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6:16-29 인생의 풍랑 위를 걸어오셔서 두려움을 잠재우시고, 썩을 양식이 아닌 영생의 양식을 주시는 생명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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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기적 후,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향하던 중 거센 바람과 파도를 만납니다. 두려움에 떨던 그들에게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어 오셔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키시고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십니다. 이튿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예수님을 찾아온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썩을 양식이 아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이란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정의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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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적 배경 : 갈릴리 호수는 지형적 특성상 갑작스러운 돌풍이 자주 일어나는 곳입니다. 제자들은 어부 출신이었음에도 이 자연의 위력 앞에 무력했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중심지였습니다.
# 신학적 배경 :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은 구약에서 바다의 파도를 밟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욥 9:8, 시 77:19)을 연상시키며,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냅니다. "내니(에고 에이미)"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3장 14절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와 연결됩니다.
# 문화적 배경 : 당시 무리들은 메시아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경제적 풍요(만나)를 줄 정치적 왕으로 기대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당시 랍비와 제자의 도제 관계를 넘어서는 생명적 연합을 지향합니다.
#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많이 일하라", "더 많이 소유하라"고 재촉하지만,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썩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초청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인생의 풍랑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고, 참된 믿음의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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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1절 풍랑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 인생의 어두운 밤과 풍랑 속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친히 물 위를 걸어오셔서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며 즉각적인 평안과 구원을 주시는 전능하신 창조주.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향합니다. 이미 어두워졌고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는데,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납니다.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갔을 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은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고, 제자들이 기뻐하며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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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훈련 :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군중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왕 삼으려 할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바다로 보내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세상의 헛된 영광에 휩쓸리지 않게 하려는 훈련이었습니다. 캄캄한 밤, 거센 풍랑은 우리 인생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내니(Ego eimi)" :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나다(It is I)"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자기 신원 확인을 넘어,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이다"라는 신적 현현의 선포입니다. 창조주이신 주님이 피조물인 바다를 밟고 오셨기에 풍랑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영접함 :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자마자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주님의 임재가 곧 문제의 해결이자 평안의 항구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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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가는데도 인생의 밤을 만나고 풍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사업의 어려움, 자녀 문제, 건강의 위기가 예고 없이 닥쳐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이 안 계신 것 같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주님은 풍랑을 밟고 우리에게 오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풍랑을 잠재우는 기술이 아니라,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는 영적인 눈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주님을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기쁨으로 영접하십시오. 주님이 타시면 풍랑은 잔잔해지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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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4절 예수님을 찾는 무리들 :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열심을 내어 주님을 찾지만, 정작 표적의 참된 의미는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꿰뚫어 보시는 전지하신 하나님.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는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없었고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가지 않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곳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배들을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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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들의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추적하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면서까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들의 열심을 긍정적으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찾음은 육신적인 필요(떡)에 기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Sign)이 가리키는 영적인 실체에는 관심이 없었고, 당장 눈앞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능력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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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동기로 주님을 찾고 있습니까? 주일에 교회에 나오고, 새벽에 기도하는 우리의 열심이 혹시 나의 성공, 건강, 문제 해결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지만, 단지 '문제 해결사'로만 주님을 찾는다면 우리는 2천 년 전의 무리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주님을 찾는 신앙에서, 주님 그분 자체를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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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7절 썩을 양식과 영생의 양식 :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무리에게 썩을 양식이 아니라 인자가 주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촉구하시는 생명의 공급자.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만난 무리가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그들의 중심을 찌르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그리고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시며, 이 양식은 인자가 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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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의 폭로 : 예수님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정확히 아십니다. 그들은 '표적(메시아 되심의 증거)'을 본 것이 아니라 '떡(물질적 이득)'을 보았습니다.
두 종류의 양식 : '썩을 양식'은 세상의 재물, 명예, 육체적 만족 등 일시적이고 결국 사라질 것들을 의미합니다. 반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인자의 권위 : 이 영생의 양식은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치신(보증하신) 인자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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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역은 산업도시이기에 '일하는 것'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곳입니다. 우리는 가족을 부양하고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이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묻으십니다. "너의 수고의 최종 목적이 무엇이냐? 그것이 영원히 남는 것이냐?" 우리의 직장 생활과 경제 활동이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썩을 양식)' 해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영혼을 살리며, 예수님을 전하는 '영생의 양식'을 위한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통장에 쌓이는 잔고보다 내 영혼에 쌓이는 은혜가 더 중요함을 기억합시다. 이번 한 주, 썩어질 것을 위해 염려하기보다 영원한 것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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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29절 하나님의 일 : 인간의 공로와 행위가 아닌,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임을 선포하시는 구원의 주님.
무리들이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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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오해(일들 vs 믿음) : 무리들은 '하나님의 일들(works, 복수형)'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거나 공로를 쌓는 등 자신들이 무언가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율법주의적 사고입니다.
예수님의 대답(믿음) :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work, 단수형)'로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에게 내 전 존재를 의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봉사와 사역의 기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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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성도들은 '일'에 대한 강박이 있습니다. 봉사를 많이 하고, 직분을 감당해야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장 큰 하나님의 일은 나를 잘 믿는 것이다." 교회 봉사하느라 지치고, 관계가 상하고, 정작 예배의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을 '하는(Doing)' 것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Being)' 것이 먼저입니다. 우리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님들, 무언가를 더 하려고 애쓰기 전에,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는 '믿음의 일'을 최우선으로 삼으십시오. 참된 믿음에서 참된 봉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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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거친 세상의 파도 속에서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찾아오셔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인생의 밤이 깊고 풍랑이 거셀 때,
눈에 보이는 현실 때문에 두려워 떨던
저희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물 위를 걸어오시는 창조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우리 인생의 배에 영접하여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여전히 썩어질 양식을 구하며
세상의 떡을 찾아 헤맬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옵소서.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일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 광양사랑의교회 모든 성도들이
산업 현장과 가정에서 땀 흘려 일할 때,
그것이 단순히 먹고사는 방편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룩한 사명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썩어질 것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영생을 위한 거룩한 경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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