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25-33 얄팍한 확신의 성벽을 허물고, 세상을 이긴 ‘관계’의 심연 속으로

by 평화의길벗 posted Mar 2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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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25-33 얄팍한 확신의 성벽을 허물고, 세상을 이긴 ‘관계’의 심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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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섣부른 확신으로 고난을 회피하려는 모범답안을 버리고, 우리가 흩어지고 넘어질 것까지 미리 품어 안으시며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선언하시는 주님의 생명 살리는 ‘관계(묵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은총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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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온기가 얼어붙었던 대지를 다정히 녹여내고,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빛깔로 경이로운 꽃망울을 터뜨리는 2026년 3월의 끝자락입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저마다의 무거운 삶의 짐을 짊어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모호한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신앙의 회의를 안고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께 평화의 주님이 주시는 넉넉한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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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늘 우리를 거세게 흔들어 놓습니다.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고난과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우리의 믿음은 자주 길을 잃고 비틀거립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6장 후반부의 다락방 강화는, 십자가라는 거대한 폭풍우를 앞두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제자들의 나약함과, 그들의 참담한 실패마저 고스란히 끌어안으시는 예수님의 먹먹한 사랑을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닌 밝은 말씀으로 당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예고하시자, 제자들은 불현듯 자신감에 차올라 외칩니다.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믿나이다"(요 16: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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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고백은 무척이나 당당하고 결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대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자기 욕망으로 빚어낸 얄팍한 '모범답안'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 없이, 눈앞의 두려움을 단숨에 해결해 줄 승리하는 메시아라는 편의적인 모범답안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믿노라"는 선언은 닥쳐올 고난 앞에서 산산조각 날 허약한 유리성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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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그들의 섣부른 확신을 서늘하게 깨우치십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요 16: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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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내뱉은 맹세의 언어는 그 순간만큼은 뜨거웠을지 모르나, 현실의 위협 앞에서는 금세 싸늘하게 식어버릴 깃털처럼 가벼운 언어였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사랑과 헌신 없이 겉치레의 말만 앞세울 때, 사람의 마음을 결코 움직일 수 없는 얄팍한 "말하기 기술자" 혹은 "서사 기술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비극 앞에서 뿔뿔이 흩어질 제자들의 맹세는,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는 본능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기술적인 언어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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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본문에서 가장 가슴 벅찬 은혜는, 제자들의 배신과 실패를 예고하신 직후에 이어지는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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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너희가 나를 버리고 도망칠 테니 당장 회개하고 믿음을 증명해 내라"고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환난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꽁무니를 뺄 그들의 연약한 뒷모습까지도 미리 품어 안으시며, 당신이 십자가로 이룩하실 '승리'와 '평안'을 값없는 선물로 내어주십니다. 이 맹렬하고도 다정한 주님의 사랑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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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을 다시 생각하다』에서 박대영 목사님은 묵상을 가리켜 "관계"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묵상의 본질을 설명하며 텔레비전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지안'의 이야기를 곁들여 들려줍니다. 평생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짓밟혀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냉소적으로 살던 지안이, 처음으로 조건 없는 호의를 베푸는 한 '어른'을 만나 사람다운 대접을 경험하고는 "처음으로 살아봤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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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문자를 쪼개어 분석하는 건조한 지적 노동이 아닙니다. 세상의 잣대와 나의 거듭된 실패에 치여 상처 입은 채 웅크린 우리를 친히 찾아오셔서, 생명이 되고 안식이 되고 자유가 되는 ‘참된 관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그 압도적인 사랑을 뼈저리게 들이마시는 일입니다. 내 힘으로 구원의 자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처투성이인 나를 살려내시는 그 다정한 관계에 온전히 접속하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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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혹시 "나는 왜 번번이 결심하고도 세상의 유혹 앞에 속절없이 무너질까?" 자책하며 짙은 회의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남들처럼 번듯한 믿음을 증명해 내지 못해 십자가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두려움에 쫓겨 완벽한 모범답안을 제출해야만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실 것이라는 강박에 짓눌려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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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무거운 증명의 짐을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무결점의 영웅이 되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진 우리의 가장 초라하고 남루한 자리까지 친히 걸어오셔서, "담대하라, 내가 이미 세상을 이겼다"고 속삭여 주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고난의 파도를 자력으로 헤쳐 나가는 우리의 얄팍한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우리를 기어코 끌어안으시는 주님의 그 넉넉하고 완전한 승리에 매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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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내 알량한 힘으로 이 세상을 이겨내려 발버둥 치는 피곤한 수고를 멈추고, 우리를 가장 온전한 관계(묵상) 속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은총 안에서 참된 쉼과 담대한 평안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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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광활한 바다 밑을 흐르는 '심층수'와 같습니다. 바다의 표면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요동치며, 거센 태풍(세상의 환난과 우리의 실패)이 몰아칠 때면 금방이라도 세상을 집어삼킬 듯 사납게 일렁이고 부서집니다. 그러나 수천 미터 아래,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는 그 어떤 지상의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장엄한 고요와 평화의 물결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내 힘으로 표면의 거친 파도를 잠재우려 허둥대는 헛된 수고를 멈추고, 묵상을 통해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선언하시는 주님의 은총이라는 무거운 닻을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심해에 든든히 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넉넉한 평안을 호흡하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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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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