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6:60-71 영생의 말씀이시며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예수 그리스도
*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시자, 많은 제자가 이 말씀을 어렵게 여기고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무익함을 가르치시지만, 육적인 기대를 품었던 무리는 결국 돌아서고 맙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시고,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임을 고백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셨으나 그중 하나는 마귀라고 말씀하시며 가룟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십니다.
*
# 역사적, 문화적 배경 :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주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끊임없이 육적인 떡을 주어 경제적 풍요를 해결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피째 먹지 말라는 레위기 율법에 익숙한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혐오감과 문화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 신학적 배경 : 본문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거르는 '여과기'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은 표적(기적)을 보고 육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모인 군중들의 세속적 기대를 산산조각 내십니다. 영생은 신비주의적인 불로장생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예수님과 전인격적으로 연합하여 이웃과 세상을 살리는 대속의 삶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는 호칭은 공관복음의 고백과 달리, 예수님이 하나님께 속한 거룩성을 지니신 분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강조하는 요한복음 특유의 기독론적 표현입니다.
#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요한복음 6장 후반부의 말씀은, 세상의 썩어질 양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깊은 초대입니다. 때로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질지라도, 그 안에 담긴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고 참된 위로와 새 힘을 얻으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 60-63절 육의 한계를 깨뜨리시고 영과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성령의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제자가 "이 말씀이 어렵도다"라며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느냐고 물으시며, 인자가 원래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리고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무익하고, 내가 이른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
'어렵도다'로 번역된 헬라어 '스클레로스(σκληρός)'는 단순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받아들이기 거북하고 거칠다'는 의미로, 그들의 기존 신관과 세계관에 정면으로 부딪혔음을 보여줍니다. '걸림이 되느냐(스칸달리조, σκανδαλίζω)'는 함정에 빠져 실족하게 한다는 뜻으로, 십자가의 도가 불신자들에게는 넘어지는 돌이 됨을 의미합니다. '인자의 올라감(62절)'은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선 부활과 승천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육(인간의 이성, 도덕적 노력, 세속적 욕망)'으로는 결코 영생에 이를 수 없고, 오직 위로부터 오는 '영(성령)'만이 생명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레마, ῥῆμα) 자체가 우리를 살리는 창조적이고 생명력 있는 능력입니다.
.
바쁘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30-60대를 살아가는 우리 장년 성도님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와 경제적 안정(육의 양식)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때때로 교회에 와서도 '내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예수님'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이웃을 위해 네 삶을 내어주라"고 요구하실 때, 우리는 "이 말씀은 너무 어렵다, 현실과 맞지 않다"며 부담스러워하지 않습니까? 내 이성과 경험이라는 낡은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내 노력(육)으로는 가정을 진정으로 살릴 수 없고, 영적 허기를 채울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만이 우리의 심령과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내 지식으로 말씀을 판단하지 말고, 나를 살리는 영의 말씀 앞에 겸손히 항복하는 한 주가 됩시다.
*
# 64-66절 인간의 숨은 동기를 다 아시며, 오직 은혜의 이끄심으로만 참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주권자 하나님.
예수님은 무리 중에 믿지 않는 자들과 자신을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예수님께 올 수 없다고 다시 강조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는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
예수님의 전지하심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겉모습이나 환호에 속지 않으시고, 그들의 속마음과 불신앙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65절은 구원의 전적인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지혜나 능력으로 메시아를 알아볼 수 없으며, 오직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66절에서 제자들이 '물러갔다'는 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육신적인 떡과 세속적인 왕을 기대했던 자들이,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요구하는 예수님의 본질을 깨닫고 미련 없이 등을 돌린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안에도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되고 병이 낫는다'는 기복적인 기대(오병이어의 떡)를 가지고 모인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고난과 희생, 헌신을 요구하실 때, 혹은 내 뜻대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주님을 등지고 떠나갑니까? 우리는 표적을 구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지금 주님 곁에 남아 있는 이유가 '세상의 떡' 때문입니까, 아니면 '주님 자신' 때문입니까? 신앙생활의 시련기야말로 우리의 진짜 믿음이 드러나는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 유익을 좇아 떠날지라도, 우리 사랑의교회 성도님들은 나를 택하시고 이끌어주신 아버지의 주권적인 은혜에 감사하며 끝까지 좁은 길을 걷는 신실한 제자가 되기를 권면합니다.
*
# 67-69절 생명의 말씀이심을 깨닫고, 당신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고백하는 성도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진리의 하나님.
많은 사람이 떠나자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대표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
예수님의 질문은 제자들에게 확고한 결단과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첫째,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곧 영생을 주는 말씀임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는 완료 시제는 그들의 믿음이 일회적인 감정이 아니라 굳건하게 확립된 지속적인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셋째,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는 고백은 예수님이 세상과 구별된 신적 존재이시며, 하나님을 온전히 계시하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구별하신 거룩한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요한복음의 핵심 기독론입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에 물들어 "왜 꼭 예수만 믿어야 하느냐"며 기독교의 유일성을 조롱합니다. 경제적 위기, 자녀 문제, 건강의 적신호가 찾아올 때, 세상은 우리에게 돈이나 사람, 혹은 다른 처세술을 의지하라고 유혹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희도 세상 사람들처럼 가려느냐?" 그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눈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위로도, 철학도, 돈도 우리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흔들리는 삶의 한복판에서, 주님만이 나의 유일한 진리이시며 생명임을 고백하며, 말씀에 깊이 뿌리내리는 장년 성도님들의 가정이 되시기를 따뜻하게 축복합니다.
*
# 70-71절 악인의 배신까지도 구원 역사의 도구로 사용하시며, 묵묵히 대속의 길을 걸어가시는 섭리의 하나님.
베드로의 감격스러운 고백 직후, 예수님은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이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가 장차 예수님을 팔 자라고 부연 설명합니다.
.
열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하시고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무리 안에도 '마귀(디아볼로스)', 즉 사탄의 도구가 되어 예수님을 대적할 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정체를 처음부터 아셨음에도 그를 택하시고 끝까지 품으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고, 십자가 구속의 길을 향한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추악한 배신조차도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을 무너뜨릴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
가룟 유다의 존재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거운 영적 경각심을 줍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고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며 겉으로는 가장 가까운 제자처럼 보일지라도, 그 중심에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고 자신의 탐욕만이 자리 잡고 있다면 결국 주님을 배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내 성공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가룟 유다의 마음'은 없는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말씀은 크나큰 위로가 됩니다. 주님은 인간의 악함과 배신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연약함과 실패조차 아시면서 끝까지 품어주시는 그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
# 거둠의 기도
우리의 생명과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썩어질 양식과 세상의 성공을 좇아 살아가며,
주님의 말씀이 내 뜻과 다를 때면 쉽게 불평하고 돌아서려 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육신의 피곤함에 짓눌려
영적인 목마름을 잊고 살았던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제는 오병이어의 기적만을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버리고,
십자가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신
주님의 그 깊은 사랑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세상 사람들이 다 주님을 떠날지라도,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는
베드로의 이 절절한 고백이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심령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살아있는 신앙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에 보이는 상황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굳게 붙어
결코 실족하지 않는 복된 가정,
은혜의 일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살리는 영원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