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16-29 풍랑을 가르는 음성, 허기를 넘어 생명으로

by 평화의길벗 posted Feb 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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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16-29 풍랑을 가르는 음성, 허기를 넘어 생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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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인생의 밤바다에서 마주하는 두려움을 넘어,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고 썩을 양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관계 속으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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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바다에 어둠이 내리고 거친 바람이 일어납니다. 제자들은 노를 저어 가버나움으로 향하지만, 몰아치는 파도와 짙은 어둠은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인생의 밤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평온하던 일상이 뒤집히고, 우리가 의지하던 경험과 기술이 무용지물이 될 때 우리는 깊은 고립감과 공포를 느낍니다. 그때, 파도 위를 걸어오시는 낯선 형체가 보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 때, 어둠을 뚫고 들려온 한마디는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요 6:20)는 서늘하고도 따스한 수인사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풍랑이 잔잔해지기만을 구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풍랑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오셔서 '당신의 현존' 자체가 곧 평화임을 보여주십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고 했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흐르는 시간과 요동치는 풍랑 너머에 계신 영원한 분을 응시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혹은 더 뜨거운 신앙을 갈망하는 이들이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기적은 풍랑이 멈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그 파도를 딛고 오시는 주님을 우리 인생의 배에 기쁘게 '영접'하는 데 있습니다.


이튿날,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군중들이 예수를 찾아 다시 몰려듭니다. 그들은 배부름의 만족을 잊지 못해 예수를 쫓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속내를 꿰뚫어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 사람들은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우리는 늘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대답은 명쾌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는 자꾸만 손에 잡히는 떡, 눈에 보이는 표적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떡의 노예'가 아니라 '생명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썩을 양식은 먹어도 다시 배고프지만,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믿고 그분과 사귀는 삶은 우리 영혼의 근원적인 허기를 채워줍니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배를 타고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 순례자들입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나를 증명하려는 헛된 수고를 내려놓고 우리 곁에 다가오신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 음성을 붙들고 오늘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가장 적극적인 신앙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빛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풍랑 너머의 해안가에 안전하게 닿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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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16-29 어둠의 바다를 건너는 ‘두려움’의 시간, 그 위로 걸어오시는 ‘현존’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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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풍랑이 이는 삶의 바다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일’은,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떠는 우리에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며 다가오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우리 배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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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때때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마음이 스산해지지는 않으신지요. 저마다의 사연과 무게를 짊어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모호함 속에서 여전히 길을 찾고 계신 모든 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때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떠 있는 작은 배와 같습니다. 열심히 노를 저어보지만, 역풍은 불고 목적지는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6장의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그 황홀했던 잔치가 끝난 후 제자들은 어둠 속에서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지 않으셨고,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났습니다(요 6:17-18). 성경은 이 장면을 담담하게 기록하지만, 그 행간에는 제자들의 거친 숨소리와 두려움이 배어 있습니다. 인생의 밤, 예수가 부재한 것 같은 시간, 그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존재의 밑바닥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그 절망의 순간,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오십니다.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요 6:20). 이기주 작가는 “말은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거친 파도 소리를 뚫고 들려온 예수님의 이 짧은 한마디는 차가운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공포에 질린 제자들의 어깨를 감싸 안는 따뜻한 ‘체온’이 담긴 음성이었습니다. “나다. 너희가 아는 그 사람이다. 그러니 안심하라.” 이 말씀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현존(Presence)’을 통해 우리를 안돈(安頓)시키는 사랑의 선언입니다.


날이 밝자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들은 기적의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열광적으로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 6:28). 송민원 교수는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모범답안을 확인하려 하거나,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으려는 욕망을 비워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리들은 ‘하나님의 일’을 자신들의 노력으로 성취해낼 수 있는 어떤 과업(Task)으로 오해했습니다.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얼마나 더 바쳐야 합니까?” 이것은 오늘날 성과주의 사회에 길들여진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대답을 내놓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요 6:29). 신앙은 ‘doing(함)’의 문제가 아니라 ‘being(됨)’과 ‘believing(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니라, 풍랑 이는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나를 알아보고, 나를 신뢰하고, 나를 너희 삶의 중심에 맞아들이는 것, 그것 하나뿐이라고 말입니다.


이 깊은 신뢰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빨리 노를 저어라, 더 많은 떡을 확보하라”고 소리칩니다. 묵상은 그 소란스러운 욕망의 질주를 멈추고(Stop), “아니요”라고 말하는 거룩한 저항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바다를 건너려던 헛된 노력을 멈추고, 내 배에 오르시는 주님을 영접하여 그분과 대화하며 그분의 평화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쉼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무게에 눌려 신앙에 대한 회의를 품고 계신 분들이여, 낙심하지 마십시오. 한동일 변호사는 “일어나 가자”라고 말하며,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은 내 의지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임을 역설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풍랑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것만은 아닙니다. 혹은 썩어질 양식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 곁에 다가오신 주님을 알아보고, “주님, 제 배에 오르십시오”라고 환대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기뻐서 배로 영접했을 때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습니다 (요 6:21).


이번 한 주간,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으십시오. 대신 거친 파도 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 신뢰와 믿음 안에서 우리의 흔들리는 삶은 비로소 평안의 항구에 닿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의 ‘닻(Anchor)’과 같습니다. 배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파도와 싸우거나 바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깊은 바닥, 움직이지 않는 반석에 닻을 내리면, 배는 여전히 흔들릴지언정 떠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에 믿음의 닻을 깊이 내릴 때, 우리 인생은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넉넉히 머물 수 있습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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