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8:21-30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영원한 말씀(I AM)으로 오사, 십자가의 ‘들림’을 통해 참 생명의 길을 여시는 예수 그리스도

by 평화의길벗 posted Feb 24,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요한복음 08:21-30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영원한 말씀(I AM)으로 오사, 십자가의 ‘들림’을 통해 참 생명의 길을 여시는 예수 그리스도

*

초막절 명절을 배경으로 한 성전 논쟁의 연속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예고하시며,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은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살하려는 것인지 조롱하며 오해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아래(세상)'에 속했고 자신은 '위(하늘)'에서 왔음을 명확히 하십니다. 유대인들이 "네가 누구냐"고 묻자, 예수님은 자신이 태초부터 말해 온 자이며 오직 아버지께 들은 것만 전한다고 하십니다. 마침내 인자가 십자가에 '들린'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이심(Ego Eimi)을 알게 될 것이며, 항상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기에 결코 혼자 있지 않음을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

# 역사·문화적 배경 :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 여인의 뜰 헌금함 곁에서 이루어진 대화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자살'은 가장 끔찍한 죄 중 하나로 여겨져 가장 깊은 음부(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가는 곳에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하시자, 유대인들이 "저가 자결하려는가?"라고 반응한 것은 지독한 조롱과 멸시가 담긴 적대적 표현입니다.

# 신학·정경적 배경 : 본문은 철저한 이원론적 대조(아래와 위, 이 세상과 하늘, 빛과 어둠)를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님이 "내가 그인 줄(I AM)"이라고 말씀하신 헬라어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는 출애굽기 3:14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적 자기 계시를 예수님 자신에게 적용하신 엄청난 선언입니다.

# 철학·인문학적 배경 : 본문은 인간의 지식과 경험 축적에만 의존하는 '아래의 지혜'로는 '위로부터 온' 초월적 진리를 결코 인식할 수 없다는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뼈아프게 고발합니다.

# 세상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아래의 것들'로 우리의 가치를 평가하려 하지만, 오늘 주님은 우리를 '위의 것', 곧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초청하십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오간 이 깊고도 엄숙한 대화를 통해,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녹아내리고 참된 생명의 주님을 깊이 만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 21-24절 위에서 오신 예수님, 아래에 속한 유대인들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책망하시며, '스스로 계신 하나님(Ego Eimi)'이신 성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시는 생명의 주관자. 

.

예수님이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는 가고,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며,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살하려는 것이냐며 비아냥거립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이 세상에 속하였으나, 나는 위에서 났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선포하시며, "내가 그인 줄(에고 에이미)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경고하십니다.

.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 여기서 '죄'(ἁμαρτία, 하마르티아)는 단수형으로 사용되어, 개별적인 도덕적 잘못이라기보다는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근원적인 불신앙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참 빛을 찾지 못하면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아래에서 났고 / 위에서 났으며 : 세상의 지혜는 인간의 경험(아래)에 의존하기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위)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내가 그인 줄(에고 에이미) 믿지 아니하면 : 이 짧은 구절은 요한복음 구원론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곧 구약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여호와 하나님, 영원히 자존(自存)하시는 창조주이심을 믿어야만 죽음과 죄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삶은 철저히 '땅(아래)'을 딛고 살아갑니다. 자녀 교육, 재정 문제, 직장에서의 생존 경쟁은 우리를 '이 세상에 속한 자'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향해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늘의 시민"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문제 해결사' 정도로만 여긴다면, 우리 역시 "설마 자살하려는가?"라고 반문했던 유대인들의 수준에 머무는 것입니다.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 이번 한 주간, 내 시선을 아래의 문제들에만 고정하지 말고, 눈을 들어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진정으로 믿을 때, 비로소 세상을 이길 담대함과 자유가 우리 심령에 찾아올 것입니다.

*

# 25-27절 처음부터 말하여 온 자

태초부터 계신 말씀(Logos)으로서, 사람의 뜻이 아닌 오직 성부 하나님께 들은 진리만을 세상에 선포하시며 영적 맹인들을 일깨우시는 진리의 하나님.

.

유대인들이 "네가 도대체 누구냐?"고 묻자, 예수님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고 답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판단하고 책망할 말이 많지만, 오직 자기를 보내신 참되신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만을 세상에 말한다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

처음부터 말하여 온 자니라 : 헬라어 '텐 아르켄(τὴν ἀρχὴν)'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말씀(Logos)이심을 뜻하는 동시에, 사역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진리를 가르쳐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행동이 일치되는 분입니다. 반면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이며 거짓말쟁이입니다(8:44).

참되신 이에게 들은 것을 말하노라 : 예수님은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으시고 철저한 '피파송 의식(대리자로서의 순종)'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유대인들)의 조롱 앞에서도 자신의 감정이나 분노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가 주신 진리만을 전달하셨습니다.

깨닫지 못하더라 : 유대인들의 완악함과 영적 무지를 보여줍니다. 눈앞에 진리 자체가 서 계심에도, 자신들의 전통과 기득권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있었기에 생명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

우리는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서도 가끔 "주님, 도대체 주님은 내게 어떤 분이십니까?"라고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상황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때 주님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생명과 사랑을 말해 온 자다"라고 다정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역시 직장이나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내 감정과 혈기로 분노하고 판단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 앞에서도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하셨습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 억울할 때, 사람의 말로 변명하기보다 예수님처럼 묵묵히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살아내는 침묵의 순종을 배워봅시다. 그것이 광양 땅에, 세상 한복판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언이 될 것입니다.

*

# 28-30절 십자가의 들림과 아버지와의 연합 

십자가에 높이 들리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시고, 언제나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에 절대 순종함으로 삼위일체의 온전한 연합을 누리시는 영광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예수님은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하는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며,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

인자를 든 후에 : '들다(ὑψόω, 휩소오)'라는 단어는 아주 깊은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로마의 사형 틀인 '십자가에 못 박혀 높이 매달리는 죽음'을 뜻하지만, 영적으로는 그 죽음이 곧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영광(승귀)'임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입니다. 과거 모세가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자들을 살리기 위해 장대 위에 놋뱀을 높이 든 것(요 3:14)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인류의 죄 사함과 구원이 완성됩니다.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 십자가라는 가장 끔찍한 수치와 외로움의 길을 향해 가시면서도,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항상 함께하심(임마누엘)을 확신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항상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순종)'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완전한 순종의 승리입니다.

.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가장 비참한 패배요, 수치스러운 형틀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자리입니다. 우리 장년 성도님들 중에는 남모르게 지고 가는 무거운 십자가가 있을 것입니다. 질병의 고통, 깨어진 관계의 아픔, 재정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혼자 버려두신 것은 아닐까?"라는 깊은 고독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보십시오. 인자가 높이 '들려진' 그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그 순종의 걸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고아처럼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희생과 섬김의 자리가 있다면 피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웃과 가족을 위해 기꺼이 썩어지는 밀알이 될 때, 그곳이 바로 생명의 부활이 시작되는 영광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

# 거둠의 기도

생명의 근원이시며 참된 빛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어둠과 절망뿐인 이 세상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참된 진리의 말씀으로, 

위로부터 친히 찾아오신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때로 유대인들처럼 

알량한 내 경험과 세상의 기준으로 주님을 판단하려 했고, 

내 욕망을 채워주지 않으신다며 주님을 향해 

원망의 화살을 쏘아대기도 했음을 회개합니다.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신 

엄중한 경고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섭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눈에 보이는 '아래의 것들'에 목숨 걸지 않게 하시고,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관자이신 '에고 에이미'의 주님을 

온전히 나의 구주로 영접하게 하옵소서. 

억울한 오해와 조롱 앞에서도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전하셨던 주님을 본받아,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 혈기를 죽이고 

주님의 진리를 살아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십자가에 높이 들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내 삶의 무거운 십자가를 질 때에 

나를 결코 혼자 버려두지 아니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내가 먼저 철저히 순종하고 희생할 때, 

그 고난의 자리가 훗날 가장 찬란한 영광의 자리가 됨을 믿고 

오늘도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참된 진리이자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