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1-15 진리의 영이 비추시는 낯선 은총, 그 눈부신 자리로

by 평화의길벗 posted Mar 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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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1-15 진리의 영이 비추시는 낯선 은총, 그 눈부신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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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타인을 향해 폭력적인 정답을 강요하는 세상의 잣대에서 벗어나, 슬픔에 잠긴 우리를 홀로 두지 않고 찾아오시는 진리의 성령 안에서 생명의 언어를 덧입는(묵상) 은혜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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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의 일상에 잔잔히 스며들기를 빕니다. 창문을 열면 훅 끼쳐오는 매화 향기가 코끝을 맴돌고, 보드라운 봄비가 세상의 해묵은 먼지를 고요히 씻어내는 2026년 3월의 끝자락입니다. 분주하고 고단한 삶의 쳇바퀴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모호한 현실 속에서 흔들리며 참된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께 하늘의 넉넉한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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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때때로 참으로 폭력적입니다. 각자의 굳어진 신념을 무기 삼아 타인을 배제하고 상처 입히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6장의 다락방 강화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세상 속에서 겪게 될 캄캄한 핍박을 예고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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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입니까? 사람을 죽이고 억압하면서도 그것이 신을 향한 헌신이라고 굳게 믿는 맹신 말입니다. 송민원 교수는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진리를 대할 때 반드시 두 가지와 싸워야 한다고 통찰합니다. 하나는 이미 교회와 학교에서 배워 굳어져 버린 ‘모범답안’과의 싸움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을 내가 원하는 식으로만 읽어내려는 ‘자신의 욕망’과의 싸움입니다. 당시의 핍박자들은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종교적 ‘모범답안’에 갇혀 있었기에, 사랑과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을 철저히 짓밟으면서도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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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작가가 일찍이 언어의 본질을 살피며 통찰했듯, 인간의 신념과 말은 저마다의 ‘온도’를 지닙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웃을 찌르는 세상의 언어는 영혼을 얼어붙게 하는 차가운 폭력이지만, 고난의 현실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려주시며 제자들을 품어 안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벼랑 끝에 선 영혼을 살려내는 가장 따뜻한 생명의 온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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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장 십자가의 이별을 앞둔 제자들의 마음에는 “근심이 가득”했습니다(요 16:6). 스승을 잃고 험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질 것 같은 깊은 우울과 두려움이 그들을 덮쳤습니다. 한동일 변호사는 우리 삶에 밀려드는 깊은 우울감이 때로는 세상의 부조리와 무고한 죽음에 대한 ‘연결된 고통’일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폭력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슬퍼하는 제자들의 그 찢긴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고 체휼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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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주님은 절망에 빠진 이들을 향해 역설적인 은총을 선언하십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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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힘과 권력으로 무장하라고 다그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Paraclete)’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요 16:8). 또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부드럽게 인도하실 것입니다(요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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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벅찬 성령의 임재와 인도를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실로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낯섦을 회복하는 여정”입니다. 묵상은 세상이 주입한 낡은 가치관과 폭력적인 모범답안을 부수고, 내게 길들여진 하나님 밖에서 나에게 참된 진리를 계시하시는 낯선 성령의 음성에 눈을 뜨는 우상 파괴의 과정입니다. 또한 묵상은 단순히 문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라, 시인이 진물을 잉크 삼아 온몸으로 시를 줍듯이 “온 몸으로 이행하는 사랑의 사건”이며, 그 과정을 통해 마침내 “하나님의 언어를 얻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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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왜 늘 세상의 유혹에 흔들릴까?”, “내 믿음은 왜 이리도 무기력하고 초라할까?” 하며 깊은 회의와 자책감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번듯한 헌신과 열매를 증명해 내야 한다는 율법적인 강박에 짓눌려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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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무거운 증명의 짐을 십자가 앞에 살며시 내려놓으십시오. 한동일 변호사가 깨달았듯,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힘은 오직 “우리는 모두 은총이 가득한 사람입니다”라는 위대한 자각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구원과 성숙은 우리가 완벽한 교리를 꿰뚫거나 실수 없이 살아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에 잠겨 길을 잃은 우리 곁에 보혜사 성령께서 친히 다가오셔서, 굳은 마음을 도려내시고 당신의 다정한 언어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주시는 그 맹렬하고도 압도적인 사랑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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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타인을 정죄하던 세상의 차가운 잣대들을 버리고, 우리를 온전한 진리로 안내하시는 보혜사 성령의 숨결을 묵상으로 깊이 들이마시십시오. 그 은혜 안에서 슬픔이 변하여 찬란한 기쁨이 되는 복된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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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풍경(風磬)’과 같습니다. 풍경 스스로는 제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맑고 깊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그저 스스로를 비워둔 채 매달려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람(성령)’이 다가와 그 빈 공간을 어루만지고 지나갈 때, 풍경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달으며 세상을 향해 가장 맑고 청아한 하늘의 은율(恩律)을 울려 퍼지게 합니다. 내 힘으로 진리를 깨닫고 삶을 증명해 내겠다는 억지스러운 수고를 멈추고,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보혜사 성령의 바람결에 우리 영혼을 온전히 내어맡길 때(묵상), 우리의 고단한 일상은 캄캄한 세상을 위로하는 가장 아름다운 은총의 소리로 울려 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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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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