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01-16 십자가의 순종을 통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고, 악한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을 끝까지 보전하시며 영생으로 이끄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by 평화의길벗 posted Mar 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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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01-16 십자가의 순종을 통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고, 악한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을 끝까지 보전하시며 영생으로 이끄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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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십자가의 때가 이르렀음을 아시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십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구하시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참된 영생을 제자들에게 주셨음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줄을 믿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지만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이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고, 세상의 미움 속에서도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되기를 간절히 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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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는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죽음을 앞둔 위대한 지도자나 아버지가 후계자들과 자녀들에게 남기는 '고별 강화' 혹은 '유언적 기도'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기도는 자신을 온전한 속죄 제물로 드리기 전, 대제사장으로서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거룩한 성별의 기도입니다.

# 신학·정경적 배경 : 요한복음 1-12장이 예수님의 사역을 다룬 '표적의 책'이라면, 13-21장은 십자가와 부활을 다룬 '영광의 책'입니다. 그중 17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온전한 영광과 연합을 보여주는 신학적 절정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실패가 아닌,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영광의 정점으로 해석하십니다.

# 철학·인문학적 배경 : 인류의 가장 깊은 실존적 두려움은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단절'과 부조리한 세상에 '홀로 남겨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체적 부재가 영적인 완전한 연합(상호 내주)을 가져올 것임을 선언하시며, '영생'을 사후 세계의 시간적 연장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창조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경험하는)' 관계로 재정의하십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때때로 진리를 따르려는 우리의 걸음을 방해하고, 까닭 없는 미움과 배척으로 우리 영혼을 위축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묵상할 요한복음 17장 전반부의 말씀은, 십자가의 고난과 이별이라는 캄캄한 밤을 앞둔 상황 속에서 오히려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의 핍박 앞에서도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진리로 보전하시며 하나 되게 하시는 주님의 크신 위로를 경험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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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십자가의 영광과 참된 영생

십자가의 대속 사역을 온전히 순종함으로 성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택하신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베푸시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며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은 그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려 하심이며,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으니, 창세 전에 가졌던 영화로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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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때"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의 때를 가리킵니다. 십자가는 수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공의가 온 우주에 선포되는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영생"은 죽은 뒤에 가는 천국의 긴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기노스코, γινώσκω)", 즉 깊은 인격적 교제와 신뢰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현재적이고 역동적인 삶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대속 사역(주신 일)을 완수하심으로 성육신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시고, 그 영광 안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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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쥐는 것을 영광이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을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나의 안일함을 희생하고 이웃을 섬기는 자리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영광의 자리입니다. 또한 우리는 영생을 미래의 막연한 보상으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속한 가정과 일터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 자체가 이미 영생을 누리는 것임을 명심하며, 날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아는 '최고의 지식'을 쌓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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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절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심과 제자들의 믿음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과 말씀을 온전히 계시하시며, 그들의 참된 믿음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영광을 받으시는 계시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중에서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고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은 본래 아버지의 것이었으나 예수님께 주어졌고,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줄 알았으며,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임을 참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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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는 것은 단순히 호칭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 그리고 구원의 뜻 전체를 온전히 계시하셨다는 뜻입니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라는 고백은 우리의 구원이 인간의 결단에 앞서 창세 전부터 택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기인함을 선포합니다. 제자들은 연약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의 신적 기원을 "참으로 알았다"고 높이 평가하시며, 그들로 말미암아 자신이 "영광을 받았다"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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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는 내 믿음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세상의 유혹 앞에서 쉽게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를 보십시오. 주님은 연약한 제자들을 향해 "이들이야말로 내 영광"이라고 하나님께 자랑스럽게 보고하십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내 능력에 있지 않고, 창세 전부터 나를 택하사 아들의 손에 맡겨주신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에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이 거룩한 자부심을 가슴에 품으십시오. 이 확신이 있다면 직장의 불의한 관행이나 세상의 조롱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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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3절 세상에 남겨진 자들을 위한 보전과 하나 됨

거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제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철저히 보호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전한 연합처럼 하나 되게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지만, 제자들은 이 험한 세상에 남겨집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실 때는 그들을 지키셨으나 이제 아버지께 부탁하시며, 제자들 안에 예수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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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아버지"라는 호칭은 구별됨과 온전함을 강조하며, 거칠고 더러운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을 거룩하게 지켜달라는 호소입니다. "보전하사"는 눈동자처럼 세밀하게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교회의 일치가 단순한 인간적 친목이나 조직적 단합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가 누리시는 본질적이고 신비적인 생명의 연합이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가룟 유다는 멸망의 자식으로 성경의 예언을 이뤘으나, 남은 제자들은 끝까지 보호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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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와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이념, 세대, 지역 갈등으로 인한 분열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가장 피를 토하듯 구하신 것은 바로 공동체의 '하나 됨'이었습니다. 우리는 나와 뜻이 맞지 않는 교우나 직장 동료를 정죄하기보다, 십자가의 긍휼로 그들을 품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온전한 연합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파도 한가운데 남겨진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에서 지금도 "내 백성을 보전하여 주옵소서"라고 중보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 든든한 대제사장의 기도를 의지할 때, 우리의 심령에는 세상의 슬픔을 덮고도 남을 주님의 '충만한 기쁨'이 샘솟듯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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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6절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의 영적 전투

세상의 미움과 박해 속에서도 제자들을 악한 자로부터 지키시며, 세상에 속하지 않은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셨기에 세상은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 같이 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그들을 세상에서 즉시 데려가 달라는 도피의 간구가 아니라, 이 세상에 머물면서도 "악(악한 자)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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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세상(코스모스, κόσμος)"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는 타락한 시스템을 뜻합니다. 제자들은 세상 밖으로 도피하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 한복판으로 파송된 자들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말씀을 품은 신자들이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는 것은 필연적인 영적 마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난을 피해 온실 속으로 도망치기를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사탄(악한 자)의 궤계에 넘어져 배교하거나 파멸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능동적인 보호를 간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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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 할 때 직장과 이웃으로부터 오해를 받고 은근한 따돌림이나 불이익을 겪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께 속한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산속의 수도원이나 현실 도피의 종교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냄새나고 부조리한 세상 한복판에 우리를 남겨 두신 이유는, 그곳에서 우리가 악에 물들지 않고 도리어 악을 이기는 거룩한 방파제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 마귀는 우리를 집어삼키려 하지만,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성벽처럼 두르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이번 한 주간도 두려움을 떨치고, 나의 일터와 가정에서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들며 거룩한 빛의 사명자로 넉넉히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뜨겁게 격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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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온 우주를 주관하시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교제로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앞둔 밤에도, 

자신을 향한 영광의 기도를 넘어 세상에 남겨질 

연약한 저희를 위해 눈물로 중보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그 애끓는 사랑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헛된 세상의 영광을 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사람들의 인정과 안락함에 

마음을 빼앗겼던 어리석은 자들임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작은 미움과 불이익 앞에서도 쉽게 타협하고, 

형제자매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분열시켰던 

우리의 교만과 완악함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이제는 치열한 일터와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임을 거룩한 자부심으로 선포하게 하옵소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성부와 성자께서 누리신 

그 신비한 연합처럼 온전히 하나 되게 하시고, 

악한 자의 어떠한 유혹과 핍박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보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제물이 되게 하시고, 

날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깊이 아는 

영생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사 세상을 이길 능력을 부어주시는,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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