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47-57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욕망, 그 아이러니를 넘어선 은혜

by 평화의길벗 posted Mar 0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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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47-57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욕망, 그 아이러니를 넘어선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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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비열한 정치적 계산조차도, 그 계산의 수면 아래에서 놀라운 구원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주권이라는 아이러니를 감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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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의 햇살은 만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지만, 사람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싸늘한 두려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후반부는 바로 이 '두려움'에 대한 냉정한 해부로 시작됩니다. 나사로의 소생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기적 앞에서, 예루살렘의 종교 기득권층—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로 이루어진 산헤드린 공회—이 보여준 반응은 경이로움이 아닌 정치적 공포였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요11:48, 개역한글).


이들이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 땅과 민족'이라는 지극히 현세적이고 기득권적인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진리가 아니라,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요소일 뿐이었습니다. 송민원 교수가 성경을 해석하며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고 말했듯이, 이들이 예수 앞에서 던져야 했던 근본적인 질문은 '당신은 누구십니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던진 질문은 '우리의 안전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지극히 자폐적인 물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의 열심마저도, 실상은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고 내세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종교적 이기심'에 머무를 때가 많습니다. 진정한 묵상(默想)은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동기를 깊이 성찰하는 행위입니다. 묵상은 '어떻게 하면 내가 안전해질까'라는 계산을 멈추고, '하나님은 지금 이 고통과 혼란 속에서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내면의 정직입니다. 한동일 교수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 결국 우리가 세상 속에서 홀로 서는 힘은 '용기'에서 나오지만, 그 용기는 '있는 것을 본 그대로 인정'하는 정직한 자기 직면에서 출발합니다.


이 어두운 정치적 계산의 한가운데, 놀라운 아이러니가 터져 나옵니다.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말합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요11:50, 개역한글).


요한복음 저자는 이 발언이 가야바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 그가 대제사장이었기에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는 신적 예언이었음을 밝힙니다 (요11:51-52).


인간의 입에서 나온 가장 비열하고 냉정한 '정치적 효용성(utility)'의 언어—'한 사람이 희생되면 모두가 산다'는—가, 하나님의 손에서는 '온 인류를 위한 구원(salvation)'이라는 가장 고귀하고 따뜻한 사랑의 언어로 변모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깊은 아이러니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제거함으로써 자기들의 '자리'를 지키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 제거 행위 자체를 이용하여 온 세상의 '자리'를 회복시키는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실패, 실수, 그리고 남을 향한 얄팍한 계산들 때문에 스스로를 정죄하거나 신앙의 회의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이나 때로는 악한 의도마저도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해야 할 것들'을 강조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숨 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아시고서도 유대를 떠나 에브라임이라는 곳으로 물러가셨습니다 (요11:53-54). 이는 회피가 아니라,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아는 주권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고난 속에서 신앙에 회의를 품고 계신 이들이여. 복음은 우리에게 '너희가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채찍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실패하고, 흩어지고, 심지어 예수를 배반하려 했을 때조차도, 나는 너희를 모아 하나 되게 하는 길을 준비했다'고 선포합니다.


이기주 작가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듯,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와 그 말에 담긴 공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입니다. 우리는 계산과 두려움에 갇혀 예수를 제거하려 했던 산헤드린이 될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악한 계산까지도 삼켜버린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 앞에 무릎 꿇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묵상의 여정은,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찾아오셔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그 사랑의 부름(Calling)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모든 계산과 두려움을 그 부름 앞에 내려놓고, 흩어진 우리를 모아 하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유로이 살아가는 것, 그뿐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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