고 찾아온 세상과 은총이라는 전혀 다른 질서로 맞서시는 주님의 비장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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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게 깔린 밤, 가룟 유다는 군대와 대제사장들의 아랫사람들을 이끌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든 채 동산으로 들이닥칩니다(요 18:3). 세상은 늘 진리를 위협할 때 요란한 횃불과 날 선 무기를 동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진리를 대할 때 자기 안에 확고하게 설정해 놓은 얄팍한 ‘모범답안’을 비워내야 합니다. 군호와 무기를 앞세운 무리들은 ‘힘으로 진압할 수 있다’는 폭력적인 모범답안에 갇혀 있었기에, 스스로 앞으로 나아와 "내가 그니라"고 말씀하시는 생명의 주님을 온전히 알아보지 못한 채 오히려 땅에 엎드러지고 맙니다(요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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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기의 순간, 스승을 지키겠다는 혈기에 사로잡힌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베어버립니다(요 18:10). 베드로의 칼은 세상의 위협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저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히 제동을 거십니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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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빼어 든 칼과 혈기의 언어는 관계를 단절시키고 생명을 해치는 차가운 폭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기어코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예수님의 이 순명의 언어는, 벼랑 끝에 선 영혼들을 살려내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불태우는 가장 뜨거운 생명의 온도였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짓누르지 않으시고, 도리어 당신의 십자가라는 거룩한 '잔' 속에 그 모든 폭력과 슬픔을 담아 구원의 생수로 바꾸어 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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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숭고한 은총의 잔을 우리 삶으로 받아 모시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안식입니다. 묵상은 영원한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솟아나는 이기적인 욕구와 통제되지 않는 세속적인 탐욕(칼)을 거절하고 물리치는 거룩한 쉼입니다. 내 손에 쥔 칼로 내 인생을 지켜내려던 피곤한 싸움을 멈추고,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영혼의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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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찰스 링마는 자끄 엘룰을 묵상하며, "기도(묵상)는 우리를 변화시키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므로 언제나 위험한 행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내 자아를 지키기 위해 빼어 들었던 얄팍한 방어기제들을 무장해제하고, 하나님의 낯선 은총이 내 삶을 온전히 뒤집어엎도록 나를 기꺼이 내어맡기는 치열한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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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혹시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왜 결정적인 순간에 늘 베드로처럼 혈기를 부리고 무너질까?" 자책하며 깊은 회의에 빠져 계신 분이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들 강한 칼을 쥐고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무기력하게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하는 것 같아 서러우신가요? 무언가 대단한 믿음을 증명해 내지 못해 십자가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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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변호사는 성경을 강독하며 "기도를 통해 변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도 깨닫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힘으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려움에 떠는 나 자신을 하나님의 은총에 비추어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본회퍼의 통찰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가 과거의 실패와 연약함을 안고서도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는 위대한 긍정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그 참담한 폭력과 이어질 배신의 실패조차도 용서하시고, 마침내 그를 살려내시어 당신의 양을 먹이는 다정한 목자로 빚어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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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칼을 잘 휘두르며 흠결 없이 종교적인 과업을 이루어 내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우리의 모난 인격과 두려움조차 넉넉히 품어내시는 주님의 그 맹렬하고도 무한한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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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를 증명하려던 무거운 율법적 강박과 폭력의 칼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위협하는 세상의 소음 앞에서도 "아버지가 주신 잔을 마시겠다"고 고요히 말씀하시는 주님의 곁에 앉아 그 은혜를 달게 마시십시오. 이번 한 주간, 내 힘으로 무언가를 쟁취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끝내 안아주시는 거룩한 안식(묵상) 속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시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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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거친 바위를 어루만져 마침내 눈부시게 고운 백사장으로 빚어내는 '파도(Wave)'와 같습니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바위(우리의 혈기와 욕망의 칼)는 바다를 찌르려 하지만, 넉넉한 파도는 결코 바위를 거세게 깨뜨리거나 다그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다가와 상처 난 바위를 품에 안고 영겁의 시간 동안 부드럽게 쓰다듬을 뿐입니다. 우리가 내 알량한 힘으로 세상과 맞서려는 억지스러운 수고를 멈추고, 은총이라는 부드럽지만 강력한 파도에 온몸을 맡길 때(묵상), 우리의 뾰족한 일상은 마침내 누군가 맨발로 편안히 거닐 수 있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모래톱으로 빚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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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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